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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MY DOG | 이웃집의 백호

  • 승인 2017-03-15 10: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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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MY DOG

이웃집 백호

“너 아직도 강아지 때문에 주말에 술 안 마셔?” 이따금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에게서 하나같이 듣는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과 연락하는 주기가 뜸해지기는 한다지만, 그래도 친구라는 녀석들이 내 안부랍시고 건네는 말에 강아지 얘기부터 꺼내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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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존재가 내 곁에

가정을 꾸리고 살만한 자신이 없어 부모님께 평생 독신으로 살겠노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을 한 이후, 그 동의를 구하기가 무섭게 나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양 손에 겨우 들어오는 작디 작은 웰시코기. 만약 결혼을 하더라도 여자인 나는 어차피 성을 물려줄 수가 없으니 “너에게 내 성을 물려주노라” 하고 강아지에게 내 이름의 ‘강’자를 붙여주었다. 강아지의 이름은 ‘백호’. 당시 다리 길이가 5cm밖에 되지 않았던 아기 강아지에게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백호’라는 센 이름이 붙게 된 이유다.

핑크 빛 발바닥 젤리로 내 손을 꼭 붙잡고 오물오물 물어대던 모습이 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아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정말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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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 오고 나서

새삼스럽지만 백호는 웰시코기다. 요새 언론매체에 숱하게 나오는 그 다리 짧고 엉덩이 통통한 식빵 같은 견종. 사람들은 다리 짧은 겉모습이 마냥 귀여워 쉽게 입양을 고려하지만 사실 웰시코기는 넓은 초원에서 양을 몰던 목양견으로 정말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자랑한다.

진즉 알고 데려오기야 했지만, 이론과 실제는 엄연히 다른 법. 이제껏 술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을 세상 제일이라 꼽으며 한량같이 지내온 나의 일상은 백호가 오고 난 후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7년 넘게 살던 동네에 공원이 몇 개인지, 계절마다 어떤 꽃들이 피는지 조금의 관심조차 없던 내가 팔자에도 없던 산책을 매일 두 시간 이상 거르지 않고 칼같이 하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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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백호가 킁킁 향기를 맡고 있는 꽃의 이름이 뭘까? 유달리 좋아하는 꽃이 있는데, 어디에서 많이 필까? 나는 백호가 관심을 보인 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공원을 검색해서 주말마다 나들이에 나섰다. 봄에는 꽃밭을 구경하러, 여름에는 시원한 장소를 찾아서. 그리고 가을에는 낙엽에서 뒹구르기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 단풍이 멋진 곳을 찾아 떠났다. 겨울에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등산도 했다. 신기하게도 백호랑 고작 몇 시간 걷고 뛰다 오는 것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충족해지는 귀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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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 첫 번째야

자연스럽게 술자리는 몽땅 거절했다. “나 우리 강아지랑 소풍 가야 돼” 라며 술자리를 거절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를 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거냐며 놀라워 했다.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대차게 싸우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 ‘자기와 닮은 자식 낳아봐야 이 마음을 이해하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심정을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알 것 같다. 비가 와서 산책을 못 갔다고 삐져서 장난감을 온 방안에 어질러 놓고 월월월 짜증을 내는 백호를 보고서 말이다.

사춘기 자식 새끼를 기르는 마음을 개춘기의 개와 살며 공감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오후 늦게까지 내리 잠만 자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여자에게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놀아달라고 보채는 개동생. 내 일상을 파괴하러 온 내 인생의 구원자. 주먹만 한 강아지 하나가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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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강아지랑 사는 게 뭐 특별하냐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유난 떨지 말라고들 한다. 그 말도 맞다. 이 세상엔 수많은 강아지들과 고양이,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백호가 TV에 나올 정도로 대단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강아지는 내 일상을, 나아가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수천, 수만, 수억 명의 사람들 모두가 자신만의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살아가듯, 내 인생에 있어 백호는 극의 흐름을 바꿔버린 특별출연자다. 백호와의 일상은 지금까지처럼 느긋하게 즐겁고 아쉬운 듯.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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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이웃집 백호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twitter @corcorgiBH

instagram @corgibh

CREDIT

글·사진 강승연

편집 장수연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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