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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의 이름

  • 승인 2016-08-23 15: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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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생각하시기에 수의학을 전공하면 동물에 대해 모든 것을 알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사실 내가 수의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했을 땐 말티즈가 뭔지, 시추가 뭔지도 몰랐다. 물론 오래 전이라 지금처럼 반려견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일이지만, 어쨌든 대학교에서 개의 품종이나 감기 치료법을 알려주진 않는다. 말하자면 대학은 학문을 배우는 것이라 기초와 임상으로 나뉘고…….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샜다. 아무튼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처음으로 동물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강아지와 고양이 품종을 배우거나 진료와 약의 사용법을 배우는 등, 사람으로 치면 갓난아기가 말을 배우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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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맡겨진 시추 한 마리


그러던 어느 날, 밤이 늦었을 때 조금 초라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남자분이 내원하셨다. 손에는 작은 시추 한 마리를 그냥 아무렇게나 귀찮다는 듯이 들고 입장하셨다. 일단 진료대에 강아지를 올리고 차트를 작성하고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언제 데리고 오셨어요? 증상은 언제부터 나타났나요? 사료는 먹나요? 나의 이런저런 질문에 보호자가 귀찮다는 듯 한마디 했다. 입원 되나요!

마침 원장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셔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아이의 상태를 보니 누런 콧물에 먹질 못해서 뼈만 앙상하고 기침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아이 상태가 좋지 않음을 경험이 없는 나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일단 입원을 받았다. 보호자분은 연락처를 남기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시고는 병원 명함을 들고 도망치듯 문을 박차고 나가시는 것이었다.

얼마 뒤 병원에 오신 원장님은 상황을 들으시더니 갑자기 처음으로 나에게 진료를 맡기셨다.

"김 선생이 맡아서 검사와 치료를 진행해 봐요!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고."

"아니, 원장님! 제가 뭘 안다고 저에게 맡기세요. 그러다가 강아지가 죽으면 어떡해요!"

"아니야, 김 선생. 잘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이유는 나중에 알려줄게."

나의 손에 달린 작은 생명


갑자기 책임감과 사명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일단 자청해서 야간 당직을 맡겠다고 하고 집에 전화해 어머니에게 바빠서 며칠 집에 못 간다고 연락해두었다. 어머니는 열심히 할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으시는 것이었다, 난 굉장히 심각했는데….

일단 검사를 진행하고 원장님과 내가 가진 모든 책을 책상에 펼쳐 놓고 진단을 내려야만 했다. 하루 동안 끙끙대며 살피다 보니… 홍역이었다. 개 홍역(distemper)이라는 결과를 얻어 내자 기쁨도 잠시,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읽으며 절망했다. 개의 질병 중 가장 무서운 것으로 증상이 심할 경우 생존 확률도 상당히 낮은 병이었다. 더군다나 후유증까지도 남을 수 있었다.

치료에 대한 설명해 드리려고 보호자 분에게 전화해도 통 받지 않고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원장님에게 말씀드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래, 그럴 거 같더라. 김 선생, 주인이 포기한 아이에 더군다나 홍역이니,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봐. 공부하면서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보통 이런 경우 실력 있는 수의사보다 정성을 다하는 수의사가 치료 확률이 높더라고."

마음을 다했으니까


책을 찾아보고 모르는 것은 원장님께 여쭤도 보고 수액도 맞추고 항생제와 해열제도 사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주일 쯤 후 원장님께 상태 좀 봐달라고 청하니, 이제 위험한 고비가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잘했어. 이렇게 어려운 케이스를 치료해 보면 실력도 한 단계 상승하는 걸 느낄 수 있지. 이제 입양할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벌써 이 녀석을 입양보내야 한다는 것에 갑자기 허무함과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연락이 끊긴 보호자에게 다시 연락을 취해봤지만 소용없었고….

우리 가족은 부모님, 결혼해서 분가한 형, 나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였는데 치료하는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가니… 가족 모두가 역시 우리 집에 수의사가 생기더니 동물을 데리고 들어오는구나, 하며 웃었다.

이름을 정했다


다음날 집에 퇴근해 가니 어머님이 웃으면서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었다며, 분가한 형과 형수님까지 집에 와서 다들 웃음꽃이 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만 빼고 말이다. 뭘로 지었냐고 뚱하게 물어보니 어머니가 대답했다.

"네 형이 준섭이고 네가 명섭이잖아, 섭 자 돌림이라서 강아지 이름을 옥섭이라고 지었다."

이 말에 나를 제외한 가족들의 웃음이 다시 한 번 터지는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당황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얘 암놈이야!"

가족들은 한 번 더 큰 소리로 웃었다.

결국 옥섭이를 옥봉이라는 여자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데는 가족 모두 실패했다. 한번 옥섭이는 영원한 옥섭이라며. 이렇게 나에게도 동생이 생겼다. 그때 많은 즐거움, 그리고 슬픔은 조금만 남기고서 옥섭이는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이제는 모두 가족을 꾸린 형제들이 모일 때면 우리는 가끔씩 옥섭이 얘기를 하고 그리워하곤 한다.

그 시절 옥섭이를 통해서 아주 조금 실력이 늘은 수의사가 된 나는 지금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치료하는 수의사로 살고 있다. 잊지 않고 이렇게 옥섭이에 대한 추억을 글로 남길 수 있게 해준 옥섭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사랑한다, 옥섭아!



CREDIT

애니케어 목동점 김명섭 원장 (blog.naver.com/anicare3375)

그림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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