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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의 철부지 원주댁 길들이기

  • 승인 2016-10-18 15: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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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만나다

구름이의 철부지 원주댁 길들이기

좋은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가 팽배한 세상 속 가정은 상처받고 지친 심신을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친구도 연인도 해줄 수 없는 특유의 유대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내 편으로 남아 함께 있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서울을 떠난 지 어언 4년. 힘든 시간을 이기고 완벽한 원주댁으로 거듭난 혜진이의 성장기를 보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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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친구보다 가까이 있는 개가 낫다


학창시절 때는 친구가 전부인 줄 알았다. 졸업한 지 어느 덧 10여 년, 지금은 직업도, 사는 곳도, 문화도 다른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잊고 사는 것 같다가도 문득문득 추억에 젖을 때가 있다. 강원도 취재를 다녀오는 길 영동고속도로 위 ‘원주’라는 이정표를 보자 혜진이가 떠올랐다. 4년 전 결혼을 계기로 정든 동네와 직장을 떠나 원주에서 새 삶을 시작한 고등학교 절친이다. 친구들끼리 산간지방으로 가냐며 놀렸다.

전화를 걸었다.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바로 어제 통화한 양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10년 지기 우정의 힘이다. 시간 되면 들렀다 가라는 말에 해야 할 일거리들이 떠올랐지만 어느 새 차는 문막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결혼식 이후 잘 보지 못했는데 어엿한 원주댁이 되어 있었다. 듬직한 신랑 엄영훈 씨와 사랑스러운 구름이도 함께 만났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유기견 입양을 도와달라고 했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앞으로 인생의 변화가 많을 신혼부부에게 반려동물은 자칫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 특히 신랑이 탐탁지 않아 하는 입장이라 더욱 그랬다. 그런데 혜진이가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준 것은 허울만 좋은 우정이 아니라 강아지 한 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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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 때 뭉게뭉게 찾아와준 구름이

여느 신혼부부처럼 혜진이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평범하게만 보이던 임신이 이토록 어려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병원 치료와 좋다는 건 다 해봤지만 하늘은 가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오면서 2달 만에 급격하게 15키로가 쪘다.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자괴감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더니 결국 혼자만의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울증은 그녀를 무섭게 집어삼켰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집 안에 틀어박혀 멍하니 울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점점 사람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 어떻게든 바깥세상으로 끌어내려는 영훈 씨의 노력에 억지로 따라나선 외출에서 쇼윈도 속 한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아이들은 하얗고 솜사탕 같이 예쁜 거야. 사람한테 꼬리도 흔들고. 근데 얘는 눈가가 다 젖어서 갈색으로 변해 있고 구석에서 눈치만 보는 거지. 그 모습이 나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다행히 개 키우는 걸 반대했던 신랑도 순순히 한 번에 오케이를 하더라. 인연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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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채워주는 가족이라는 이름


그렇게 구름이는 가족이 되었다. 초반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지금의 생기 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아지 한 마리 왔다고 드라마틱하게 우울증이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또 그냥 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는데 구름이가 내 손 사이로 얼굴을 들이미는 거야. 울지 말라고 온 몸을 다해 위로해 주는 게 느껴지더라고. 울컥해서 펑펑 울면서 사과했어. 이런 집으로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어느 순간 안고 잠들었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푸욱 깊게 잔거 있지. 일어나서 보니까 물그릇도 비워있고 패드도 더럽더라. 그 때 이러면 안 되겠구나 갑자기 깨달은 거지.”

구름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자 다시 집안일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구름이 덕분에 남편과 할 이야기도 많아지고 더욱 돈독해졌다. 주말이면 세 식구가 근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갔다. 구름이를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을 배웠다는 두 사람. 보답이라도 하듯 구름이도 백점짜리 애교로 웃음을 선물 했다. 다행히 혜진이는 점점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으로 거듭났다. 지금의 자랑스러운 내 친구의 모습은 포기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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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


남편 영훈 씨의 변화도 놀랍다. 예전에는 누구 엄마, 아빠 이런 식의 호칭을 질색했다는 영훈 씨. 어떻게 사람이 개 엄마가 될 수 있냐며 혀를 끌끌 차던 그가 이제는 “우쭈쭈쭈 우리 구름이 아빠가 물 갖다 줄까욥?” 애기한테 말하듯 혀 짧은 소리가 몸에 배어 있다. 혜진이가 한 마디 거들며 고자질한다. “우리 집은 구름이한테 보리차를 주는데 하루는 외출을 오래해야 하는 거야. 여름이니 상할까봐 수돗물을 놔주는데 오빠가 난리가 난 거지. 어떻게 우리 구름이한테 그럴 수 있냐고. 그 바쁜 아침에 나가서 생수 사와서 주고 갔다니까.”

둘은 해외여행이 아닌 이상 어디든지 구름이를 꼭 데리고 간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더 힘든 사람 아이도 데리고 다니는데 하며 쿨하게 대답하더니 가족인데 그럼 두고 가냐고 되묻는다. 이 부부의 앞으로 인생계획은 더 멋지다. 2025년이 오면 둘이 세계 여행을 떠날 것이란다. 왜 2025년이냐고 묻자 개 평균수명이 13년이니 구름이가 하늘나라로 갈 때쯤 맞춘 것이란다. 끝까지 책임질 각오가 아름답다. 앞으로 닥쳐올 인생의 수많은 고비에도 세 식구는 괜찮을 것이다. 부족한 것을 채워 온전하게 만들어 줄 서로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친구야, 늘 행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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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애진 ?|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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