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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강아지

  • 승인 2017-03-30 10: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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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8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강아지

강아지를 키운다면 한 번쯤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품종이 뭐냐는 물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할 말이 궁해졌다. 구피가 잡종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잡종이라도 어떻게든 설명해 줄 수는 있었다. 그저 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친구나 가족의 프로필을 물을 때 누구도 국적이나 인종을 묻지 않는다. 그 강아지는 내가 처음 사귄 ‘털친구’였기에 친구로서 필요한 정보 이외엔 별 관심이 없었다. 이제부터 짧게 적고 갈 이야기는 유년기에 만나 깊게 사랑하다 헤어진, 한 강아지의 죽음에 얽힌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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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반려인, 영리한 강아지

구피는 어머니 친구네서 키우던 강아지였다. 그 가족엔 장난 많고 거친, 나와 또래인 두 형제가 있었는데 강아지가 그들에게 구박을 하도 많이 받자 이사를 계기로 우리 집에 넘기고 간 것이었다. 구피는 참 순해서 물지도 짖지도 않았다. 다리는 짧고 허리는 길었는데 얼굴은 어울리지 않게 늠름했고 귀는 들개처럼 뾰족했다. 꼬리는 몸통만큼이나 길어서 대충 손을 뻗어도 턱, 하고 잡혀 들었다. 참 재미있게 생긴 친구구나 생각하고는, 우리 형제들도 그쪽 형제들 못지않게 거칠게 뛰놀았던 기억이다.

지금은 강아지용 사료나 용품들이 잘 구비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강아지는 인간이 남는 밥을 먹는 잔반 처리반이었다. 이렇다 할 반려 정보도 찾기 힘든 때였다. 이제 생각해 보면 나와 우리 가족 역시 구피에게 그리 좋은 주인은 못됐다. 바르고 배려 있게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귀여우면 소리를 지르며 놀라게 했고, 목줄 없이 동네에 풀어놓은 채 방치하기도 했다. 파닥대는 꼬리는 인간을 위한 손잡이인 줄 알았고, 먹던 음식을 옜다 하며 던져 주기도 했다. 구피는 그런 무식한 대접에도 잔병 치레 없이 건강해 줬고, 목줄 없이 외출한 후에는 알아서 집에 돌아오는 영리한 강아지였다.



이별한 날에 헤어지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 시간이 구피에게 정말 즐거운 기억이었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시간에 마침표를 찍은 건 다시, 구피를 건네 줬던 어머니 친구 분이었다. 살던 곳으로 돌아 온 그의 가족은 다시 강아지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유를 듣자 하니 천덕꾸러기 형제들이 구피가 사라진 후 연일 서럽게 울며 심지어 삐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다시 이사온 것이 구피를 돌려받기 위함이라는 말에, 우리 가족은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린 예상치 못한 이별을 맞이했고 집이 가까우니 자주 놀러오라는 위안에 눈물을 삼켰다.

구피를 다시 만난 형제들은 이산가족을 만난 듯 마당을 뛰며 기뻐했다. 그때 구피는 형제들 틈으로 반쯤 열려 있는 대문을 봤고 그 틈으로 달려 나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형제들이 황급히 뒤쫓았지만 구피는 속력을 더 높였다. 그 집과는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건만 언제 길을 외운 것인지 구피는 우리 집 방향으로 힘차게 달렸다. 그러다 8차선 대로 위에 올라 탄 구피. 머잖아 승용차에 치여 하늘 위를 오래, 아주 오래 날았다고 그날 저녁 만난 형제들이 말해줬다. 형제는 피로 칠갑한 구피를 들어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렸지만, 마구 달리던 그들의 품 안에서 구피의 장기는 손쓸 도리 없이 망가졌다. 구피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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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의 자격은 무얼까

구피의 황망한 죽음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엄마를, 엄마의 친구를, 그녀의 아들들을 번갈아 원망했지만 이제야 생각이 드는 것은 각자가 한 줌씩 책임을 보탠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구피가 거하던 가정 중 한 곳에서라도 목줄 없이 대문 밖에 나가지 않도록 훈련을 해줬더라면, 차에 치였을 때 무리하게 들고 뛰어선 안 된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니 그 전에 강아지를 책임지지 못하고 주고받는 촌극이 없었더라면, 구피는 아직 숨을 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작은 강아지가 대로 위를 달리다 죽은 것은 한 운전자 의 과실이 아니라 도심 속의 무지한 반려인들의 혐의라는 생각이 커져 간다.

그 후 오랫동안 우리 가족은 속죄라도 하듯, 암묵적으로 동물을 반려하지 않는 데 동의해 왔다. 누군가는 길 위에서 단명하거나 개고기로 팔려 나갈 존재를 집에 들인 것 자체로 그들에게 축복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준비되지 않고 배우지 않는 반려인들은 결코 구원자가 아니라 단언한다. 구피가 죽고 10년이 지나서야 우리 집은 고양이 두 마리를 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고양이가 다리에 매달릴 때마다 사료를 퍼 주며 비만과 합병증에 기여하고 있고, 어머 니는 고양이가 찡얼대면 자식 대하듯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는다. 그럴 때면 이 친구들에게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한지 재차 의문이 들곤 한다. 몰래 사료를 덜어 내고 안방에서 고양이를 억지로 끌어내며, 고양이에게 미움을 사고 있는 처지가 서러워 든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CREDIT

? 김기웅

그림 지오니?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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