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생 2막
가장 보통의 존재
실험용 비글 셜록이
셜록이가 태어나 눈을 떴을 때 거긴 어떤 세상이었을까. 어미 곁에서 떨어져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실험대 위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실험 비글 셜록이는 귀 안쪽에 코드번호를 새기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이전 세상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일상을 연습하는 중이다.
세상의 끝에서
강아지를 이용하는 동물실험은 대부분 비글을 대상으로 한다. 비글이 특히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비글이 실험에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수의학적으로 완전무결한 모종을 교배시켜 생산한 실험용 비글을 사용한다.
이 ‘비글 생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유명한 브랜드가 있다. 미국을 본사를 놓고 영국과 중국에서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마셜 바이오 리소스(Mrshall Bio Resources)’다. 이곳에서 나온 비글들은 ‘마셜 비글’로 불리며 실험기관으로 보내진다.
셜록이, 밤색 눈이 예쁜 이 아이도 마셜 비글 출신이다. 셜록이는 생후 8개월 이 되었을 때 서울의 한 생명과학 연구소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 다시 꼬박 8개월을 연구소에서 살다가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 동안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연구소는 침묵과 함께 셜록이를 세상 밖으로 건넸다. 찬 공기, 소음,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 그 앞에서 셜록이는 당황한 기색 을 숨기지 못하면서 코를 킁킁댔다. 그게 지난 1월의 일이었다.
셜록이를 구조한 곳은 실험견 전문 구조 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후 비구협) 다. 그들은 셜록이를 데리고 곧장 인계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스럽게도 건강 상태는 상당히 좋았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진단한 100마리가 넘는 아이들 중 가장 건강했다. 실험군 비글이 아니라 대조군 비글로 연구소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됐다.
중성화 수술까지 끝낸 셜록이는 논산에 있는 비구협 쉼터로 갔다. 잔뜩 얼어서 꼼짝도 못했던 셜록이가 사람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기까지 열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간의 사회화 교육을 받고 있을 때, 셜록이를 임시보호하고 싶다는 가족이 나타났다.
하나씩, 천천히, 차근차근
셜록이의 세상은 그 날을 기점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셜록이를 데려온 준혁 씨 가족은 셜록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도왔다. 소변을 보는 것도, 잠자리를 정하는 것도 모두 다. 그래서 지금도 셜록이가 집에 와서 처음 소변을 본 자리에 배변패드가 깔려 있고, 처음 누웠던 자리에 잠자리용 이불이 자리하고 있다. 셜록이가 언제든 집을 돌아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밤에 잘 때는 식구들이 방문을 다 열어놓고 자서, 이제는 온 집 구 석구석이 셜록이의 놀이터가 되었다.
준혁 씨 가족이 셜록이를 평생 가족으로 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준혁 씨는 셜록이를 집에 데려온 후 한동안 항상 셜록이와 저녁을 보냈는데, 어느 날 저녁 약속이 있어 외출했을 때 ‘셜록이가 아픈지 축 처져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약속을 파하고 집에 헐레벌떡 오자 셜록이는 30분 동안 준혁 씨의 귀가 축하 쇼를 펼쳤다.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준혁 씨가 너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어느 새인가 식구가 되어 있었다고, 그래서 특별한 입양의 계기는 없었다는 게 준혁 씨의 설명이다.
마샬 비글로 태어나서 받은 특수 교육이 준혁 씨 가족의 사랑 속에서 희석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까? 요새 셜록이는 먹을 것에 관심이 많다. 식구들이 뭔가를 먹고 있으면 와서 꼭 냄새를 맡아보고 먹어 보려고 한다. 준혁 씨는 그런 셜록이에게 기미 상궁이라고 놀린단다. 이렇게 호기심과 본능을 차근차근 살려가는 것을 보니 그저 반갑고 기특하다고.
다만 집에 온 지 2달이 넘었는데 아직 한 번도 짖는 소리를 못 들은 것이, 수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놓거나 말거 나 동상처럼 굳어 소리 한 번을 안 낸 게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셜록이는 요새 가족이 바닥에 놓고 간 물건을 사냥해 저지레를 하며 악동 같은 얼굴을 하기도 한다. 하나씩 천천히, 그간 억눌러야 했던 본능은 다시 회복 중이다.
집 현관을 벗어나는 것조차 싫어하던 셜록이는 이제 제법 아파트 단지를 벗어 난 산책도 할 줄 안다. 물론 산책을 나갔을 때 어색해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 다른 강아지와 사람을 만나면 낯설어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그래도 준혁 씨는 셜록이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상태니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실험을 끝마치고 세상으로 나와 가족이 된 행운에 감사하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셜록이 또한 준혁 씨 와 비슷한 것을 소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족의 품에 안기고, 눈 맞춤을 하는 순간만큼 셜록이의 눈이 잔잔하게 빛나는 때가 없으니.?
CREDIT
에디터 김나연
사진 엄기태?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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