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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의 목줄, 1미터의 삶

  • 승인 2017-10-10 10: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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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의 목줄,

1미터의 삶

1미터 반경의 세상만 가진 가족도 있을까.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는 표현이 일상인 세상.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개들의 처지는 달라진다. 이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김동현 수의사와 함께 시골 개 처우 개선 캠페인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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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고 병들어도 아픔에 익숙해지는

반려동물 가구수가 증가하면서 동물 진료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동물 의료보험, 의료협동조합 등의 대안까지 제시되고 있지만, 묶어 키우는 개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집에서 가족과 살을 맞대고 사는 반려동물과 달리, 시야에서 멀어진 만큼 건강에 이상이 있어도 주인이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밖에서 묶어 기르는 개가 아프다고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하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때로는 경제적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인식의 차이다. “사람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개가 병원이야?” 사람은 외면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동물들은 병에 걸리면 걸린대로, 다치면 다친 대로 아픔을 견디는 것이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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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 찾는 송파구의 한 비닐하우스 촌. 이제 토요일이면 동네 개들은 아침부터 앉아서 차가 들어올 때마다 기대에 찬 꼬리를 친다. 주말 하루쯤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은 마음이 들어도 빗자루처럼 바닥을 쓸고 있을 꼬리들을 생각하면 일찌감치 옷을 챙겨 입고 나오게 된다.

화환을 파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정원이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한 쪽 눈을 뜨지 못했다. 주인아저씨 말로는 길 가던 사람에게 짖는다는 이유로 맞아서 실명했다고 했다. 밖에 사는 개는 실내에 사는 개보다 동물학대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아직도 약간 고름이 나오는 눈의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진단에 주인아저씨를 설득해 조만간 병원으로 옮겨 검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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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무늬가 멋진 옆집의 호피는 앞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주인은 집을 비웠고, 이웃에게 물어보니 후진하던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밖에 사는 개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주인에게 연락을 해봐도 닿지 않아 결국 다시 와서 치료를 권유해 보기로 했다. 이런 경우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주인이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뜬장에서 열 댓 마리씩 개를 키워 식용으로 파는 주민이 있었다. 일 년이 넘게 설득해 지난봄부터는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지만, 정이 들었다며 한 마리를 남겨 놓았다. 혼자 남아있는 발바리 메씨는 종종 피부병에 걸린다. 김동현 수의사는 피부질환의 경우 치료를 하더라도 야외 환경에 방치상태로 살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것보다 기르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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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과 방치를 유산으로

그새 새끼를 낳은 개도 있다. 주인은 다섯 마리나 낳았다며 자랑스럽게 강아지들을 보여준다. 사람 손에서 꼬물거리며 작은 발을 허우적대는 강아지들의 모습에도 귀엽다는 탄성보다는 걱정 섞인 한숨이 먼저 나온다.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의 경우에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개를 밖에서 기르는 시골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랜 기간의 설득으로 물과 사료를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주민들도 ‘중성화 수술’이라는 말에는 펄쩍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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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는 강아지들의 운명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불투명하다. 몸집이 작거나 품종이 있는 것도 아닌 소위 ‘똥강아지’들을, 그것도 한 번에 네다섯 마리씩 태어나는 동물들을 모두 안정적인 가정에 입양 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새끼가 태어나면 이 곳 저 곳에서 기르겠다며 데려가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너무 어렸을 때 어미와 떨어져 폐사하거나 중간에 잃어버리는 경우, 심지어는 식용개 시장에 팔려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살아남는다 해도 결국 어미 개와 마찬가지로 마당개로 길러지면서 1미터 목줄의 삶을 대물림받는다.

특히 이곳은 2020년부터 도시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다. 주민들은 벌써 이전할 계획을 하고 있지만 마당에서 묶어 키우는 개들을 데려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개들의 삶은 비참하다. 유기동물보호소로 들어가지 않으면 떠돌이 개로 굶주리며 살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식용으로 팔려간다. 밖에서 먹이를 구하고 살 방법을 터득한 개들에게는 들개라는 꼬리표가 붙어 포획대상이 된다. 서울시에서는 올해부터 백사마을 등 재개발 지역 중심으로 반려동물 중성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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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시골 개를 돌보는 일을 하다보면 잦은 이별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잘 돌보겠다고 다짐을 받은 집인데도 어느 날이면 빈 집 앞에 목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일이 다반사다.

이 날은 뜻밖의 이별을 했다.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이 키워달라며 비닐하우스 앞에 버리고 간 복실이. 집에서 가족들과 살다가 하루아침에 밖에서 살게 된 복실이는 산책길에서 가방 멘 여고생만 보면 울면서 따라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갑자기 복실이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누가 와서 개집 문을 여는 소리가 난 뒤로 없어졌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인터넷으로 유기동물관리시스템에 접속했다. 다행히 양주에 있는 보호소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달려가 동물병원으로 옮겼지만 수술대 위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미 보호소로 오기 전 고속도로에서 차에 심하게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산책과 장난감을 제일 좋아했던 복실이. 활동가들과 화장장에서 눈물을 쏟으며 빌었다. 다음 세상에서는 꼭 다시 한 번 개로 태어나라. 주인에게 버려지는 개, 1미터 목줄에 묶여 살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는 개가 아니라 가족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개로. 그 동안 우리는 복실이 친구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게.

CREDIT

이형주(AWARE)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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