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노령견 이야기 | ② 노령견을 보내는…

  • 승인 2017-08-25 10:52:19
  •  
  • 댓글 0

노령견 이야기

② 노령견을 보내는 시간?

날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개들이 뛰놀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녀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그녀의 손에는 허연 종이뭉치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펼치더니 그 안의 것을 허공에 대고 휘휘 흩뿌렸다. 밀가루처럼 흩어지는 골분은 들풀이며 들꽃 그도 아니면 흙바닥 사이사이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정확히 2013년 6월 23일 그녀의 까미가 죽었다. 그로부터 1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조금씩 까미와 이별하고 있는 그녀였다. ?

29c8dfec9db46a4c16a8ed4b5f8f92bd_1503625

이제서야 보내줄 수 있구나

운전하는 중간 중간

네가 뛰어놀기 좋을만한 한적한 곳을 발견하면

조금씩

조금씩

너를 보내준다.

까미야

잘 지내….

- 2014년 5월 10일 그녀의 사진일기 중에서 -??

29c8dfec9db46a4c16a8ed4b5f8f92bd_1503625

개장수에게 잘 키우던 개들 팔아버린 까닭

슈나우저 종의 까미에게 주인은 평생 단 한 명뿐이었다. 꼬박 열다섯 해를 그녀와 같이 했다. 가족 구성원과 그 수가 바뀌어도 둘만은 늘 함께 했다. 그녀가 까미였고, 까미가 그녀였다. 그런 까미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점점 진짜 아이가 돼 갔다. 열한 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오줌발이 시원치 않았다. 방광 부근에 종괴가 생겼다는 진찰결과를 받았다.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정도 받았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3~4년을 버텼으니 꽤 오래 잘 살아줬다. 불운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다음 순번으로 노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히 천진난만한 아이일 것 같던 녀석은 그녀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앙상한 몸과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참 많이도 울었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버린 늙은 개, 까미가 치매에 걸려 버렸다.?

29c8dfec9db46a4c16a8ed4b5f8f92bd_1503625


그녀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낮 시간, 아무도 없는 집에서 까미는 여기저기에 오줌을 누고 똥을 싸고 다녔다. 이것을 질근질근 밟고서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똥 위에 주저앉은 채 누군가 올 때까지 한정 없이 기다리는 일도 허다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도 덩달아 얼이 빠졌다. 이럴 때마다 창문을 열어 냄새를 우선 빼내고 세재를 대야에 풀어 손걸레질을 했다. 말라버린 변은 소독제를 뿌려 뒀다가 철수세미로 닦아냈다. 그리고 돌아서면 또 어느새 까미는 거실 어딘가에 또 한 차례 용변을 봤다. 화장지를 돌돌 말아서 훔쳐내고 소독 스프레이로 닦아냈다. 밤 11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이런 생활을 반년이 훨씬 넘게 반복했다.

그녀는 그 옛날 시골 어르신들이 오래 잘 키우던 개를 늘그막에 개장수에게 팔아버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 끝을 보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은 피하지 않기로 했다.

29c8dfec9db46a4c16a8ed4b5f8f92bd_1503625

“저 이제 힘들어요…”

2013년 3월의 어느 날.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저녁 무렵 겨우 일어나 걸어 다니는 까미의 그림자가 거실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까미는 아직 식욕이 좋고 용변도 그런대로 봤다. 그러나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녀의 시선은 계속 까미를 쫓고 있었지만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종괴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둘은 너무 힘들어 참 많이도 괴로워했다. 그녀의 입에서 이제는 떠나도 된다는 말이 튀어나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저리 누워 달게 자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또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녀였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속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까미는 지금 자신이 죽더라도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덜 받도록 시간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반려동물과의 ‘사랑’이란 남녀간의 ‘사랑’과는 달라 시간이 더해질수록 깊어진다는 것을.

그로부터 5일이 흘렀다. 까미는 구강출혈까지 보였다. 동생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집에 들어와 보니 이불은 피범벅이 돼 있었다. 일단 출혈이 멈춰서 까미가 좋아하는 목욕을 시키고 재웠지만 그날 저녁 한 차례의 출혈이 더 있었다. 두루마리 휴지 반 통을 쓰고서야 피는 멈췄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어떠한 통증으로 푸닥거리를 하고 이제는 용변마저 누워서 보는 까미를 씻기며 그녀는 10년간 병원생활을 하면서 간간히 봐온 그 표정을 읽고야 말았다.

“저 이제 힘들어요….”?

너무 울지 마세요

15년을 함께한 그들,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결정은 빨랐다. 날은 결심이 선 그 주의 일요일로 정해졌다. 하루 종일 파닥거리며 괴로워하던 까미는 안락사를 위해 떠나기 전날 오후부터 내내 잠만 잤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목욕시키고 발톱을 잘라 줄 때도 잠만 잤다. 곤히 잠든 까미를 안고 집을 나섰고, 그녀의 동생이 언니와 까미의 마지막 모습을 2층에서 사진기에 담았다. 까미는 그렇게 그녀의 품에서 자는 듯 떠났다.

29c8dfec9db46a4c16a8ed4b5f8f92bd_1503625

“까미야 언니가 미안해….”

하나를 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어야 할까. 며칠은 멍하니 보내더니 갑자기 미친 것처럼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네 달이 지나도록 까미를 생각하면 왈칵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까미가 떠나며 걱정하지 않게끔 살아주는 것이 그녀가 떠나보내야만 했던 까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마음으로 애써 감정을 추스렸다.

어김없이 가을이면 떠나는 제주여행길에 까미를 데려가기로 했다. 까미가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것을 가장 좋아했기에. 그렇지만 그럴만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외면했던 것인지 그녀는 그 이듬해 봄날에 제주도 곳곳에다 까미를 보냈다. 아무래도 한 군데 정도는 까미가 머물고 있길 바랐는지 마지막은 감귤나무 아래에다가 조금 묻는 그녀였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질풍과도 같았던 1년이 지금은 다시 겪고 싶은 추억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짐스럽게 느껴지며 부담으로 다가오는 노령견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세요. 그 아이가 어렸을 때 잘 성장할 수 있게끔 돌봐 줬던 것처럼, 그들이 또 잘 떠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랍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너무 울지 않기로 해요.”?

?

29c8dfec9db46a4c16a8ed4b5f8f92bd_1503626

노령견 이야기

① 마침내 해피엔딩

③넌 여전히 최고의 개야, 도로시?

CREDIT

장영남

원문 사진 밤식이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콘텐츠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