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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 승인 2016-02-15 17: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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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글 애니케어 동물병원 목동점 김명섭 원장
(blog.naver.com/anicare3375)
일러스트레이션 전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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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을 만난 건 두 달 전쯤이었다. 유기견 신분으로 우리 병원에 들어온 녀석은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체구는 당당하지만 나를 닮아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평범 of 평범’ 한 닥스훈트였다. 유기견 센터로 보내지기 전까지 철장에 두고 사료와 물을 주며 돌보기 시작했고, 녀석은 별로 짖지도 않고 사고도 치질 않았다.

거부할 수 없는 스킨십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출근을 해보니 이 녀석이 철장을 빠져나와 병원을 제 집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지 입양을 시켜야겠다 싶었다. 잠깐동안 아이를 풀어놓고 입양 공고를 올리고 있었는데… 이놈이 갑자기 그 짧은 다리로 내 무릎 위에 뛰어 올라오더니 느긋하게 낮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입양공고를 올리는 30분 내내 말이다.


그래, 나하고 인연이 있는가보다 하고 그냥 입양 공고를 취소한 채 우리 병원에서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거대한 먹구름이 나와 내 병원을 감싸는 듯한 불길한 기운을 그때는 알지 못했더랬다(…).

이름이 생기다


바로 그날부로 일단 이름부터 지어졌다. 이제 ‘그놈’이 아니라 ‘애니’라고 불리게 되었고, 7-8세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였던 애니는 중성화를 마치고 스케일링까지 해서 한껏 젊어 보이는 미중년의 아저씨로 탈바꿈되었다.
애니는 행복해 보였다. 간호사 누나, 미용사 누나가 마음에 들었던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사료도 더욱 잘 먹었고, 손님에게 눈빛을 쏘아 간식을 얻어 먹는 생활의 지혜까지도 구사하는 것이었다. 잠잘 곳도 스스로 정했다. 손님들이 대기할 땐 약간의 쿠션이 있는 의자에서 느긋하게 배까지 드러내고 잠을 청하곤 했다. 나는 안심했다. 그래, 함께 지내야 한다면 잘 지내면 오죽 좋을까 하고 내 마음을 애니에게 주고 말았다.

호언장담의 결말은


그리고 며칠 후. 아침에 출근해 보니 애니가 사료와 자기가 자는 의자를 조금 물어뜯어 놓았다. 간호사와 미용사는 난리가 나서 왜 그랬냐며 애니를 혼내려했다. 나는, 내 여자에겐 따뜻하지만 차가운 도시남자로 빙의되어 아무렇지않게 이야기했다.


“괜찮아, 내버려 둬. 내가 훈련시키면 되지. 여기가 어디야? 동물병원이야. 그리고 내가 누구야? 수의사야~ 그까짓 거 하루 이틀이면 애니 완벽히 교정시 킬 수 있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불쌍한 놈이잖아.”
순간 간호사와 미용사들이 바라보던 눈빛이, 애니가 작살낸 사료와 의자 쿠션 값 정도는 충분히 보상해주는 듯했다.
그날 오후부터 애니의 행동 교정을 위한 실미도 지옥 스파르타 훈련이 시작되었다. 리드줄을 통한 제어 훈련, 간식을 통한 유혹 훈련, 과격한 운동을 통한 힘 빼기 훈련, 아로마 향을 통해 쿠션을 싫어하게 하는 훈련 등등을 시키다 보니 내가 더 지쳤다.

그리고 다음 날, 어제보다 의자는 더 많이 아작 나 있었다. 간호사와 미용사가 말은 하지 않지만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뽀개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이젠 약의 힘을 빌리는 초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때였다. 약이라 함은 신경안정제로서, 이 약의 장점은 건강에는 무해하고 가벼운 졸음을 유발해서
정신적 신체적인 긴장감을 완화시켜주는….

다시 다음 날, 애니는 드디어 의자 하나를 완전히 박살내 놓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수의사가 제 개 훈련 못 시킨다는 말도(없으면 말고). 그래서 그냥 쿠션이 없는, 물어뜯을 수 없는 나무 의자로 교체하고 그렇게 애니와 잘 살기로 했다. 혹시 나무 의자도 물어뜯으면 철제 의자로 교체하면 된다. 애니야, 오래오래 같이 살자(…).

p.s) 스님을 중이라고 표현해서 죄송합니다. 어감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생의 마음을 넓고 넓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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