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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인연이었기에, 작은 기적

  • 승인 2016-04-01 16: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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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인연이었기에, 작은 기적


수의사로 병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중에도 유독 기억에 남는 녀석들이 있다. 그중 시추 믹스종이었던 ‘다리’는 15년 전쯤, 내가 병원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유기견 신분으로 처음 만나 7년을 함께 보냈다. 암컷이지만 왠지 정말 수컷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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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절뚝거리는 유기견

뒷골목을 배회하던 더러운 개를 동네 아이들이 줄에 묶어서 병원에 데리고 온 것이 나와 그 녀석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이미,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뒷다리 두 개를 다 절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골반에 골절이 있었고, 다시 붙는 과정에서 정확히 붙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치료하기에도 어정쩡한(다시 수술하려면 뼈를 또 부러뜨려야 해서) 상태였다. 생활에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

7~8살쯤 되어 보이는 이 평범한 유기견에 대해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도 병원에 유기견이 많이 들어오니 내가 모두 기를 수도 없기 때문에, 입양이 가능하면 입양을 보내고 불가능하면 어쩔 수 없이 유기견 센터로 보내야 했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불편한 아이를 입양할 가정은 거의 없고 얼굴도 예쁜 편이 아니어서, 유기견 센터로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일단 철장에 들여보냈다.


우연이 겹쳐서 만든 인연

혹시 이런 옛날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개구리 두 마리가 있었다. 호수에서 평화롭게 놀던 개구리들은 근처 사람이 사는 집에 문이 열린 걸 보고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거기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 커다란 항아리를 보니 우유가 담겨 있었다. 그 냄새에 현혹되어 그만 항아리에 빠지게 되었는데,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한 마리는 그만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며 죽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끝까지 발버둥을 쳤고, 그러다보니 기적이 일어났다. 우유가 치즈로 변하면서 딱딱해져 치즈를 밟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 첫 번째 우연이고, 두 번째 우연은 '다리'가 만들었다. 병원에 들어온 날부터 다리로 철창을 엄청나게 긁어댔던 것이다. 발바닥에 피가 나도록 긁는 바람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발라주었지만 붕대를 감아줘도 여전했다. 솔직히 놀란 나는 포기하고 강아지를 병원 안에 풀어주었다.그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낮잠을 자는 것 아닌가. 이러면 유기견 센터에 보내도 문제였다. 철장에 갇힐 텐데 거기서도 이렇게 긁으면….

그래서 이름을 '다리'라고 지었다. 다리도 절고, 너를 살린 것도 다리니까. 그래, 네가 나랑 같이 살 운명인가보다 하고 병원의 마스코트로 키웠다. 병원 문을 열어놓아도 어디 가지도 않고 이 근처에만 있었다. 손님들도, 병원 간호사들도 좋아하며 간식을 먹이니 점점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아주 제 세상을 만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며 '다리'도 제법 나이를 먹었다.


갑작스럽게, 너무 갑자기

'다리'는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 어슬렁거리며 병원을 가끔 돌아다니기만 했다. 운동을 한다면 아침 시간에 병원 앞 인도에서 잠시 햇볕을 쬐고 돌아오는 정도였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살던 녀석이, 왔을 때처럼 갈 때도 너무나 황망하고 경황없이 세상을 떠났다.

병원 앞 인도에서 잠깐씩 산책을 하는 건 거의 몇 년간 매일 아침마다 있던 일이었고 또 조심성도 많은 녀석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아침 청소를 하느라 병원 문을 열어놨고 녀석도 인도 위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불법으로 인도에 올라선 자동차에 치여서 그대로 하늘나라로 간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도 몰랐다. 별 소리도 나지 않았고 이렇다 할 외상도 없이, 그냥 자는 것처럼 병원 앞에 누워 있어서 사고가 난 줄도 몰랐다. 그렇게 조용히 떠나버린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간호사와 미용사는 울고불고….

화장을 해서 유골을 곱게 갈아 병원으로 가져왔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몰랐다. 그때 '다리'와 친하던 미용사가 말했다. "그래도 다리가 병원을 제일 좋아하지 않겠어요? 멀리 가는 것보다 병원 앞 가로수 밑에 묻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았다. 이제 유골이 되어 한 주먹도 안 되는 녀석을 병원 앞 가로수 아래에 묻어주었다.

다리야! 마치 기적 같았던 너는 그곳에서도 즐겁게 살고 있겠지… 못 다한, 더 많은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 만나 또 이야기하자!


CREDIT
애니케어 동물병원 목동점 김명섭 원장(blog.naver.com/anicare3375)
그림 우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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