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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 이야기 | ① 마침내 해피엔딩

  • 승인 2017-08-25 10: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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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 이야기?

① 마침내 해피엔딩?

주인을 잃은 노령견 오순이와 노견을 떠나보낸 정윤 씨는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가족이 됐다. 열 살 노견을 입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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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번호 130412-003번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죽어 버렸다. 남겨진 개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그 개가 노령견이었기에. 공고번호 130412-003 말티즈 암컷. 열 살의 나이에 시위탁보호소에 들어갔다. 같이 살던 네 마리 개들도 보호소 행이었다. 열 살, 여덟 살, 일곱 살, 세 살. 그들도 어리지 않았다.

늙은 개는 차가운 철장 안에서 잔뜩 움츠렸다. 작디작은 몸이 더 쭈그러들었다. 보호소에서 주어진 기한은 열흘. 그 안에 새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였다. 그렇지만 어린 강아지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노견은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낡고 초라한 존재였다. 결국 개들은 차례차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가장 젊었던 세 살짜리마저도. 그리고 130412-003번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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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가 예정됐던 그날, 어디선가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130412-003번의 철장 안이었다. 갓 태어난 새끼 두 마리가 케이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워낙 작고 말라 노견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안락사 당일에 새끼를 낳은 개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어미는 새끼들과 함께 보호소 직원 숙소로 옮겨졌고 130412-003번에서 ‘행운이’가 됐다.

병약했던 새끼 하나가 죽어 남겨진 한 마리만 ‘행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보호소 직원들은 말티즈 모녀 행운이와 행복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다. 누군가 귀여운 새끼 강아지와 함께 가여운 노견 어미까지 입양해주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렇지만 극적인 사연 앞에서도 열 살의 나이는 여전히 부담이었다. 응원의 목소리만 간간히 이어졌다.?

열한 살 예삐는 가고

예삐는 3일 전부터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수의사는 예삐의 위장이 멈췄다고 했다. 주사를 놔주며 “계속 토하면 수액을 맞자”고도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 같은 건 분명 없었다. “정윤아,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예삐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액이라도 맞춰라.” “이따 점심시간에 와서 하면 돼. 갔다 올게.”

집에 돌아오니 늘 방안에만 있던 예삐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며 집안을 헤매다 베란다에서 예삐를 발견했다. 창가 바로 앞이었다. 바람은 불고 나무 잎사귀는 떨리는데 예삐만 혼자 ‘정지’ 상태였다. ‘죽은 거구나.’ 정윤 씨는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안아 올렸다. 몸이 살짝 따듯한 것 같기도 했다. 오줌이 흘러내렸다. 정말 끝이었다. 열한 살 요크셔톄리어 예삐는 정윤 씨가 고3이었을 때 처음 만나 서른이 될 때까지 같이 나이를 먹어간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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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결석으로 고생해 안쓰럽기도 했지만 자주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니 귀찮을 때도 많았다. 언젠간 이별이 올 거라 짐작은 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잘 가라’, ‘사랑했다’ 흔한 작별 인사 한 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아침에 병원에 데려갔다면, 출근하지 않았더라면, 30분만 일찍 왔다면. 정윤 씨는 고장 난 기계처럼 그날의 기억을 끊임없이 반복 재생하며 후회했다. 매일 성가시게 해도 좋으니 다시 돌아와 달라고 중얼거렸지만 예삐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예삐 없는 1년이 흘렀다. 예삐가 빠져나가서 휭 하니 뚫린 구멍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고 그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마음도 집안도 늘 썰렁했다. 보드라운 따스함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그 무렵 정윤 씨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예삐와 같은 종인 요크셔테리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너 살짜리 개를 입양하면 10년 정도는 같이 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열 살 노령견과 갓 태어난 새끼가 시위탁 보호소에서 정윤 씨가 다니는 보호소로 옮겨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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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하기

주인을 잃은 노령견 행운이와 노견을 떠나보낸 정윤 씨는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가족이 됐다. 행운이의 딸도 함께였다. 열 살 노견을 키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행운이가 안락사 당일 새끼를 낳아 목숨을 건진 것도, 계속 가족을 만나지 못하다가 하필 정윤 씨가 다니던 보호소로 들어온 것도, 예삐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행운이가 유난히 가여워 보였던 것도.

인연이라 느낀 순간 나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행운이는 ‘오순이’로, 행복이는 ‘도순이’로 개명해 이름 그대로 정윤 씨와 오순도순 살게 됐다. 마침내 해피엔딩이었다.

그 후 1년의 시간이 지나 오순이는 이제 11살이 됐다. 떠난 예삐의 마지막 나이였다. 처음에 오순이를 입양했을 때는 한두 해라도 편히 지내다 가게 해주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건강하고 발랄한 오순이를 보며 정윤 씨는 그 시간을 늘리고 싶어졌다. 노령견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잊혀졌다. 물론 어린 도순이에 비해 오순이는 잠도 많고 쉽게 피곤해 했다. 조만간 백내장이 올 것 같다는 수의사의 말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오순이에게 한 약속을 매일매일 지킬 뿐이었다.

‘먹을 수 있을 때 맛있는 음식 주기. 걸을 수 있을 때 같이 산책하기. 지금 곁에 있을 때 후회 없이 행복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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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 이야기 ?

② 노령견을 보내는 시간

③넌 여전히 최고의 개야, 도로시?

CREDIT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배정윤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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