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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즐거운 치료

  • 승인 2016-06-20 1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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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즐거운 치료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나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나 아마 느낌은 비슷할 것이다. 치료가 잘 이루어졌을 때는 성취감과 행복이 느껴지지만, 치료가 실패하거나 반응이 잘 나타나지 않으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모든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조금씩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뭐랄까, 즐거운 치료라고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치료 자체가 확실하고, 그 후 증상이 확연히 좋아지며, 환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경우일 때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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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시작해볼까?


나이가 15세 정도 된 늙은 시추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통키. 몇 개월 전부터 우리 병원에 정기적으로 내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데, 정말 즐거운 치료인지 독자 분들도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유리창 밖으로 통키 어머님이 통키를 이동장에 넣어 데려오는 모습이 보이면 나는 날짜가 벌써 이렇게 됐나 하고 달력을 슬쩍 확인하게 된다. 간호사는 얼굴이 굳으며 병원 밖으로 재빨리 뛰어 나가면서 자신의 할 일을 한다. 또한 미용사도 긴장된 표정으로 현재 하고 있는 미용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나 역시 많은 양의 약을 주사기로 뽑아서 굳은 얼굴로 준비를 시작한다. 휴지도 많이 준비해야 하고 비닐장갑과 마스크도 착용한다. 이제 치료를 시작할 곳의 문을 닫고 혹시 대기하시는 손님이 계시면 사실을 말씀드리고 강아지의 고통에 겨운 비명소리가 들릴 수 있으니 놀라지 마시라고 안심시킨다. 치료 후 통키가 있을 곳도 미리미리 준비해놔야 한다.

그러면 이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통키는 이제 곧 이어질 치료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는다. 반복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이제 꽤 달관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초기에 치료할 때만 해도 엄청나게 긴장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간호사와 미용사들이 눈짓으로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빨리 치료를 진행하라고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해오고, 나는 심란한 표정으로 이번 치료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 없이 깔끔하게 끝나길 기도하며 천천히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통키의 곁으로 다가간다.

일단 보정이 중요하다. 치료를 시작하면 어떨 때는 극심한 통증이 동반되어 엄청난 몸부림에 자칫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커다란 주사기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통키를 나의 안전하고 강한 팔로 꽉 껴안은 다음 그것으로도 모자라 간호사가 두 손으로 통키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는다. 그리고 우리의 치료를 돕기 위해 뒤에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미용사는 치료의 과정을 인상을 최대한 찌푸린 채 지켜보고 있다….

드디어 치료가 시작된다. 커다란 주사기에 들어 있는 많은 양의 약을 통키에게 한 번, 두 번… 여러 번 주입하게 된다.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을 느끼지 않는 듯한 통키가 대여섯 번의 약물 주입 후부터는 조금씩 몸이 불편한지 요동치며 가벼운 고통에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통증에 따라서 마사지를 해주어야 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강력한 파워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좋지만, 그 세기에 따라 통키의 통증 역시 심해지기 때문에 강약조절을 적절히 하지 않으면 통키의 비명소리에 병원이 떠나갈 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최대한 강하게 통키의 몸을 마사지한다.

약간 시간이 흐르면 통증이 잦아들고 안정이 찾아온다. 그러면 다시 주사기에 준비된 약을 주입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두 번 반복하고 통키의 몸을 마사지한다. 이전에는 돌처럼 딱딱하던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며 조금씩 말랑말랑 풀려가고 있다.

치료는 마지막 절정을 향해서 달려간다. 몸이 풀리자 통키는 이제 통증보다는 약간 황홀한 표정까지 지으면서 빨리 끝내달라는 기쁨의 하울링을 시작한다. 꼭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클라이맥스는 바로 지금


정말 마지막 순간, 대형사고는 이럴 때 발생한다. 얼마 전 바로 이 순간 때문에 1시간 정도 업무 마비가 온 적도 있지만, 이제 만반의 준비가 되어 더 이상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드디어… 통키의 항문에서 2주 정도 쌓여 있던 변(…똥 덩어리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아니 뭐 조그마한 개가 볼일 보는 것을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표현하나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직접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가실 것이다. 5kg밖에 나가지 않는 통키의 몸에서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시장에서 물건 팔 때 담아주는 검정 비닐봉투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이 나온다. 성인 3, 4인분은 될 듯한….

이렇게 치료가 종료되면 병원은 변 냄새로 가득 찬다. 이미 간호사와 미용사가 병원에 있는 모든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지만(한겨울, 얼어 죽을 정도로 추울 때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냄새가 아주 거의 기절할 정도다. 기다리시는 손님이 있을 때는 손님들이 모두 병원 밖으로 나가서 대기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통키는 이제 정말 원 없는 표정이 된다. 큰일을 치르고 나서 다가오는 나른한 피곤을 즐기며 잠드는 환자를 보는 수의사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약간 힘들긴 해도 치료에 대해 확실히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런 진료를,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자!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의 강아지는 어떠한지.

사족 : 강아지들은 다른 동물에 비해 변비가 심한 건 아니다. 초식동물들은 장이 길어야 풀의 섬유질을 분해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문제가 생기기 쉽지만, 개의 조상은 육식동물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비 문제가 덜하다. 이 글의 주인공 통키는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무조건 먹고는 싸는 것을 잊어버린 것인데 초기에는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악성 변비로 고생하고 있다. 먹는 것도 조절하고 변비가 덜 생기는 사료로 바꾸긴 했지만, 모든 병은 심해지기 전에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CREDIT

애니케어 동물병원 목동점 김명섭 원장 (blog.naver.com/anicare3375)

그림 우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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