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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줄 사람이 있단다, 어딘가엔 반…

  • 승인 2017-11-21 10: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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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생 2막

사랑해 줄 사람이 있단다

소망이와 로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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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망이

지은 씨는 동물 보호와 관련한 석사 논문을 준비하다 ‘비글구조네트워크’라는 구조 단체를 알게 됐다. 봉사활동을 자처한 지은 씨는 비위가 약해 방문 후 3일 동안은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첫 봉사 때 눈에 들어온 비글들을 앓으면서 그리워했다. 주인의 학대로 배변 장애가 생긴 봄이, 세 번이나 파양당한 하늘이, 운동장에서 나오고 싶은지 문 밑에 구멍을 파며 탈출을 꾀하는 벤자민, 그리고 작은 체구에도 이름을 부르면 강아지들 틈으로 얼굴을 꺼내는 소망이. 모두 동물 실험과 유기, 학대를 운명처럼 감내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입양할까 고민했지만 되뇌일수록 이들 삶의 무게는 버겁게 다가왔다. 이미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인 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인연이란 전선은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울리고, 그 거센 마음의 파동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두 번째 만남 때 지은 씨는 모견과 친구들을 입양 가정에 떠나보내고 덩그러니 운동장에 누워 있던 소망이를 품기로 작심했다.

소망이는 동물병원 앞에 묶여져 있던 모견 구름이의 곁을 끝까지 지킨 유일한 자견이었다. 구조된 소망이에겐 시각장애가 발견됐다. 단체의 직원과 회원들이 소망이의 눈을 세심히 관리해주었지만 수의사의 진단을 뒤집을 순 없었다. 그러나 강아지는 시각 이외의 감각도 능히 활용하는 동물이다. 한 회원이 2016년 겨울부터 소망이를 임시보호하며 가정에서 생활하는 법을 가르쳤고, 이젠 밝은 곳에서는 장애물을 피하고 공간의 구조를 기억해 벽에 잘 부딪히지 않는다.

기적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근사한 드라마라면 이쯤에서 소망이의 시력이 회복되어야 하지만 소망이는 여전히 빛의 세기 정도만 감지할 뿐이다. 장애를 다룬 드라마가 장애 극복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장애의 현실은 오직 보호자의 인내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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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지 못하는 로비

2017년 여름. 모견과 자견 2마리가 창원시 진해 보호소에 입소했다. 그 중 자견은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로 엉덩이와 뒷다리가 바닥에 끌려 상처가 나 있던 1kg대의 작은 강아지였다. 보호소 동물들의 입양 공고가 올라오는 어플리케이션 ‘포인핸드’를 통해 이 강아지의 사연을 알게 된 지은 씨는 이미 소망이와 함께 살며 장애견에 대한 세상의 차별을 절실히 실감하던 중이었다. 이 아이가 입양될 확률은 아득히 낮았다. 그 확률은 이들이 장애 때문에 당연히 가족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편견으로 인해 더욱 내려간다.

장애견을 키우며 남모를 고충이 있긴 했지만, 한편으론 생각보다 힘들지 않음을 깨달은 지은 씨는 그 편협한 생각에 도전하고 싶었다. 사람들 발에 치이고 눈초리를 맞아가며 살아왔을 그 작은 강아지에게도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강아지는 로비라는 이름으로 지은 씨에게 구조됐다. 보호소의 강아지를 임시 보호하기 위해 데리고 온 것을 구조라고 표현해도 될까? 지당하다. 짧은 공고 기간이 끝나면 강아지는 가차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로비는 내원해 복합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선천적인 것이 아니란다. 로비가 구조되었을 때가 생후 2개월쯤이었는데 그보다 앞서 엉덩이뼈가 골절되었고 이 상태로 오래 방치되어 뼈가 멋대로 붙어버린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신경에 손상이 가 우측 뒷다리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한다. 아직 어리기에 엑스레이 촬영만 이뤄졌는데 그것만으로 벌써 다리의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진단이 내려졌다. 지은 씨는 접종이 끝나고 로비에게 마취가 가능한 시기가 오면 MRI로 구체적인 상태를 파악해 볼 예정이다. 로비는 배변 장애도 있다. 배변을 조절할 수 없어 하루에 두세 번은 방광을 마사지하고 식후 서너 시간 후엔 항문을 짜줘야 하며 실내에서 기저귀는 필수다.

지은 씨가 죽음 직전의 로비를 구조해 진료를 받고 기저귀 사이로 흘러내린 용변을 닦는 동안 그의 옆을 묵묵히 지키던 존재가 있었다. 보이진 않지만 소리로, 냄새로, 촉감으로 동생의 존재를 느끼는 아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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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들이 화음을 찾아가듯이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장애견들이 운명처럼 만나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접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굳이 구체적인 사연을 들지 않아도 소망이가 남자 사람과 낯선 개를 싫어하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산책은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늦은 저녁이나 이른 새벽에만 한다. 태어난 후 줄곧 보호소에서 지내던 소망이에게 모든 장소와 존재들은 여전히 생경하며, 보이지 않기에 두려움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작고 어린 강아지인 로비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은 씨는 소망이와 로비의 첫 만남부터 세심히 신경 썼다. 소망이가 갑자기 나타난 강아지에게 놀라지 않도록 로비를 데리러 보호소에 갈 때부터 소망이와 동행했다. 로비를 이동장에 넣고 옮겼음에도 소망이는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차안에서 짖어대기 바빴다. 집에 도착하고 1주일은 펜스로 격리해 서로의 존재를 은근히 인지시킨 후에야 같은 공간에 둘 수 있었다. 격리되었던 그 시간은 이들에게 중요했다. 소망이에겐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시간이, 로비에겐 낯선 공간을 파악할 시간이 다른 강아지들보다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로비는 수컷, 소망이는 중성화된 암컷인데 둘이 노는 모습을 본 가족들은 녀석들이 결혼하는 것 아니나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다.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들려 확인해보면 잘 보이지도, 걷지도 못하면서 카페트 위에서 힘차게 뒹굴며 장난을 치고 있다.

소망이는 집에선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초반엔 자극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이제는 해가 뜨면 햇볕이 내리쬐는 곳을 찾아가 한가롭게 낮잠을 즐긴다. 오히려 예민한 건 로비다. 로비는 아직 하울링을 하고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데, 우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건 천하태평한 소망이의 영향일 것이다. 로비가 휠체어에 올라타면 소망이와 산책을 나설 수 있다. 길 위에서 낯선 존재의 기척이 느껴지면 둘은 화음을 넣듯 함께 짖는다. 그래도 비글이라고 목청이 우렁찬 소망이와 사람 아기가 옹알이하듯 앙앙거리는 로비가 같이 짖을 때면 지은 씨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마치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주변을 경계하는 소망이와 로비. 혹시 사나운 맹수라도 나타난다면 재빨리 합체해 도망갈지도 모른다. 로비가 눈이 되고 소망이가 다리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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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 마리의 강아지

로비는 지금 임시보호 중이다. 지은 씨는 로비에게 더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찾아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네이버에 문의해 메인 화면에 입양 공고를 올리기도 하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서 로비의 소식을 알리고 있지만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 입양 문의는 들어오지 않았다.

“장애견에 대한 편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입양이 난항을 겪는 이유를 묻자 지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어린 강아지이므로 최소 10년 이상은 매일 마사지해 주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로비는 사람이 없으면 두려워하는 분리불안 증세도 있다. “눈에서 사람이 사라지면 하울링하고, 곁에 있던 사람이 나가려고 하면 간식도 내팽개치고 따라오려고 버둥거려요. 자다가 이불이라도 뒤척거리면 눈을 번쩍 뜨고 쳐다봅니다.” 로비는 마치 영원히 크지 않는 갓난아이 같다. 그럼에도 지은 씨가 로비의 입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로비, 그 자체예요. 강아지가 주는 사랑스러움과 감동, 교감의 기쁨을 아는 분들이라면 로비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강아지들과 다를 것 하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거든요.” 냉정히 말해보자. 이 정도로 사람들에게 설득이 될까? 로비의 입양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은 씨는 말을 이어 그 의문에 답했다. “우리 학교 다닐 때 팔에 깁스를 하거나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대신 가방을 들어주기도 하고 식사를 도와주기도 하잖아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상생활이 조금 불편한 친구와 함께 지내며 도와줘야 할 것, 챙겨줘야 하는 것이 조금 더 생긴, 딱 그 뿐입니다.” 장애는 강아지와의 삶의 작은 일면일 뿐이라는 지은 씨는 장애견과 지내는 삶은 어떠냐고 묻는 물음에 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만큼 확신을 주는 답변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별 거 아니라는.

로비의 입양에 관심이 있다면

입양문의 010-3758-7328 / 카카오톡 sens2eun?

CREDIT

에디터 김기웅

자료협조 최지은?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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