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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그리다 | ① 동상이몽, 두 개의…

  • 승인 2016-10-04 09: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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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1

동상이몽, 두 개의 붓

반려동물 화가 곽수연과 김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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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시대를 기민하게 읽는다. 돈의 냄새를 맡는 코를 지녔기 때문이다. 달마시안, 콜리, 셰퍼드가 유행했던 시기에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101마리 강아지>, <래시> <린틴틴>이 짭짤한 성공을 거뒀다. 지금 TV를 틀어보자. 어느 때보다 개들이 넘쳐난다. 한쪽에선 반려동물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개는 유행처럼 소모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개를 예술의 영역으로 추어올려 온 사람들이 있다. '멍멍작가'라 불리는 한국화가 곽수연과 '반려견 초상화'로 이름난 서양화가 김연석을 한 테이블 위에 앉혔다. 수년간 다른 방식으로 개를 그려온 두 사람의 생각이 부딪히고 때로 공명하며 저마다의 꿈의 얼개를 얼핏 그려냈다.

안산시 단원구에 개장한 김연석 작가의 갤러리카페 '기억하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초면이었지만 이미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특히 곽수연 작가는 김 작가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며 도착 전부터 설레 했다. 둘은 각각 한국화와 서양화라는 전혀 다른 양식의 그림을 그리지만 공히 개와 강아지를 담아냄에 모종의 연대감으로 묶여 있었다. 통하는 부분에선 눈짓으로 끄덕이며 넘어가는 터에, 좀 더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청한 게 여러 번이었다. 둘의 자유로운 대담을 몇 개의 주제로 묶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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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Bird 72.7X60.6cm 장지에 채색 2014 ⓒ곽수연? / Edition 2016 ⓒ김연석?

의인화된 개, 사실을 더 사실처럼


화폭에 개를 담는 건 같지만, 소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두 사람에게 자신의 작품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물었다.

곽수연

저는 확실한 대상이 아니라 불특정한 개를 그려요. 스케치 후 작업에 들어가는데 의인화된 개가 주로 등장합니다. 책가도처럼 사람들이많이 쓰는 물건을 배치하고, 사람들에게 가장 잘 길들어진 개를 사람 대신 등장시키는 거죠. 그 안에 풍자와 해학을 담고, 사회적 메시지도 넣어봅니다. 전통 진채(아교 물에 물감을 개어 종이나 비단 위에 두껍게 쌓아올려 그리는 것)라는 조선시대 채색법을 그대로 써서 작업하는데요. 아직도 복원 중인 기법이라 현대적 시도를 접목해 여러 실험을 하고 있어요. 한국 사람인데도 한국화라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잖아요. 이러한 시선과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지요.

김연석

저는 초상화가잖아요. 의뢰를 받아 그릴 때가 많은데 대상과 같지 않으면 사질 않아요. "내 개가 내 개 같지 않아요"라고 해버리면 곤란하니까, 사실을 더 사실처럼 그리는 데 목적을 두고 있죠. 보통 대상 뒤의 배경을 강렬하게 넣는데요. 개라는 대상이 그리 강한 인상을 주진 않거든요. 귀엽거나 얌전하고, 때로는 아둔한 느낌이라 뒤에 밋밋한 색을 넣기보다 거친 터치 위에 빛이 들어오는 후기 인상파의 기법을 많이 재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와 인간의 어우러짐이나 유사성을 그리는 게 아니라 견종의 특징, 그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집중해요. 의뢰인에게 사진을 받아 작업할 땐 최대한 사진을 많이, 연속으로 찍어달라고 합니다. 귀여운 말티즈라고 해도 증명사진처럼 찍으면 전혀 귀여워 보이지 않아요. 표정이 확 살아나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반려인과의 생활 속에서 묻어나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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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time (十二支神) 121X189cm 장지에 채색 2016 ⓒ곽수연????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완성작을 진열하고 작가의 프로필만 소개하는 여타 기사에서 얻어내지 못한, 직업의 지난한 세계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세한 제작 과정을 물으니 두 사람은 다소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꽤 긴 답변을 내놓았다.

김연석

유화의 기법은 덧칠이에요. 한 번 마르는 데 4~5일이 걸리고 네 번 이상 덧칠을 하니까 작품을 하나 완성하는 데 적어도 보름은 걸리는 거죠. 마른 다음에 그 전에 있는 색을 지우며 덧칠하는 게 아니라 덜 마른 부분과 색을 섞어서, 마치 씨줄과 날줄을 엮어 반복해 올리듯이 새로운 발색을 내는 게 포인트예요. 어두운 부분을 먼저 칠하고 이후 밝은 색을 덧입히며 형태가 드러나는데 그 순간이 굉장히 짜릿하죠. 후반 털 묘사에 공을 많이 들이는 이유가 그래서예요. 그럴수록 생동감이 배가되거든요. 요즘 많은 화가들이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포스터 같은 깔끔한 화풍을 선호해요. 그건 1~2분이면 굳는 소재예요. 근데 그런 평면적인 그림은 대상을 더 귀엽게 만들 수는 있지만 시간이 만들어주는 깊이감과 생동감을 집어넣지는 못해요.

곽수연

전 평소에 메모를 자주 해요. 그림에 우화적 요소를 담아 에피소드 식으로 만들다 보니 삶에서 느껴지는 작은 통찰들,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을 기록해 놓는 게 도움이 많이 돼요. 그 후에 개의 표정이나 골격을 잡아 밑그림을 그리고 그걸 배경으로 삼아서 작업에 들어가요. 제작 기간은 크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작품 별로 빠르면 2주, 넉넉히는 한 달 정도 걸리고요. 김 작가님과 완전히 다른 부분인데, 저는 밝은 곳부터 시작해 어두운 걸 후에 그리죠. 호분이라고 조개를 간 흰색이 있는데, 그걸 먼저 입힌 후에 어두운 색을 차차 더해가요. 사용하는 색은 오방색으로 제한되어 있기는 한데 완성시켜보면 정갈하게 정돈된 느낌이 들지요. 그리고 서양화는 어두운 색부터 들어가서 수정이 용이한 편인데 한국화는 덧입히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그러다보니 작품에 들이는 시간 못지 않게 사전 작업에 힘이 많이 들어가죠. 한번 스며들면 고치기 어려우니까요.

bc47fb6ff0d093b0313f50487483c308_1475539?녀석들 80x80cm oil on canvas 2016 ⓒ김연석??

“개 선생에게 한 수”


한 폭의 작품에 깃든 시간과 노력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동물을 그리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곽수연 작가는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았고 김연석 작가는 의뢰인의 만족을 언급했다.

곽수연

처음부터 개를 의인화해 그린 건 아니에요. 배경도 거의 없이 개만 그렸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개를 키우면서 내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그리고 현 사회와 자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후로 개를 사람처럼 그리면서 전시 테마를 '개 가라사대', '견씨 이야기' 같이 잡고 있지요. 작품을 보면 개는 집 안에 있고 사람들이 돈을 벌러 나가요. 개들이 사람처럼 누리며 선비가 되고 선생이 되는 거죠. 그 위에 사회에 반항적인 메시지를 담아보는데, 그 과정에 묘한 쾌감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반려인과 반려견을 함께 볼 때 그 사이에 어떤 조화를 찾아내게 돼요. 신경질적인 아주머니의 강아지는 어딘가 예민해 보이고요. 조폭처럼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귀여운 강아지를 기르는 걸 보면 웃음이 나지요.

김연석

보통 그림을 의뢰하는 분들은 개가 막 태어났을 때는 찾아오지 않아요. 오히려 이별을 하거나 개가 늙어서 죽음을 앞둘 때 그림으로 남기려고 해요. 그래서인지 젊은 층보다 60대 이상의 사람들이 더 많이 방문합니다. 옆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카페 바로 옆에 내과 병원이 있었다.) 안 좋은 판정을 받은 분들이 들르는 경우도 꽤 돼요. 자기 몸이 안 좋으니, 집에 있는 반려견과 헤어질 일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경우를 보면 반려인들이 개를 자신과 동일화 해놔요. 둘도 없는 가족이자, 나 자신이 되기도 하는 거죠. 그 때는 제가 그리는 게 예술이 아니라 기록이 됩니다. 어디에도 없는, 남다른 의미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게 되는 거예요. 카페의 이름을 '기억하기'라 지은 것도 그 이유고요.

bc47fb6ff0d093b0313f50487483c308_1475541武陵桃源(무릉도원) 64X130cm 장지에 채색 2013?? ⓒ곽수연?????

"예술로 구색을 맞추려 든다"


한국에서 독보적인 반려동물 화가인 두 사람에게 화가로서 겪는 고충을 물었다. 이에 곽수연 작가는 과거를, 김연석 작가는 현재를 얘기했다.

곽수연

처음에 개 그림 전시를 했을 땐 사람들이 보러오지도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선 개를 친숙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하찮게 보는 시선도 강하잖아요. 지금은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15년 전만 해도 개를 소재로 그린다고 하면 주변에서 낮잡아 보는 사람들이 있었죠. 개를 그리니까 본인들이 개를 여기는 수준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한 번은 전시장에 어떤 중년 남성분이 들어와서 대뜸 욕을 하고 가신 적도 있었어요.

김연석

전 아직도 그런 대우를 느껴요. 반려견 미용사나 훈련사는 엔터테인먼트가 접목되면서 위상이 많이 올라갔는데 개를 그리는 화가들은 저 아래로 떨어져버렸어요. 애견 박람회나 동물병원에서 작품 의뢰가 들어오는데 마땅한 값을 쳐주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반려 산업이 성장하니까 여기저기서 덤벼드는 사업자들이 많은데요. 이쪽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는데 어떻게든 구색은 맞춰야 하니까 문화 예술을 안고 가려는 거예요. 얼마 전엔 타워 팰리스 근처에 여성 전용 헬스장을 여는데 그림 몇 점 걸어놓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강아지 작품이 전시된 헬스장'으로 유명세 한번 타보려는 거죠.

두 사람 모두 개를 그리기 시작했던 과거보다 화가로서의 인식과 처우가 좋아졌다는 사실에 동감했다. 동시에 예술이 여전히 대중에겐 어렵게, 비즈니스에선 너무 쉽게 여겨지는 양면적인 세태를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곽수연 작가는 끊임없는 창작 활동으로 대중과 활발히 접촉하며 활로를 찾고, 김연석 작가는 근래 개업한 갤러리 카페를 일구며 미술 교육에 매진할 계획이다. 대화 내내 부풀었던 두 개의 꿈은 결국, 하나의 과녁을 겨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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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연 kwak Suyeon

한성대학교 예술대 회화과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겸재정선기념관 선정 내일의 작가 수상

전시 일정

10.6~10.11 에코락 갤러리

10.7~11.13 전남 GS 예울마루(여수) 동물 전시 그룹전



김연석 Kim Yeonseok

개인전 및 초대전 12회

2015 대한민국 신지식 경영 대상 문화인 부문 수상

시카고 아트컬렉션 특선

펫 아트스쿨 '기억하기&카페'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529-1 에이스타워 4층

연락처 010-9007-3348

CREDIT

김기웅
사진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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