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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마을 지킴이들의 겨울
시골 길 위의 초라한 강아지들에게 깨끗한 물 한 번 제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이 부부는 이름 모르는 시골 개들을 위해 믿기 힘든 정성을 쏟았다. 부부가 남긴 기록을 정리했다?.
2016년 가을
일요일은 시댁에서 가을 묘사를 지내는 날이었는데 몸이 아파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몸이 불편하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답답해 오후에 시골집과 밭에 들렀다. 햇살이 부드럽게 드리워진 시골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카메라에 담고 싶어 둑길을 따라 걸었다. 콩을 베어낸 논둑길 위에서, 이 아이를 만났다. 지저분한 털로 힘없이 서 있는 한 마리의 개였다. 보자마자 마음 한 편이 쓰려왔다. 주인은 누구일까.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을까.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는 경계하지 않고 살갑게 꼬리를 흔들어댔지만 단단히 굳어버린 꼬리는 잘 흔들리지 않았다. 철갑으로 온 몸을 중무장한 것 같은 털옷. 이 작은 아이는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까. 물그릇은 새파랗게 이끼가 끼여 있는데 아이는 이 물을 마시며 혼자 무서운 밤을 견뎌내고 있었다. 손을 내미니 물끄러미 바라본다. 코를 보니 다행히 건강해 보인다.
좁은 둑길을 타고 경운기 한 대가 달려온다. 개 옆에 잠깐 멈추더니 갑자기 물그릇을 던져버렸다. 그리곤 개를 안전한 곳에 옮기지도 않고 아슬아슬하게 개집 옆을 경운기를 몰며 지나갔다. 개 주인은 아닌 것 같다.
수소문 끝에 아이의 주인을 알게 되었다. 근처에 사는 어느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집에 안 계셔 찾아보니 이웃집에서 김장을 하고 계셨다. 내가 가니 반가워하시며 노란 배추 속살을 떼어 내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인정은 많으신 분 같은데 왜 강아지는 저렇게 기르시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강아지는 할머니를 보자 손을 내어 주며 장난을 치고 애교를 부리는데 마음이 울컥했네. 그래도 주인이라고… 할머니 연세는 65세였고, 집에서 혼자 강아지 둘과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계셨다. 동물을 좋아서 기르는 건 아니란다. 딸이 기르다 놓고 가는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기르고 있다고 하셨다. 물그릇을 던지고 간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이 강아지가 할머니 집으로 온 지는 3년 되었다. 다른 사람이 기르던 강아지였는데 콩밭을 지키게 하려고 부탁해 데리고 왔다고 한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이름 없어, 나는 주인도 아니여.” 재차 묻자, “귀찮어, 귀찮어.” 손을 내저으신다. 정말 아이에게 이름은 없었다. 우리가 주인은 아니지만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콩밭에서 만난 인연이라 ‘콩이’라 부르기로 했다.
할머니는 아이 털을 깎아 주고 싶지만 가위를 들면 아이가 도망을 가서 저런 모습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 이유인진 알 수 없었다. 마침 우리 아이들 털 깎아주던 기계가 있어 콩이의 털을 깎아 주는 걸 허락받고 간단한 털 정리를 해줬다. 콩이의 털은 떡처럼 엉겨 붙어 있어서 한 번에 시원하게 정리해주긴 어려웠다. 앞으로 올 때마다 조금씩 더 깎아주기로 했다.
헤어지는 시간, 콩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콩이야, 너를 꼭 기억할게. 가끔 널 만나러 올 거야. 건강해야 한다.
2016년 겨울
이후로 종종 콩이를 찾아갔다. 콩이는 여전히 콩밭을 지키는 중이다. 콩이를 만난 이후로 일상 중에서도 이따금 이 아이의 생각에 빠져든다. 비록 콩밭을 지키던 시골의 이름 없는 개였지만 나는 이 아이가 보물같이 느껴진다.
한파가 심해졌을 땐 집에 있는 아이들이 입던 옷을 가져가 입히고 박스들을 가져가 콩이 집에 넣어주기도 했다. 콩이 주인 할머니도 혼자 사시니 이따금 선물을 들고 방문해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찾아갈 때마다 할머니는 따뜻하게 반겨 주시며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할머니에게 허락을 구하고 우리 부부는 콩이와 놀고 목욕을 시키고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콩이에게 콩밭을 지키게 하긴 했지만, 할머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키울 수 없다고 맡기고 가는 아이들을 거절하지 않고 거두시는 인정 많은 분이셨다. 그 나이면 자기 몸도 귀찮아질 나이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콩이를 만나러 시골을 찾던 중 콩이 이웃에 사는 다른 강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게 됐다. 한 강아지가 비닐하우스에서 강아지 여섯 마리를 순산했고, 우리도 오가며 이 꼬물이들을 이뻐라 지켜보고 있었는데 추운 어느 날 꼬물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미 개는 미친 듯이 날뛰며 울부짖고 있었다.
어미 개는 이때 처음 보았는데 바싹 말라 갈비뼈가 다 드러나 있었다. 콩이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꼬물이들은 한파에 모두 얼어 죽어 한 녀석만 살아남았단다. 비닐하우스 안에 아이들을 추위로부터 지켜줄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미는 흔히 말하는 짬밥도 못 먹은 채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개가 아니었다. 마을에서도 지독한 영감탱이라고 소문이 난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는데 쌀겨를 푼 물을 가끔 가져다주는 게 관리의 전부였다.
그대로 돌아설 수 없었다. 가지고 간 것 중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다행히 양념이 되지 않은 빵이 조금 남아 있었다. 빵을 내려놓자 어미와 새끼는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은 정말 배고파서 그러는 거란 걸 나는 안다. 남은 부스러기 하나마저 남김없이 먹기 위해 어미와 새끼는 몸부림을 쳤다. 그 옆엔 얼어 죽은 다른 새끼의 털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이후 우리 부부는 콩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따금 꼬물이 가족도 챙겼다. 만날 때마다 사료와 따뜻한 물을 채워줬다. 견주 할아버지를 만나 강아지를 팔기 위해 기르는 건지 물었더니 또 아니란다. 밭을 망가뜨리는 멧돼지나 고라니를 쫓아내려고 기른다고 했다. 견주는 마을 소문과 달리 순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단지 동물에 대한 개념이 없고 자신에게도 야박하리만치 돈을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이 개 역시 이름 같은 건 없었다. 남편과 상의 후에 어미 개를 ‘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 블로그에 순이 가족의 사연을 게재했고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순이 가족도 매서운 겨울의 한파를 이겨냈다.
2017년 봄
봄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3월, 한 쉼터에서 순이의 소식을 알고 강아지들을 구조하자는 제안이 왔다. 나도 처음에는 순이를 빨리 구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움 주시겠다는 분과 한참을 통화했다. 도움을 준다는데 왜 마음이 이상한 걸까.
사람들은 강아지가 구조되면 병원에서 치료받고, 사람들에게 모금을 받으며, 쉼터에 머물다가, 누군가에게 입양되는 수순을 어렵지 않게 밟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건 강아지들에게 힘겹게 넘어야 할 과정들이다. 만약 끝내 입양이 되지 않는다면 콩이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몹시 괴로워졌다.
*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바람님의 이현동 시골 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Naverblog / bluemount337)
CREDIT
글·사진 바람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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