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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노령견 흰둥이의 방울 소리

  • 승인 2017-06-13 09: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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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13살 노령견 흰둥이의 방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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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는 13살, 그러니까 나이가 조금 많은 강아지다. 10살이 넘어도 혈기왕성하게 잘 놀았고 에너지가 흘러넘치던 흰둥이는 지난해 봄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수술이 필요한 심각한 단계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절뚝거리며 걷는 흰둥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개들은 주인의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금세 알아채고 그 슬픔을 똑같이 느낀다기에 애써 눈물을 감춰야만 했다. 병원에서는 하루 한 번 15~30분 정도의 평지 걷기를 권 했다. 그 후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때가 아니면 매일 하루 흰둥이와의 산책을 나선다.

왕방울이 달린 목걸이와 하네스를 차고 진드기 방지 미스트를 흰둥이 털에 뿌린 후 배변봉투가 담긴 작은 가방을 메면 우리의 산책 준비가 완료된다. 흰둥이 방울소리가 울려 퍼지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산책의 전부지만, 흰둥이의 발걸음에 맞춰 딸랑이는 방울 소리는 마치 마법처럼 특별할 것 없는 산책로를 즐겁고 유쾌하게 만든다.

채 한 살이 되기 전의 흰둥이는 외출 자체를 어려워했다. 산책은 물론 차타는 것도 벌벌 떨었다. 세 살 무렵에는 산책의 재미를 알고 나를 무지막지한 힘으로 이끌었다. 그러던 흰둥이와의 산책이 조금 수월해진 건 5살 무렵부터였다. 그 당시 흰둥이를 위해 가끔 산을 찾을 때면 흰둥이는 산길을 쉼없이 뛰어갔다. 산이며 들이며 달랑달랑 방울 소리를 울리며 내달렸다. 그렇게 앞서 가다가도 느려진 내 발걸음에 멀어지거나 “흰둥아~” 하고 부르면 한달음에 나에게로 달려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재촉했다.

문득 그때가 생각나 “흰둥아, 조금만 더 가 볼까?”라고 물으면 흰둥이는 그만 집으로 가자는 듯 뒤돌아선다. 그 모습에 가끔은 서글퍼 질 때가 있다. 아쉬운 산책을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돌아서던 흰둥이였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 길에 아쉬움을 두고 돌아오는 건 내가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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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관절염 진단을 받고부터 강아지 유모차를 마련하기 위해 검색을 하고 있다. 그럭저럭 1년 동안은 없이도 잘 지냈는데 갑자기 흰둥이가 지금보다 걷는 걸 싫어하거나 힘들어져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미리 준비하려 한다.

요즘 들어 흰둥이의 노후를 맞이하는 내가 조금만 더 그때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두려움에 생각하기 싫어 애써 외면한다고 시간이 더디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그리 쉽게 담담해지지는 않는다. 다행히 치료에 효과를 보이며 절뚝거리던 다리도 서서히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 계절이 지나자 절뚝거림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흰둥이는 조금 오래 걷거나 신이나 무리해서 뛰면 다시 절뚝거린다. 그럴 때면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걱정스러운 마음 에 바라보면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한 듯 풀 죽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흰둥이의 모습에 “괜찮아 괜찮아, 그렇지?” 라며 나 스스로를 달래듯 흰둥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산책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찍 돌아가는 길을 서글퍼하기엔 아름다운 날들이 아직 많다. 파란 하늘에 훨훨 새가 날아오르고, 이름 모를 풀에 피어난 소담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춤을 추는 나뭇잎들과 멀리 산등성이를 따라 넘어가는 하얀 구름을 잠시 바라본다. 우리는 말이 없지만 걸어왔던 꽃길을 따라 천천히 또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며 되돌아간다. 그렇게 나와 흰둥이는 지금의 순간을 묵묵히 쌓아가고 있다.

그래도 흰둥이가 유모차에 타고 산책 가는 날이 천천히 오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면 흰둥이의 경쾌한 발걸음에 맞춰 온 동네를 울려 퍼지던 지금의 이 방울소리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CREDIT

모레

그림 우서진

에디터 김기웅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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