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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의 떳떳한 이름

  • 승인 2016-11-21 1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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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생2막

믹스, 잡종, 똥개 맞아요

철수의 떳떳한 이름

반려인에게 물었다. 강아지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냐고. 유기견이었던 아이를 입양한 후 내장칩을 넣어야 했는데, 등록할 이름이 필요했다. 수의사는 우물쭈물하는 반려인에게 어차피 이름이야 나중에 바꿔도 되지 않느냐고 재촉했다. 그렇게 강아지는 큰 고민 없이 ‘철수’가 됐고, 이후에도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물건도 아닌데 이름을 쉬이 바꾸는 게 마음이 쓰여서 그랬다. 그렇게 한 해가 갔고 이젠 정말 철수의 이름을 바꾸기 힘들게 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멈춰 서 먼저 이름을 부르는, 찬란한 2막이 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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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내가 구해줄게


강아지를 좋아하고 SNS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철수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유기견 출신의 믹스견 철수는 지금 수많은 팬을 보유한 스타다. 독특한 털 무늬와 앙증맞은 이목구비는 한 장의 사진만 봐도 시선을 멈추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유기견으로 등록되자마자, 유기견을 입양하기 위해 사이트들을 둘러보던 진양 씨의 눈에 들어온 건 무슨 이유였을까. “콩깍지가 씌었나 봐요. 보호소 사이트에 올라온 철수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별로였거든요. 내 눈엔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낯선 환경에 겁에 질린 채 카메라를 응시했을 철수는 그렇게 사진 너머의 반려인을 운명처럼 만났다. 공급되는 유기 동물의 수가 많아 2주의 공고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속행하는 보호소에서, 그렇게 철수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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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둘 수 없는 아이


집으로 온 철수는 말랐고, 피부엔 비듬이 가득했다. 그래도 사진으로만 보던 녀석을 품 안에 두게 된 진양 씨는 행복했다. “데려오고 나서 주말을 쭉 함께 보냈어요. 그리고 월요일에 철수를 두고 출근했는데 점심시간에 건물주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개 좀 조용히 시키라고요.” 예감이 좋지 않았다. 곧장 집으로 뛰어갔다. 철수는 작은 몸으로 울부짖으며 외로움인지 괴로움인지 모를 성난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진양 씨가 집으로 들어가자 흥분한 채 그를 반기더니 변을 집안 군데군데 싸기 시작했다. 극심한 분리 불안 증세였다.

먼저 강아지 유치원에 보내 봤다. 출근하면서 철수를 맡기고 퇴근하면서 데려오는, 아이를 가진 부모의 삶을 세 달 정도 지속하다 보니 진양 씨도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증세를 줄여주는 디퓨저나 영양제, 효과가 좋다는 훈련법을 동원해봤지만 분리 불안은 원체 나아지기 쉽지 않은 마음의 병이었다. 개가 짖어도 괜찮은 집을 찾아 이사도 했지만 이 또한 온전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집 안에 CCTV를 설치해 혼자 남겨진 철수의 상황을 지켜보니, 철수는 물도 마시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오로지 현관문만 보며 오매불망 반려인만 기다리고 있었다. 진양 씨가 들어가자 그제야 볼 일을 보고 음식을 먹는 철수. 걱정은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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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를 만나면 안지 마세요


그러던 중 땡큐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유기견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반려견과 동반 출근을 해도 된다는 말까지 듣자, 진양 씨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분리 불안을 겪는 강아지를 두고 반려인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줄기차게 훈육하거나, 아예 분리되지 않거나. 진양 씨는 더 많은 관리와 애정이 필요한 후자를 택했다. “혼자 출근하게 되면 최소 9시간은 강아지와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회사에 동반 출입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어요. 그런 제도가 있는 회사를 다니게 돼서 너무 감사하죠. 반려인에겐 제일 좋은 복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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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 씨와 함께 출근하는 철수는 스튜디오 내를 자유롭게 활보한다. 피곤하면 진양 씨의 책상 아래 누워 잠들다가 다른 반려견이 출근하면 함께 활발히 뛰어놀 줄도 안다. 그저 명랑하고 건강해 보이는 철수. 증세가 많이 호전된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여전히 진양 씨는 조심스럽다. “누가 뒤에서 확 안으면 비명을 질러요. 처음엔 제 그림자만 덮쳐도 드러누워서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거든요. 이런 경우 과거에 누군가에게 갑자기 걷어차였을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안는 행동에 민감해서 조심히 들어 올려야 해요. 아직 나아지고 있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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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더니, 철수죠?


올 초 의류 브랜드 NII와 땡큐스튜디오의 협업으로 ‘해피니스’라는 캠페인이 진행됐고, 이 일환으로 반려동물 사진 콘테스트가 열렸다. 이 소식을 접한 진양 씨는 처음엔 무신경했다. 지인들이 철수도 응모해 보라고 부추겼지만 그런 데는 에이전시 있는 프로 모델견들이 나가는 거라 생각했다고. 그러다 기대감 없이 슬쩍 내본 철수의 사진이 덜컥 뽑히게 됐고, 촬영 후 SNS를 중심으로 점점 철수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 눈에만 귀여운 줄 알았다”던 진양 씨는 계속 번져가는 철수의 유명세가 아직 좀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제 인스타그램에 철수 사진을 올렸는데 점점 제 계정이 ‘멍스타그램’이 되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철수 사진에 반응하고 더 올려 달라고 요청해서 아예 따로 철수 계정을 만들게 됐죠. 제 계정인데 제 얘기를 올릴 수 없더라고요.(웃음)”

거리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지나가다 덜컥 “얘 철수 아니냐”고 물으면 편한 차림으로 동네를 걷던 진양 씨는 좀 난처해진다. 친구들도 철수가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담배도 못 핀단다. 한 번은 도로 위에 차가 멈춰서더니 창문을 내리고 강아지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이름을 말해주니 “거 봐, 철수 맞잖아”하며 가던 길을 갔다. 연예인도 아닌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신기하다는 진양 씨는 이 기분 좋은 부담을 어떠한 의무감으로 승화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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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믹스견


“사람들이 철수 종을 물어보면 유기견 출신에 믹스견, 잡종이라고 일부러 더 떳떳하게 말해요. 믹스, 잡종, 혼종, 똥개. 전혀 부끄러운 단어가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건강하지 않거나 지능이 떨어지거나, 사람과 소통을 못하는 게 아닌데 믹스견이는 이유로 파양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진양 씨는 ‘믹사모’(믹스견을 사랑하는 사람들)라는 네이버 카페를 만들었다. 이 커뮤니티를 더 활발하게 운영해 믹스견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나마 변화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철수를 입양하게 된 계기와 연관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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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 씨가 입양을 결심한 건 유기견 입양을 권장하는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캠페인 덕분이었다. 과거 유기견에 얽힌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적극적인 입양 권장이 실천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그래서 그는 유기견 철수가 활기차게 활동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일이 또 다른 가엾은 생명을 구하는 단초가 되리라 믿는다. 그런 자신도 둘째를 입양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얼마 전 보호소 내 공고 기간이 지난 강아지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입양 가능성이 있어 좀 더 오래 데리고 있을 거라는 답변이 와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머지않아 안락사됐다. 임시 보호라도 할 걸,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유기견들은 그렇게 생사를 건 공고를 걸고 시한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관심과 시선들이 곤란할지라도, 진양 씨와 철수가 더욱 힘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CREDIT

김기웅

사진 엄기태

자료협조 안진양?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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