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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키와 바다 | 1화 오늘도 산책

  • 승인 2017-01-18 09: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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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키와 바다

1화 오늘도 산책

오전 10시쯤 될 무렵이면 캬키는 문 앞을 서성인다. 산책할 시간이 된 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세수를 하고 나갈 차림을 단단히 한다. 겨울이어서 외출을 하려면 꽤나 준비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버겁고 귀찮았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꽤 자연스럽다. 그렇더라도 바다는 아직 걸음이 좀 서툴러서 공원까지는 힙시트에 앉혀서 가는 게 좋다. 그렇게 오손도손 산책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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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공원을 걸으며

두 달 전에 이사 온 이 동네엔 가까운 공원이 있어서 참 좋다. 가볍게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킁킁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낙엽이 쌓인 곳에서 볼 일을 치른다. 잔디가 있는 곳으로 가면 캬키의 리드줄을 놓고 바다와 함께 땅에 내려준다. “캬키야, 바다야! 이제 뛸 시간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둘은 헐레벌떡 뛰어간다. 캬키는 나뭇가지나 솔방울을 물고 오는 놀이를 하고, 바다는 캬키를 쳐다보거나 하늘에 날아가는 새를 구경하다가 자주 넘어지곤 한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공원은 우리만의 세상이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캬키의 발을 씻기는 동안 바다는 화장실 문지방에 서서 우리를 구경한다. 이것이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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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들 캬키, 둘째 딸 바다

2013년 6월 내 생일. 이전에 운영하던 작은 작업실 ‘돗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촛불을 부니 한 친구가 눈을 가렸다. 짜자잔- 내 손에 솜뭉치가 잡혔다. 눈을 떠보니, 겁을 먹어서인지 목을 꼿꼿이 펴고 축 쳐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가 있었다. 강아지를 안으며 ‘선물이야? 짐이야?’라고 중얼거렸다. 만감이 교차했다. 부모님이 15년 동안 복실이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반려견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동물을 좋아했기에 그 이상의 고민 없이, 그리고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캬키’라 이름 붙였다. 평소에 좋아하던 색이 'khaki'이자, 언젠가 반려견이 생기면 꼭 지어주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그 후 출근할 때도, 여행을 갈 때에도, 부모님 댁에 갈 때에도 늘 캬키는 나와 함께했다.

캬키와 가족이 되고 일 년 뒤 결혼을 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여름의 끝에 바다가 태어났다. 지방에 내려가 부모님 댁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친구 부부네가 캬키를 돌봐주었다. 평소에도 캬키를 많이 사랑해주고 가끔 돌봐주던 친구들이라서 걱정 없이 맡길 수 있었고, 그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10월 중순이 되어서 캬키와 바다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바다의 탄생과는 상관없이 캬키는 여전히 얌전하고 의젓하다. 하지만, 아주 조금 애교가 늘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머리를 만져달라고 얼굴을 남편의 다리 사이에 묻는다. ‘아빠, 나도 더 예뻐해 주세요’라는 걸까. 그 모습이 왠지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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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한 오빠가 되어줄게

용변은 무조건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캬키 덕분에 하루에 두 번 이상 하는 산책은 일상이 되었다. 캬키와의 산책 덕분에 나와 바다도 건강하게 만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바다가 태어나고 나서는 매우 신속하고 짧은 산책을 해야 했다. 바다가 잠시 잠을 청하는 사이 감행해야 했던 외출. 캬키에게도 바다에게도 각기 다른 이유로 미안한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바다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위험했을지도 모르지만 캬키도 내 아들이니까. 우리는 나름대로의 균형을 잡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캬키와의 짧은 산책이 육아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안함과 불안감, 안심과 위로가 복잡하게 엉킨 산책길을 걸었다. 그리고 곧 바다가 산책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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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면 아기띠를 매야 하지만, 대부분 바다는 유모차에 태운 채 카키의 리드줄을 잡고 산책을 한다. 캬키는 늘 내 옆을 잘 따라와 주었고, 그건 바다와 함께할 때에도 예외는 아니다. 돌발행동 없이 쭉 걷는 캬키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캬키의 의젓함에 놀라고는 했다. 한편, 바다는 점차 캬키의 존재를 알아가기 시작해, 유모차 너머로 동행하는 캬키를 보며 이것저것 웅얼거렸다. 유모차에서의 시간을 지루해 하지 않은 것은 카키 덕분일 것이다. 바다가 걷기 시작하고서, 그리고 공원의 놀이터에 앉아 노는 것을 시작하고서 캬키는 가만히 유모차 옆에 앉아 바다가 노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볼 때면 캬키가 바다의 ‘든든한 오빠’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노는 것을 지켜주며 경계태세를 갖춘 영특한 오빠. 우리는 이렇게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자연스럽게. 내일은 어떤 산책이 기다리고 있을까.

CREDIT

글·사진 김현주 | 프리랜서 디자이너(@zoooukh)

편집 김나연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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