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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송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워라

  • 승인 2017-01-31 10: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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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생 2막

천송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워라

세상에는 어둡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것들이 많다. 억압, 폭력, 회피, 무관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그것들을 희석시키는 밝은 기운을 품은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해, 나눔, 배려, 어울림. 천송이의 맑은 눈동자는 단언컨대, 그 중에서 가장 강한 빛을 띤다. 아픔을 넘어서 이제는 사랑과 자유를 상징하는 송이의 휠체어 바퀴 소리. 더는 어두움을 논하지 말자. 따스함을 전하기에도 부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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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낼 수 없는 기억

작년 10월. 동물자유연대 학대제보 게시판에 반갑지 않은 글이 올라왔다. 길을 떠돌던 집 없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해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내용이었다. 지역은 부산. 동물자유연대 부산지부에서 즉각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무언가가 지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요. 아, 강아지가 떨어졌구나 싶었죠." 당시 상황을 상기하자 태희 씨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발로 찬 건지, 집어던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건물 3층 높이 정도의 축대 위에서 떨어진 아이는 태희 씨가 한걸음에 달려간 그곳에서 쓰러진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떡해, 어떡해. 처음 대면하는 상황에 태희 씨의 머리 위로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폭포수처럼 마구 쏟아져 내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이 없어 어딜 다쳤는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꿀렁이는 피를 토하며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모습은 세상 가장 견디기 힘든 슬픔으로 태희 씨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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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끝에서도 사랑스러운

하반신 마비. 참으로 간단명료하게 내려진 결론이었다. 태희 씨는 제 앞에 쑥 들이밀어진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상당한 높이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척추가 부서지고 눌린 강아지는 그 부분을 지탱하기 위해 철심을 여럿 박는 힘든 수술을 견뎠다. 수술은 오래 걸렸고, 그 후에도 췌장염, 쿠싱 증후군(부신 피질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의 과잉 분비로 전신적인 영향을 미치는 질환) 등 잦은 병치레로 한동안 병원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동안 매일같이 찾아간 병원에서 강아지는 태희 씨를 반겼지만 상체만 살짝 들썩이며 반응할 뿐 여느 다른 강아지들처럼 꼬리를 흔들어 주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니, 저절로 하늘도 무심하다는 원망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픈 걸 티를 잘 안 내는 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보통 아프면 예민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애교가 많아서 병원 식구들 모두에게 예쁨을 받은 아이예요, 얘가." 태희 씨는 움직이지 못하는 하체를 끌고 자꾸 앞발로 기어 저에게 오려는 강아지에게 ‘천송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모 드라마의 아름다운 여주인공처럼 주변의 큰 사랑을 받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소망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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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거리를 넘어서라도

안타깝게도 부산에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했다. 하반신이 마비된 송이는 하루에 네다섯 번씩 사람이 곁에 꼭 붙어서 배변활동을 도와주어야만 한다. 임보와 입양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태희 씨는 매일 밖에 나와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송이를 맡아 데리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마음으로는 백 번이고 송이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자칫 안일한 행동으로 송이가 상처 입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었다. 결국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해, 송이를 부산을 떠나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로 옮기게 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태희 씨는 이 말이 무색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송이가 눈에 밟힌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그 먼 길도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려온다. 그 뿐만 아니라 한 아이에게만 오롯이 후원을 할 수 있는 1:1결연을 맺어,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까지도 자처하고 있다. 모처럼 송이를 품에 안은 태희 씨가 금세 또 눈물을 글썽인다. 이윽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이번엔 송이가 반응했다. 울지 마, 괜찮아, 고마워. 말보다 더 따뜻한 혓바닥으로 송이는 다정하게 태희 씨의 볼을, 코를, 그리고 눈물이 맺힌 속눈썹을 연신 핥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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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행복해지는 일

"송이가 여기 대장 먹으려고 하는 중이에요. 아주 얼마나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지 몰라요!" 복지센터 직원 분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웃음보가 터졌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는데 송이는 엉덩이에 뿔 날 새가 없다. 휠체어를 선물 받아 날아다닐 듯 신나있기 때문이다. 끼릭끼릭, 뒷다리를 받쳐주는 휠체어 바퀴 소리는 경쾌하다 못해 개성적이다. 다만 휠체어를 사용하면 상대적으로 앞다리에 무리가 가 편히 쉴 수 없기 때문에 두어 시간마다 휠체어에서 내려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 태희 씨는 송이의 곁에 누군가가 상주해야 하는 숙제를 어서 풀고 싶다. 기분이 좋으면 휠체어를 타고 내달리기까지 한다는 송이. 반짝반짝, 세상 가장 해맑은 표정 앞에 그 어떤 어려운 문제인들 못 풀까.

송이를 입양 및 임시보호 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동물자유연대 홈페이지 <입양신청> 게시판에 연락처와 함께 글을 올려주세요. 담당자가 연락을 드립니다.

CREDIT

장수연

사진 엄기태

자료협조 조성진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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