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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과 살아가기

  • 승인 2016-04-01 15: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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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과 살아가기
예쁘지 않지만 예쁜 걸 볼 수 있어

늙은 개는 예쁘지 않다. 어린 개를 입양할 때 꼭 알아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이 개도 어린이, 청년기를 지나 결국은 노견이 된다는 사실이다. 아직 늙음이 까마득히 멀리 있는 지금, 좀처럼 그 시기가 현실로 다가올 것 같지 않지만 나는 늙음을 내 개를 통해서 배운다. 언젠가는 우리가 늙는다는 것, 그리고 그건 어린 시절처럼 신선하거나 푸름이 넘치는 시간은 아니라는 것. 다만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 우리의 15년은 매일 만지고 다듬어온 손길 덕에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빛나고 있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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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아지도 어릴 때 아주 예뻤다. 요크셔테리어의 까만 털이 통통 움직이는 모습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온몸의 까만 털 때문에 이름을 '검둥이'로 지을 뻔도 했는데(당시 중학생이었다), 그러지 않기를 다행이었다. 1살이 되면서 어린 시절의 까만 털은 없어지고 온몸이 은빛으로 변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부터 사진으로 많이 담아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도 흔하지 않고 휴대폰 카메라도 없었다. 그래서 아기 시절의 새까만 모습은 그때 필름 카메라로 몇 장 찍어둔 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

지금의 우리 개는 객관적으로 말해서 그리 예쁘지 않다. 털이 푸석푸석해지고 느낌상 숱도 좀 적어진 것 같다. 한쪽 눈은 녹내장이 와서 하얗고 다른 쪽 눈도 조금씩 백태가 끼고 있다. 언젠가부터 집에서 셀프 미용을 하게 되어서, 그때그때 티 나게 다른 털 길이도 외모 하향에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귀엽다. 예쁘지는 않지만 여전히 작고 귀엽다. 늙어도 귀여울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축복이지 않을까?

우리 개가 어렸을 때, 마찬가지로 어렸던 나는 개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강아지는 1살, 나는 15살이었다. 체육 시간이 제일 싫은 체력 부족 소녀였던 나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이 언제나 숨 가빴다. 산책 훈련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아마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강아지는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바로 계단으로 질주했고, 나는 목줄을 놓치거나 내 속도가 느려 목을 잡아채게 될까봐 최대한 전력질주를 해 강아지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내가 빨리 뛰면 강아지는 더 빨리 뛰었다.

그리고 이제 처음 만났던 그때의 내 나이가 된 강아지는, 그때의 나처럼 느릿느릿해졌다. 계단 앞에서는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처음 배우듯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오른다. 나는 이제 멀뚱히 서서 그 걸음을 기다려주거나, 안아서 올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나름대로 네 개의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종종거리며 걷는데, 내가 걷는 만큼의 속도도 나오지 않아 나는 더 느리게 걷게 되었다. 예전엔 강아지가 나를 산책시켰는데, 지금은 강아지 산책이 나에게는 걷기 운동도 되지 않는다.

느려진 건 걸음뿐이 아니다. 간식을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뛰어오던 강아지가 지금은, 먹을 것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재빠르게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 여기 먹을 거 있어. 하얗게 백태가 낀 눈이 아닌 다른 쪽 눈앞에 대고 흔들어야 날름, 간식을 받아먹는다. 현관문 소리도 잘 듣지 못해 가족이 온 걸 느지막이 알아차리고, 내가 집에 들어오고 한참 후에서야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준다. 그래, 나보다 몇 배나 빠른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는 모든 게 좀 느려질 만도 한 것 같다. 대신 내가 속도를 늦춰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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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꿈에 강아지가 나왔다. 무슨 꿈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꿈에서 울다가 깨어났다. 신랑이 내가 잠꼬대로 강아지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다고 했다. 뭐 개가 나왔으니 개꿈이겠지만, 뻔하다. 나는 내 개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불안하고,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늘 부족하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는 걸 아니까…. 한 번은 며칠간 여행을 갔는데 불현듯 무슨 촉이 느껴져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강아지는 뭐해?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도, 동생도 답이 없었다. 혹시 나 없는 사이에 개가 갑자기 아프거나, 긴박한 상황이거나… 그런 건 아닐까? 그럼 빨리 일단 공항으로 달려가서… 짧은 시간 동안 이 가능성, 저 가능성에 기웃거리며 머리를 굴려봤으나 나의 촉은 근거도 없고 부질도 없다는 것이 이내 밝혀졌다. 강아지는 멀쩡히 잘 있었다. 나는 종종, 그러나 예전보다는 자주 불안하다.

다행인 건, 이제 봄이라는 것이다. 따뜻한 햇볕을 쬐고 풀 냄새를 맡으며 걸을 수 있는 봄. 우리에게는 또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갈 기회가 펼쳐져 있다. 예쁘진 않더라도 예쁜 걸 함께 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 이제 매 순간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그거다.

CREDIT

지유

그림 우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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