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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의 50가지 그림자 ?
위 50마리의 개들은 최근 도살의 위협을 받거나 어렵사리 구조된 아이들이다. 본디 식용을 목적으로 태어나 길러지다 예정대로 죽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사연은 그 머릿수만큼이나 많고, 다시 그 수만큼이나 한국의 어떠한 문제들을 비추고 있다. 이 중 네 가지 이슈를 추렸다.? ?
01 사막 같은 뜬장 속에서 곡예하는 아이들??
복희는 사막에서 왔다. 정확히는 물을 구경하기 힘든 강아지 농장의 뜬장에서다. 왜 주인은 물을 주지 않았을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급여하기 때문이다. 질퍽한 음식물 안에 죽지 않을 정도의 수분이 있다며 굳이 물을 주지 않는다. 복희는 1년 동안 갈증에 허덕이며 뜬장 안에서 살았다. 활동가는 복희와 친구들을 위해 매일같이 물을 주러 다녔다. 복희가 사람에게서 따뜻한 정을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일 것이다.
뜬장은 바닥이 땅과 닿지 않는 철장이다. 배변 처리가 쉽게 만든 시설이나 사실상 고문 기구다. 이 안의 개들은 오직 발가락의 힘으로만 하루를 버텨내야 하기 때문이다. 뜬장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철장 사이로 발이 빠져 부상을 입기도 한다. 익숙해져도 악취와 오염된 공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변은 즉각 처리되지 않아 오물로 썩는데, 그 위에서 개들은 다리를 떨며 힘겹게 버틴다.
복희는 활동가가 구조하기 전까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밟는 땅을 밟지 못했다. 흙밭을 처음 밟는 복희는 어색하고 낯설어 하며 곧바로 구석을 찾았다. 식용견의 운명에서 구조된 아이들은 평범한 삶으로 쉬이 돌아가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허덕인다.?
02 동네의 마스코트, 이웃에게 잡아먹히다?
순대의 반려인 한정우 씨는 1월 말 순대의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을 SNS에 남겼다. 그러나 그 자리에 순대는 없었다.? ?
애견숍에서 분양받은 순대는 다행히 건강했고, 정우 씨의 배려 아래 자유롭게 자랐다. 가족은 순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맘껏 먹도록 했고, 매일 산책 나가며 뛰어다닐 수 있도록 도왔다. 순대는 특유의 친화력과 순한 성격으로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어느 날 순대는 1층에서 반려인과 놀다가 그가 잠시 2층으로 올라간 사이 목줄이 끊어져 밖으로 나가게 됐다. 멀리 가지 않고 집 앞 전봇대에서 서성거리던 순대의 끊어진 목줄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행인의 손에 쥐어졌다. 행인은 반려인인 것처럼 자연스레 순대를 데리고 도축장으로 갔다. 그리고 잡아먹었다. 반려인이 잠깐 눈을 뗀 10분 사이 사라진 순대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행인은 평소 산책하던 반려인과 몇 번 마주쳐 안면이 있던 이웃 주민이었다. 불 테리어 순대에게 “개가 독특하게 생겼다”며 호의를 드러낸 적도 있었다. 경찰앞에서 그는 “목줄이 있었지만 주인이 없는 강아지인 줄 알았다”며 황당한 항변을 했다. 식용개의 비극은 식용견 견사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반려견 외에 식용견이 따로 있다는 생각은 안전 불감증이다.?
03 바다를 건너도 안전하지 않다
빌라는 식용견으로 대구의 한 시장에 팔렸다. 덩치 큰 대형견들 사이에서 제대로 먹지 못했고, 목전까지 온 숙명을 감지했는지 생기를 잃어 갔다. 하지만 기적이 찾아왔다. 해외 한 구조단체가 대대적인 개 식용 반대 운동을 시장에서 벌였고 상인들과 협의 끝에 일부 개를 구조해낸 것이다. 야위어 가던 빌라는 그렇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새 생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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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 내 강아지들을 수용할 보호 시설은 어딜 가나 만원이었다. 더구나 사전에 국내 시설과 협의된 바가 없던 해외 구조 단체는 빌라를 비롯해 구조된 강아지의 해외 입양을 추진했다. 골든리트리버를 선호하는 미국인들에게 모색이 비슷하고 순한 성격의 누렁이는 꽤나 인기가 좋다. 한국 어딘가의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강아지로 태어났을 빌라는 그렇게 바다 건너 타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하지만 빌라는 미국에 가서도 개농장(puppy mill)에 들어가고 말았다. 개농장을 운영하던 이는 여러 커뮤니티에 자신을 진돗개 브리더라고 소개하고 다니며 진돗개를 확보하기 위해 구조 활동가를 위장하는 등 악행을 일삼는 자였다. 한국에서 백구나 누렁이를 받아 와 팔거나, 그 개를 이용해 자신의 번식장에서 새끼를 계속 출산시켜 팔아 오고 있었다.
올해 1월부터 5개월 동안 한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 반려견은 약 3천100마리로 하루 평균 20마리가 건너가고 있다. 이 수는 2010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해외로 입양된 대부분의 개들이 행복한 삶을 얻지만, 빌라와 같은 소수의 비극을 간과해선 안 된다.?
04 식용개를 낳고 또 낳는 모견
몇 번째 출산이었을까. 출산과 육아를 강제로 반복한 몸에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더러 아이들의 젖을 물려야 했기에 배 살은 축 쳐져 있었다. 매일 차오르는 눈곱이나 접힌 살들 사이로 나오는 진물도 보미 혼자서는 치료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건강이 좋지 않다거나,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삶을 연명해야 하는 것보다 보미에게 아픈 일은 배 아파 낳은 새끼들을 계속 떠나보내야 했던 것일 테다. 보미의 새끼들은 사람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탄생했고, 보미가 할 수 있는 일은 피부병을 앓는 새끼를 핥고 핥아주는 것뿐이었다. ?
첫 발견 이후 몇 번 더 그 곳에 들러 주인과 접촉을 시도해 보미를 데려가고자 했으나 보미를 이용해 식용견을 생산하고자 했던 업자는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다. 계속되는 설득 끝에 결국 업자는 식용견이 판매되는 금액만큼의 액수를 지불하고 보미를 데려가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새끼들만큼은 절대 못 넘겨준다는 말로 서늘하게 선을 그었다. 결국 아픈 마음으로 보미와 다른 강아지 다섯 마리만 데려가는 것으로 합의 아닌 합의를 마무리했다.
이곳에서 벗어나는 개들의 운명을 알고 있어서일까. 보미는 개집에 콕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큰 저항 없이, 그렇지만 순순하지는 않게, 보미는 억지로 끌려 나와 케이지에 들어갔다. 보미가 떠난 자리에는 또 다른 모견이 들어올 것이지만, 어쩌면 보미의 새끼 중 한 마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보미는 그렇게 그 자리를 떠나갔다. 강아지 공장과 식용견의 문제는 별개가 아닌, 이처럼 집요하게 얽힌 문제다.?
움츠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보미가 변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쉼터에서 겨울의 끝자락과 봄을 보내고, 이제 여름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보미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한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아이다. 몰라보게 힘도 많이 생겼고, 꾸준히 약도 먹고 파우더도 발라서 피부도 많이 좋아졌다. 강아지껌이 얼마나 맛있는 간식인지도 안다. 리드줄을 들고 가면 아직 조금 놀라는 눈치지만 이제 산책도 곧잘 하고 있다.
보미를 데려와 삶의 의미를 조곤조곤 알려준 구조 단체의 일원 모두 보미가 사랑스러운 반려견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에게 고통받고도 순수하고 너른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노라고 눈을 맞추는 아이와의 삶은 분명 풍요로울 테니. 보미의 접힌 피부가 상하면 파우더도 발라줘야 하고 심해지면 약도 먹여야 하지만, 그건 진중한 입양 결정과 책임감 있는 사랑 앞에서는 별 다른 문제가 아니다.
CREDIT
에디터 김기웅 김나연
자료 협조 동물사랑네트워크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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