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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의 집, 그리고 이야기

  • 승인 2016-02-04 11: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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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의 집,
그리고 이야기
윤정미 작가의 반려동물 사진

지유 사진 박민성 사진협조 윤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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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집 구경을 하는 건 흥미롭다. 그 사람의 취향, 스타일, 평소 생활이나 좋아하는 것들, 가장 편하고 사적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엿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로 그래서 친하지 않은 사람은 초대하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내밀한 공간, 그리고 그의 반려동물을 엿보고 있자니 사진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 같다. 귀 기울여 듣다가, 슬쩍 내 이야기를 덧붙이고도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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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 있는 얼굴을 찍다


지난 1월에 이화익 갤러리에서 윤정미 작가의 반려동물 사진전이 열렸다. 보기에도 포근한 볕이 감싸고 있는 마당에 노란 해바라기와 맞춘 듯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여자, 그리고 나란히 앉은 보스턴 테리어 강아지 두 마리가 폭 담긴 사진이 갤러리 입구에 다정하게 걸려 있었다. 윤정미 작가가 사람과 반려동물의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의 일이다. 아이들이 졸라서 키우게 된 파피용 강아지 몽이와 지내다 보니 사람과 개가 많이 닮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몽이를 키우기 시작하니 실질적인 목욕, 병원가기, 산책 같은 건 결국 엄마의 몫이 됐죠. 그러다 보니 몽이도 저를 가장 잘 따르고, 저도 개와 사람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실감하게 된 것 같아요. 개가 주는 위로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요. 무엇보다, 사람과 개가 닮아 있는 얼굴을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요.”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 집


사진 속 인물과 반려동물이 담겨 있는 배경은 대개 그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공간이다. 그들이 선택하고 개인의 취향에 맞게 꾸며둔 공간이 사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공간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제 작품의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예쁘게 찍을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그 사람의 집, 일터, 자주 가는 산책로 같은 곳이 좋았어요. 작년에 한 번 전시를 한 이후 약 100명 정도를 더 촬영했는데, 모델에 대한 특별한 기준은 없었어요. 포토제닉한 사람이든 어색한 사람이든 어떤 사진이 나올지는 찍어봐야 아는 거거든요. 어떤 분들은 집이 누추하다고 걱정하시는데 어떤 공간이든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사진이 나오는 것 같아요. 호스가 어지럽게 늘어진 마당도, 책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장도 결국 그들에게 어울리는 멋진 배경이에요.”


다양한 연령, 계층,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각각이 반려동물과 가진 스토리를 담아내는 건 즐거운 작업이었다.


사실 사적인 공간인 집을 촬영하는 것이니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하지만 길에서도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을 보면 왠지 수월하게 말을 걸어볼 수 있는 것처럼, 강아지는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쉽게 녹아들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준다. 사진 속 인물들은 내 친구거나, 이웃이거나, 산책하다 만날 법한 모르는 사람이다. 집도 가지각색, 액자도 소품도 다르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두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같은 경험을 공유했고, 이 순간 그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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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상황이 곧 사진으로


이전까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는 작업을 했지만, 반려동물을 촬영하는 것은 예측불허 상황의 연속이었다. 원래는 필름 사진을 주로 찍었지만 이번에는 수많은 셔터를 눌러야 하는 만큼 디지털 작업을 선택했다. ‘고기, 치즈’ 같은 단어로 꼬시면 친화력을 발휘해주는 아이들도 있지만, 도저히 협조를 안 해주면 생각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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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아나, 거북이, 친칠라, 기니피그 같은 반려동물을 찍기도 했어요. 파충류와도 교감이 있을까 의문스럽긴 했었죠. 그런데 이구아나랑 거북이를 같이 키우는 분의 집에 갔더니 그 두 마리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거예요. 거북이가 다가가면 이구아나가 고개를 딱 돌려버리는데, 얘들도 싫은 걸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심지어 식물도 잘해주는 걸 느낀다는데, 동물은 정말 사람 같은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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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기록하기에 제일 좋은 순간


사진 속에 동물이 없고, 동물을 찍은 지갑 속 사진만 펼쳐놓고 있는 모습도 있다. “이분은 오래 전에 개가 하늘나라를 가서 항상 지갑과 수첩에 사진을 가지고 다니신대요. 항상 기일이 되면 블로그에 추모 사진을 올리시고요. 사진 속에 동물은 없지만,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아이가 계속 있는 거죠.”


노령견이었던, 암에 걸렸던 반려견들은 사진을 찍은 이후 무지개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그래도 사진이 남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그 순간을 기록해둘 수 있었다.


“사진은 그 순간을 담아내는 거잖아요. 사실 애들은 빨리 커버리고, 어른은 계속 늙으니까, 매순간이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인 것 같아요.”


반려동물과 어떤 순간을 나누고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는지, 그건 분명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기억이다. 하지만 사진 속의 그들은 조금 덜 외로워지고,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우리에게도 바로 지금이, 마음을 나누기 가장 좋은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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