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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 아니면 안 되나요? Before…

  • 승인 2016-04-01 15: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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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 아니면 안 되나요?
Before&After 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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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키운다면 꼭 말티즈라고 다짐했다. 막 내린 눈처럼 포실포실한 털, 앙증맞게 박혀있는 까만 콩 세 개, 우아한 걸음걸이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에 어릴 때부터 강아지라고 하면 말티즈가 그려졌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던가. 지금 내 옆에는 너구리를 닮은 누렁이가 누워있다. 남들 눈엔 똥개라도 내 눈에는 세상 최고로 예쁘다.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견종은 상관없어진다. 전국 누렁이들의 설움을 딛고자, 이번 유기견들의 변신은 믹스견 특집으로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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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실이 before



포메라니안이 아니라 더 사랑스러운 남실이

지금 발밑에서 널브러져 자고 있는 남실이는 내 첫 반려견이다. 고양이와 사람과의 인연을 묘연이라고 한다. 묘연만큼이나 묘한 것이 견연이다. 독립을 하고 반려동물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유기견의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내 로망 말티즈는 보호소에 차고 넘치는 종 중 하나였다. 가장 마음이 갔던 아이의 임시보호를 신청했다. 출소 당일, 다행히도 말티즈의 주인이 나타났고 안락사가 닥친 다른 아이가 대신 빠져나와 내 품에 안겼다.

포메라니안인 줄 알고 샀는데 아니라서 버려진 남실이는 정말 못생겼었다. 급해서 데리고는 나왔지만 유기견 입양 담당 운영진들도 막막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고 한다. 게다가 성격도 우울했다. 1살짜리 개린이(개+어린이)의 발랄함은커녕, 눈치를 심하게 보고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남실이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걸음걸이에도 생기가 돋았다. 잘 먹어서 털에도 윤기가 나고 풍성해졌다. 이제는 어딜 가든 인기폭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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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입양 상담을 하다 보면 "순종이예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대체 순종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100만원씩 주며 사고, 섞였다고 버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남실이와 다니다 보면 무슨 종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남실이는 남실이 종이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포메라니안처럼 귀가 쫑긋하지도, 모량이 풍부하지도 않은들 어떠한가. 한쪽만 접힌 귀가 앙증맞고, 신비로운 갈색 눈동자를 가진 나만의 매력덩어리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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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 before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럭스와 명품이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올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까 마음 졸이던 그때 보호소에 생후 3주밖에 되지 않은 꼬물이들이 입소했다. 태어나자마자 안락사라는 가혹한 운명을 마주한 엄마 개와 꼬물이 다섯 마리. 아무것도 모른 채 힘차게 엄마 젖을 빠는 아이들을 보니 참담했다. 엄마는 우리가 흔히 발바리라고 하는 잡종이었다. 새끼들은 얼룩이 2마리와 까망이 3마리로 모두 개성 넘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종에 집착하는 한국에서 믹스견은 설 곳이 없다. 그나마 엄마가 5kg 정도로 몸집이 작고, 아직 새끼라 승산을 걸어볼 만했다. 귀중한 존재로 대접 받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명품 브랜드를 따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엄마 럭스와 루이, 구찌, 마크, 페레, 샤넬 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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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네 명품이들 after


아이들이 자랄수록 입양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전투적으로 입양 공고를 했다. 꼬물이 입양 시에는 솜뭉치 같은 귀여운 모습만 보고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외모가 지금과 달라져도, 나중에 털을 뿜어내더라도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평생 가족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군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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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 after


1년이 넘은 지금, 결과적으로 말하면 (뜻밖에도) 엄마 럭스만 입양을 갔다. 마크만 가정집에서 임시보호를 받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사설 보호소에 위탁 중이다. 아직 집 밥 한 번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 믹스견은 뭐가 다른 것일까? 우성인자를 골라 받아 오히려 더 똑똑하고 건강하다. 2~3개월 된 말티즈나 푸들이 입양 공고에 올라오면 웹사이트는 폭주하고, 입양 담당자들은 문의 전화를 받느라 밥을 못 먹을 지경에 이른다. 똑같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인데 말이다. 섞였으니까 밖에서 키워도 되냐는 문의에 오늘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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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before

미라클을 보여준 기적이

경상남도 함안 보호소에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개가 들어왔다. 덩치만 컸지 천진난만한 개린이다. 특유의 해맑음으로 봉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대로 두면 그대로 장애견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다행히도 안타까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올라와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 결과는 암울했다. 교통사고 같은 큰 충격에 의해 두 동강이 난 척추는 어긋나 있었고 대수술이 필요한 상황. 무사히 수술을 마친다 해도 걸을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아이의 남은 견생이 너무나 길다. 한 살밖에 안 된 이 어린 생명에게 부디 행운의 신이 함께하길 바라며 이름을 기적이라 지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이제 더 중요한 재활치료가 남았다. 뜸 치료와 함께 주기적인 운동과 마사지가 필요했다. 2년 넘게 기적이를 돌봐온 오미연 씨는, 정작 자신은 별로 한 게 없다고 한다.

"일등공신은 우리 미달이에요. 수술은 잘 되었는데 그동안 근육을 안 썼으니 근육이 많이 빠져 다리에 힘이 없었어요. 미달이랑 사이가 좋아서 둘이 하루 종일 우당탕탕 뛰어다니고, 뒹굴고, 레슬링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아픈 애가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어느 날 다리에 힘이 생겼는지 걷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달리기도, 점프력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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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는 미연 씨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기적이의 재활을 위해 참석한 아로마와 마사지 세미나에 큰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공방을 운영하며, 한국반려동물아로마테라피 협회에 소속된 펫아로마 전문강사로 활동 중이다.

이쯤 되면 정말 미라클 같은 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중형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미연 씨의 출산으로 안타깝게도 기적이는 곧 임시보호처를 옮겨야 한다. 기적이의 기적을 함께 나눌 가족이 얼른 오기를 바라본다.

CREDIT

글·사진 박애진? ?| 여행과 반려동물을 담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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