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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형견으로 산다는 건

  • 승인 2017-03-29 10: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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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여행하며 만나다 :

대한민국에서 대형견으로 산다는 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도래예요. 2월호에도 나왔는데 기억하시려나요? 사람들은 제 덩치가 커서 무섭나 봐요. 악, 개다! 하면서 피해요. 훨씬 나이 많은 뽀메 언니한테는 와~ 강아지다~ 하며 다가가면서. 저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매력을 알면 푹 빠질 텐데 속상해요. 아침부터 언니가 부산스럽네요. 내 몸에 이상한 하얀 천을 씌우질 않나, 요 며칠 째 들떠있어요.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매일, 오늘은 또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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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와 수민, 알콩달콩 추억 만들기

지난 2월 호 촬영으로 수민 씨와 도래를 처음 만났다. 두 살배기 도래는 낯가림이 없고 순한 성격의 말 그대로 ‘아가아가한’ 강아지였다. 제천 의림지에서의 촬영은 여유롭고 순탄하게 진행됐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오더니 다짜고짜 화를 냈다. “사람들 놀라게 이런 데 개를 데리고 오면 어떡해?” 정말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의림지 어디에도 반려견 금지표시는 없으며 주위에 작은 개들도 많았다.

어이가 없어 반문하기 시작하자 수민 씨가 말렸다. 들어보니 이런 황당한 시비가 한 두 번이 아닌 듯 했다. 내가 만난 도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놀라게 하지도 짖지도 않았다. 오히려 짧은 리드 줄이 익숙한 듯 통제가 쉬웠고 촬영 내내 짖은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리고 순한 인상의 수민 씨는 화풀이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차가 없어 동네를 벗어나는 일은 언감생심이라며 최고의 추억을 만들었다고 연거푸 감사의 인사를 하는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한 번 더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번 장소는 이천 경사리 벽화마을. 산수유 마을로 유명한 백사 마을과 이어져 있다. 아직 산수유는 피지 않았지만 사랑스러운 벽화가 맞아주었다. 이 글을 받아 볼 때면 마을은 금빛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4월 7일부터 9일까지 산수유 축제가 열릴 예정이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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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수민 씨는 지난번에 이어 또 도시락을 준비해왔다. 반려견과의 여행은 애를 데리고 가는 것만큼이나 준비거리가 많은데 참으로 대단하다. 도래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식당이 없어 매번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덕분에 요리가 늘었다며 웃는다.

서울에서야 한 두 시간씩 출퇴근하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지방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 가까이 살고 30분이면 엄청나게 멀다고 생각한다. 수민 씨는 직장에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외곽에 살고 있다. 전부 도래를 위해서다. 작년 독립을 하면서 본가에 도래를 남기고 나왔다. 다른 가족들도 있었고 원래 살던 집이 좋을 거라 생각했지만 도래는 하루 종일 하울링을 하며 언니를 찾았다. 할 수 없이 원룸으로 도래를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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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사이 이사만 세 번 했어요. 원룸이 너무 좁아서 좀 더 넓은 외곽으로 이사했다가 회사가 너무 멀어 다시 근처로요. 그런데 이사 첫날 대형견은 안 된다면서 집주인이 뭐라고 하는 거예요. 그 빌라에 다른 개들도 살았는데. 서러움을 참고 다음 날 바로 다시 예전 집으로 이사했어요. 낡고 멀긴 하지만 도래를 생각하면 눈칫밥 안 먹고 잘 됐다고 생각해요.”

집에 캠을 설치해 두고 회사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말을 걸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도래는 얌전히 언니를 기다린다. 매일 매일 산책을 시켜주고 싶지만 주위 눈치 덕에 쉽지 않은 현실이다. 주말이면 도래를 데리고 근처 산책을 나선다. 이번 한 주도 잘 기다려주어 고맙다고, 함께 해주어 고맙다고 서로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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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도래와 함께 춤을

개를 세 마리나 키우면서,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제법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kg 말티즈도 크다고 기피되는 한국에서 대형견과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게 어렵고 서러운 일투성이였다.

“한 번은 도래가 걷지도 못할 만큼 아픈데 택시가 계속 승차 거부를 하는 거예요. 콜택시를 불러도 안 된다고 하고. 차가운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애를 보며 그냥 지나쳐가던 택시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이러다 잘못될까봐 울면서 도래를 들쳐 업고 한 시간 동안 걸어 병원으로 갔어요. 중간에 팔에 힘이 풀린 데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는데 도래가 자기 아픈데도 계속 눈물을 핥아주는 거예요. 정말 펑펑 울었어요.”

첫 번째 촬영은 멋모르고 그냥 나왔지만 두 번째는 만발의 준비를 하고 왔다. 하얀 면사포와 부케, 화관까지. 제대로 웨딩 콘셉트다. 그런데 면사포가 두 장이다. 앗, 도래! 너 여자였니? 도래와 평생을 약속할 기념으로 남기고 싶다는 웨딩사진. 평생 서로만 바라보고, 사랑할 것입니까? 맹세는 같은 말을 해야지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 속 수민 씨와 도래의 눈빛 속에 신뢰와 사랑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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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사진 박애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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