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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아닌 마음으로 걷자, 바바의 첫 산…

  • 승인 2016-02-11 13: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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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만나다
눈 아닌 마음으로 걷자,
바바의 첫 산책

글·사진 박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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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결에 흘린 눈길이 바바와 닿은 사람이라면 꼭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어있다. 그렁그렁한 두 눈에 콕 박힌 흰 점 때문이다. 바바는 두 눈이 보이지 않는다. 구조 당시부터 그랬다. 눈에 상처를 입었거나 백내장이 왔는데 치료를 받지 못해서라고 한다. 바바는 개농장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지만 갈 곳을 찾지 못해 다시 사설 보호소에 맡겨졌다. 그렇게 1년. 잊힌 듯했던 바바에게도 기적처럼 임시보호의 손길이 내려왔다. 그리고 오늘은 바바가 대구로 간지 한 달째, 견생 첫 산책에 도전하는 용감한 날이다.

바바, 대구 핫 犬플레이스 수성못에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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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적인 첫 외출인데 아무데서나 할 수 있나. 대구 사는 개들이라면 누구든 와보고 싶어 한다는 핫한 수성못으로 향했다. 100년이나 된 인공호수로 산책로와 여가시설이 잘 어우러져 있어 대구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휴식처다. 잠시 봄이 온 듯 따듯한 날씨 덕분에 공원은 평소보다 더 붐볐다.


복슬복슬 엄청난 모량을 자랑하는 비숑과 푸들, 앙증맞은 말티즈와 요크셔테리어, 점프력을 자랑하는 리트리버까지, 깔롱(?!) 제대로 부리고 나온 개들로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기죽지 말자, 미모 하면 우리 바바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바바를 응원하기 위해 온 가족이 동행했다. 임시 엄마 최수인 씨, 아빠 김찬환 씨, 형아 김인찬 군, 바바와 친한 시추 향이까지. 그리고 멍석이 깔린 바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대로 얼음. 자, 이제 ‘땡‘을 쳐줄 테니 마음껏 날아보렴.

바바, 아직 모든 것이 무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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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더니 결국 주저앉고 만다. 수인 씨가 안아들자 자신의 팔과 다리를 이용해 안간힘을 다해 매달린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오는 동안도 내내 팔을 저렇게 꼭 쥐고 있었다. 눈도 보이지 않고, 성대수술로 목소리까지 잃은 바바는 이렇게밖에 자신을 표현할 수가 없다.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힘이 바짝 들어간 두 다리가 안쓰럽다.


바바의 대구 입성 첫날. 바바는 내려놓은 쿠션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먹지도 않고 배변도 참았다. 다음 날이 돼서야 코앞에 가져다 준 물과 음식에 조금씩 관심을 보였고, 패드 위에 올려주자 48시간 동안 참았던 소변을 보았다.
3일째가 되자 자신의 이름에 꼬리를 흔들더니, 2주가 지나니 애교라는 것을 부리기 시작했다.


수인 씨네는 이미 7마리의 가족이 있다. 이쯤 되면 세 식구가 사는 집에 동물들이 사는 건지, 동물들 집에 수인 씨네가 얹혀사는 건지 모를 지경. 바람 잘 날 없는 나날 속, 자신밖에 의지할 곳 없는 바바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지 못해 더욱 미안하다는 수인 씨.


“방에서 거실로 오는 1cm도 채 안 되는 문턱을 넘는 데 이틀 걸렸어요. 저에게 오고는 싶은데 발 앞에 무언가 채이니 너무나 무서운 거죠. 끙끙대는 앞발을 잡고 살짝 문턱에 올려놨어요. 그렇게 한 발씩 나오게 하고, 어쩌다 성공해도 두려움에 도루묵이 되기 일쑤였죠. 계속 칭찬해주면서 수없이 연습했어요. 다른 개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바바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주고, 사랑으로 기다려주는 진짜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바바, 한 걸음이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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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바바가 안쓰러웠던 수인 씨가 다정한 말로 바바를 달랜다. 8살 인찬이도 자기 간식까지 나눠주며 응원에 나섰다. 얼른 풀 냄새의 싱그러움을, 코끝에 스치는 바람의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바바가 더듬더듬 발을 내딛었다. 다섯 걸음 남짓이지만 가슴이 벅찼다. 바바를 껴안고 환호를 터트렸다. 아마 바바는 생애 처음 하네스라는 것을 해보고, 잔디를 밟아봤으며, 엄마와 발을 맞춰 걸어봤을 것이다. 서두를 것 없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잘했어, 바바!


산책을 나온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룸메이트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다니기 위해 미리 특훈 중이라는 3개월 된 하루는 산책과 사람들의 관심이 꽤나 익숙해보였다. 그때 갑자기 바바가 하루에게 관심을 보이더니 킁킁거렸다. 개에게 냄새를 맡는다는 행위는 굉장히 중요한 본능이고, 바바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음을 뜻했다.


신기한 투샷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바바의 눈에 대해 물었고 함께 안타까워해 주었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바바를 둘러싸고 “바바! 파이팅!”을 외치는 진기한 광경까지 펼쳐졌다. 자신을 부르는 수많은 목소리에 당황하던 바바는 어느덧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의 응원과 사랑을 바바는 느꼈을 것이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천사니까. 바바의 가슴에 따스한 봄바람이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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