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얼마 전 아는 이들 몇몇이 만나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린 시절이 그립지 않다고. 30대, 40대에 이른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10대는 아무 것도 몰랐고, 20대에는 내가 다 아는 줄로만 알았던, 그렇게 바보 같던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여태껏 밟아온 걸음들, 하나씩 이뤄놓은 것들을 되돌리는 건 막막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된다면 어떨까. 어릴 때는 선택의 길이 너무나 많아서 몇 가지는 아예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쳐버리기도 했다. 눈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갈래는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얼마나 해볼 것인지를 나에게 물었다. 그냥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선택할 것인지, 혹은 청춘을 걸어볼 것인지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뭐 어떤가, 아직도 안 가본 길이 이렇게 많은데.
온몸에 모래를 묻히고 놀면서도 뒷일은 걱정하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도전에 대한, 노력에 대한 기회가 아니라 단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시간도 아마 그때였다. 몸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고 고개를 들면 금방 또 다른 재미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눈앞에는 아직도 길이 놓여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주변에 풀이 자라고 나무가 우거져서 일부러 보려고 해야만 보인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내가 가려는 길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찾아내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또 한 번쯤, 어린 시절처럼 모래밭을 걱정 없이 뒹구는 날도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CREDIT
글·?사진 지유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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