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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게 묻다, 영월의 컨트리 라이프

  • 승인 2017-09-26 10: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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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LAND

태풍에게 묻다

영월의 컨트리 라이프

밤이면 별을 보고, 낮이면 수수밭을 뛰어다니는 삶. 과연 존재할까. 귀농귀촌의 허와 실이 속속 나오고 있는 요즘, 시골의 현실적인 견생을 알아보고 싶었다. 강원도 영월, 산과 계곡 지척에 살고 있는 태풍이(7세)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어 본 컨트리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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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팔괴리 다견가정 첫째 태풍(사모예드, 7)

태풍,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멋진 태풍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사모예드라고도 부르지만, 그냥 태풍이에요. 2011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일곱 살인데요. 웃는 얼굴 때문에 어리게 보시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

이름이 왜 태풍인가요?

아빠가 처음에 키웠던 사모예드가 태백이라는 이름이었는데요. 아가 때 아파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태어났을 때는 튼튼하고 멋지게 자라라고 태풍이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어요.

동생들 소개해줄 수 있어요?

오늘은 저 만나러 오신 것 아닌가요?(잠시 정적이 흘렀다) 찰보리는 나보다 두 달 아래 동생이에요. 보리라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할머니가 찰을 붙여줬어요. 유비는 태어났을 때 유난히 하얗고 예뻤대요. 목에 검정색 실을 묶어 줬는데 하얀 털에 검정 실이 유비 장군 같아서 유비가 되었대요. 관우는 유비 친동생이라서 관우예요. 찰보리랑 유비, 관우는 모두 래브라도 리트리버고요.

‘굴러온 돌’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장비는 좀 특이한 애예요. 올해 6월인가 우리 집에 오게됐거든요. 개장수한테 팔려가기 직전에 아빠가 구조해서 임시보호하고 있어요. 유비랑 관우 동생이라 자연스럽게 장비가 됐죠. 걔는 원래 우리 동네에 살아서 몇 번 보긴 했지만 우리 집에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견생이란...(태풍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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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참 서글서글한 것 같아요.

제가 웃는 상이긴 하지만 서열이 제일 높아요. 큰 형이니까 동생들 혼낼 때도 간혹 있죠. 하지만 어린 강아지나 여성분들에게는 한 없이 다정하답니다.

흠흠. 2015년 1월에 영월에 귀농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귀농전과 후, 삶에서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영월에 오기 전, 아빠는 중식요리사였어요. 아빠가 일하러 나가고 나면 떨어져 있는 시간 내내 아빠가 그리웠어요. 엄마가 영월에 살고 있어서 오가다 보니 아빠도 이곳에 정착하고 싶어졌대요. 아빠의 큰 결심으로 컨트리 라이프가 시작된 건데요. 이곳은 공기도 좋고 뛰어 놀 곳도 많아 즐겁지만 제일 좋은 건 아빠를 더 오래,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아빠가 정말 좋은가 봐요.

분홍색 고무공보다, 간식보다 더요. 아빠는 내 우주예요.

아빠도 영월에서의 생활을 좋아하나요?

물론이죠. 태풍이랑 늘 함께할 수 있잖아요. 네. 뭐, 찰보리랑 유비랑 관우랑 장비도 있고요. 아빠는 정말 멋있어요. 농사도 짓기 시작해서 간식도 직접 만들어주거든요. 만들다 만들다 이제는 파는 것 같더라고요. 수익 일부는 유기견을 돕는 곳에 쓰시겠대요. 잘돼야 할 텐데… 제가 늘 걱정이 많아요.

의젓하네요. 아빠가 만든 간식 맛은 어때요?

매일 매일 먹고 싶은 맛이죠. 저는 개견적으로 달콤한 고구마 말랭이랑 바삭하게 씹히는 오리도가니가 제일 좋더라고요.

시골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어요?

아빠는 우리가 갈 병원이 가까이에 없어 걱정하셨는데, 아직까지는 우리 모두 튼튼해서 괜찮아요. 얼마 전에 우리를 보고 큰 개를 집에서 그렇게 많이 키워서 되겠느냐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빠가 조금 슬퍼했어요. 나는 아빠라서, 엄마라서, 찰보리라서 좋은 건데. 다른 곳, 다른 사람은 싫어요. 여기에, 우리 다 같이 함께 있어서 좋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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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들은 생겼나요?

제일 친한 건 우리 집 동생들인데요. 주변에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요. 아빠가 ‘크지만 순한 강아지 모임’을 만들었거든요. 오로랑 엘리샤, 샘기리, 모니… 다들 보고 있어?(태풍은 앞발을 흔들었다)

아… 영상 인터뷰가 아니라서, 다들 보고 있기는 좀 힘들 것같은데… 아무튼, 동네친구들이 참 많네요?

나이를 먹다보니 친구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얘기하다 보니 생각난 건데, 복날을 기점으로 자꾸 친구들이 하나 둘 없어져요. 특히 우리처럼 몸집이 큰 친구들이요. 어디로 가게 된 건지... 그저 마음속으로 무사하길 빌 수밖에 없어요. 그 즈음이면 아빠도, 엄마도 슬퍼 보여요. 그래서 장비도 우리 집에 오게 된 거죠. 사실.

가을입니다. 햇빛도 낙엽도 버석버석해지는 시기인데요.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시골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어요. 밭에 나가서 산책 좀 하다가 동산에 올라서 포토타임도 좀 갖고요. 동생들이 워낙 물을 좋아해서, 계곡도 자주 놀러가요. 얘네는 리트리버가 아니라 물트리버예요.

일상이 산과 밭, 계곡이요? 도시와 크게 다른 것 같은데...

그래요? 안타깝네요.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해서 즐겁겠어요.

아빠, 엄마가 우리를 ‘덩어리’라고 부르지만, 저는 알아요. 세상에서 우리를 제일 좋아하시거든요. 사진도 매일매일 찍어주세요. 엄마, 아빠는 자기들만 인스타그램을 하는 줄 아는데 저희도 계정 하나씩 다 가지고 있어요. 비밀로 해주세요. 가끔 밤에 올린 글 보면 다음날 오그라들어서 지우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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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끝으로 태풍과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끝이 났다. 태풍과 찰보리, 유비, 관우, 장비의 아빠 홍성규 씨가 간식을 내왔기 때문. 동생들과 조금 떨어져 근엄하게 오리뼈를 아작이는 태풍에게 몰래 다가가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얻어냈다.

네 마리의 박힌 돌들과 한 마리의 굴러들어온 돌, 도합 다섯의 반려견들은 도시의 우리네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발랄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반짝이게 만든 것일까. 한 뼘 거리의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과 ‘가슴으로 낳았다’는 반려인의 애정이었으리라 짐작해보며, 업무 시간에 몰래 인스타그램 어플리케이션을 누른다. 그렇다. 나는 시골개 ‘덕질’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혼자 죽을 수 없어,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공개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이다.

CREDIT

에디터 이은혜

자료협조 홍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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