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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네 그림일기 | 고마워, 우리 가…

  • 승인 2016-11-08 09: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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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네 그림일기

고마워, 우리 가족이 되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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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되는 건 운명 같은 일


인연이라는 건 정말 신기하다. 삽살개를 입양할 수 있다고 해서 가본 곳은 집에서 40분가량 떨어진 도심의 작은 막걸리 집이었다. 강아지라고는 한 마리도 없을 것만 같았지만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함박웃음부터 지어졌다. 세 마리의 오동통한 청삽살개들이 신나게 가게 안을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갓 2개월 된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큰 덩치들이었지만 아가들답게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처음본 사람이 신기했는지 옷을 물어뜯기도 하고, 관심 좀 달라며 매달리는 아이까지. 강아지들의 환대에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이 강아지들 중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두 다 예쁘고 귀여웠다. 어느 아이를 새 가족으로 맞을지 잠시 고민했지만, 가족이 되는 건 역시 운명 같은 일이었다.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추듯 눈에 바로 들어오는 강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다리를 덜덜 떨며 벌러덩 드러눕는 모습에 ‘아, 이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겉모습, 성별, 이런 저런 조건들을 다 접어두고 바로 그 자리에서 주인아저씨에게 한 달 뒤 이사 가는 날에 데리러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이름이 없었던 그 강아지는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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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우리 집으로 데려오던 날


그 날은 좋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름이를 처음 데리러 간 날 큰 라면 박스를 한 개 챙겼다. 처음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하러 가는 길이라 뭐든 조금씩 어설펐지만 어릴 적부터 키우고 싶었던 개를 드디어 데려온다는 생각에 마음에 한껏 들떠 있었다. 여름이는 전에 보았던 것처럼 동생 강아지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고 있었다. 막걸리 집 한쪽에는 여름이의 엄마 토리라는 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뭔가 안다는 눈치였다. 출발할 때 챙겨온 박스에 여름이를 넣고 차에 탔다. 차 밖에는 여름이 동생들과 토리가 여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 위로 털이 내려와 토리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앉아있는 모습이 조금은 슬퍼 보였다. 여름이도 동생, 엄마와 헤어지기 싫은지 상자 속에서 계속 끙끙 소리를 냈다. 가는 길 내내 여름이는 앓았다. 장거리 이동이 힘들었는지 침을 한 바가지나 흘리기도 했다. 출발하기 전만 해도 엄청 즐거워 했는데 보송보송하던 가슴 털도 다 젖고 큰 눈에도 물기가 그렁그렁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와 오빠는 여름이라는 새 가족을 얻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지만 그날의 여름이는 엄청 힘들었겠지. 여름아 미안해. 우리랑 엄마한테 자주 놀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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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기를


여름이가 온 날 애견 용품점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샀다. 대형견이니까 커다란 밥그릇 두 개, 아직 아가니까 주니어용 사료, 산책 나가야 하니까 목줄도 사고, 가지고 놀 작은 장난감 한 개와 개껌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는 하나씩 여름이 앞에 펼쳐놓았다. 오빠는 여름이를 보면서 우리 집에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가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여름이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처음 우리 집에 발을 디딘 여름이는 뭔가 움츠러들고 아주 조심스러워 보였다. 맛있는 간식 앞에서도 시큰둥했고 좀처럼 반응을 하지 않아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어볼까 고민하다, 여름이 엄마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러봤다. 여름이는 그제야 귀를 쫑긋거리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엄마와 동생들이 그리웠나 보다. 적응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가 진정한 가족이 되는 날까지 여름이에게 잘해줘야겠다. 여름아, 우리 가족이 돼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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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좋은 곳으로 가렴


전화를 받고 너무 놀랐다.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던 것 같다. 여름이를 입양한 이후에도 분양해 주신 분과 종종 연락을 하면서 지냈는데 그날은 아주 무서운 소식이 전화기 사이로 흘러나왔다. 여름이 동생 중 하나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귀엽고 발랄한 아이였는데… 아저씨는 그날 이후 엄마인 토리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러고 보니 여름이를 데려온 막걸리 집 아저씨가 강아지들에게는 목줄을 채워놓지 않았던 게 기억났다. 목줄만 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만 들었다. 바로 옆에 누워있는 여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름이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는다면 얼마나 슬퍼할까? 하나야,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쉬어…?

CREDIT?

글·그림 민경숙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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