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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이도 복실이도 이젠 괜찮아?

  • 승인 2017-04-18 10: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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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AND OLD DOG

초보 반려인의 일기?

빡빡이도 복실이도 이젠 괜찮아?

“강아지 미용 다 됐어요. 데리러 오세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우리 집 강아지의 첫 미용 날이었다. 새끼 강아지들에게 온몸을 미는 배냇미용이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덥수룩한 털이 두 눈을 덮어 미니 바야바 같던 녀석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근처 카페에 초조하게 앉아있다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짐을 챙기는 나의 모습은 마치 아내의 순산 소식을 들은 초보 남편 같았달까. 그렇게 불안 또 설렘을 안고 들어선 미용실. 그 안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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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정말 우리 집 강아지에요? 다른 애 아니고?” 미용실에서 멀쩡한 강아지를 바꿔치기 할 이유는 물론 없었다. 게다가 나를 반기는 것 보니 맞기는 한 것 같은데 어째 쉽게 확신이 가질 않았다. 분명 내가 데려온 강아지는 앞이 보일까 염려될 정도의 복실이였는데, 이 녀석은 짧고 까만 털이 오골계를 연상케 하는 빡빡이가 아닌가. 눈앞에 펼쳐진 비주얼 쇼크에 당황한 나는 강아지를 안아들면서도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했다. 미용사 분께 강아지가 느낄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털을 길게 남겨달라고 우겼는데, 이건 뭐 내 정신적 충격이 더 크게 온 것 같다.?

어쨌든 피부에 상처도 없고 기분도 좋아 보이니 다행인 거겠지. 나는 이발을 마친 강아지를 포대기에 넣고 미용실을 나섰다. 집으로 향하는 육교를 건너며 우리는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녀석은 자신을 무서운 곳에 데려간 내게 삐진 듯 풍경만 바라보았다. 나는 나대로 처음 본 강아지의 모습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며, 고생한 강아지를 위해 준비해 온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 먹였더니 녀석은 마음이 풀렸는지 까만 눈동자를 대록 굴려 나를 본다. 미지근한 봄바람이 강아지의 짧은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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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한 강아지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화장실이었다. 마치 제 집인 듯(?) 능숙하게 배변패드를 찾아 볼일을 보는 순간, 나는 그제야 이 녀석이 내 강아지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몇 시간 동안의 미용에 지친 녀석은 물을 벌컥 벌컥 마시더니 곧 잠이 들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이대론 이 녀석을 잃어버려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나와 강아지는 함께한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또 아직 어린 나이라 큰 성격적 특징이랄 것도 발견되지 않은 게 맞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그 때부터, 조금만 더 신경 써서 내 강아지의 모습을 눈에 담자고 결심했던 것 같다.?

빡빡이가 된 강아지는 가족들에게 멘붕을 안겨줬지만, 덕분에 녀석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볼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었다. 털에 가려져있던 우리 집 강아지의 눈은 귀여운 아몬드 모양이었다. 까만 눈동자는 바둑알을 닮았지만 햇살 아래에선 예쁜 다갈색으로 물들었다. 털은 새까만 것보단 먹색에 가까웠다. 코와 입가엔 눈과 마찬가지로 다갈빛 털이 부숭부숭 나 있었는데, 깎아도 다시 자라는 걸 보니 원래 그런 것 같았다. 네 다리는 길쭉길쭉하니 모델견이 따로 없었다. 먹는 게 전부 다리로 가는 듯했다.?

외양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습관도 생겼다. 뽀뽀를 좋아하는 이 녀석은 종종 가족들의 입술에 찐한 그루밍을 선사하는데, 도망가지 못하도록 양쪽 발로 얼굴을 꽉 누른 채다. 또, 이불 속에 들어가 자는 것을 즐기는지라 누워있는 내 어깨 옆에 서서 이불을 들춰주길 기다리곤 한다. 그런데 꼭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쪽으로 나를 꾹꾹 밟고 지나간다. 그럴 거면 그냥 애초에 오른쪽 어깨 옆에서 기다리면 안 돼? 비록 4kg의 아담한 몸무게지만 작은 발로 누르면 솔직히 아프다. 저런 못된 행동은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걸까?

산책 나갈 때, 엘리베이터가 채 열리기도 전에 주둥이부터 밀어 넣는 걸 보면 성격이 꽤 급한 것 같다. 공원에선 힘차게 줄을 잡아당기고, 새로운 강아지를 만나면 엉덩이 냄새 맡기에 바쁘다. 하지만 씩씩하고 호기심은 많은 주제에? 소심해서 자기 엉덩이 냄새는 절대 허락하지 않는 얄미운 면모를 보인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안방부터 뛰어 들어간다. 곧 비명이 울려 퍼지면 강아지가 누워있는 부모님의 입술을 급습했다고 보면 된다!?

이제 겨우 두 살 다 되어가는 강아지에게서 발견한 습관이 벌써 이 정도다. 앞으로 남은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우린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내 강아지의 새로운 습관을 알아갈수록 이 작은 존재와의 유대감이 끈끈해지는 걸 느낀다. 복실이건 빡빡이건 이젠 상관없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우리 사이에 켜켜이 쌓인 세월이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게 해줄 테니까 말이다. 아, 물론 앞으로도 미용 직후엔 조금 놀라긴 하겠지만.?

CREDIT

이수빈

그림 우서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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