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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가장 맞닿은 초원

  • 승인 2015-12-21 1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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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4DOG?

하늘과 가장 맞닿은 초원, 상암 하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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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단을 올라온 이민영 씨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곳은 무려 285개의 계단을 자랑하는 상암 하늘공원. 공원에서 운영하는 ‘맹꽁이 전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반려견 달봉이와 함께인지라 꼼짝없이 계단행인 그녀다.

그래도 사랑하는 반려견과의 산책이기에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계단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야생화와 도심 전경을 구경하며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머리 위 넘실대는 겨울 하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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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에서 꽃피우다

상암 하늘공원은 평화의 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과 함께 서울 올림픽공원에 속해있는 자연 생태 공원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이곳이 난지도라는 이름의 쓰레기 매립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월드컵공원은 본래, 한강변에 위치한 난지도라는 섬이었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수많은 철새가 찾아오는 생태 보고였던 이곳이 서울 시민들의 쓰레기가 매립되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건 1978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파리와 먼지, 악취의 삼다도로 불리던 이곳은 1996년 안정화 사업을 통해 오늘날의 올림픽공원으로 활짝 피어났다.


이민영 씨가 달봉이와 함께 찾아온 하늘공원은 올림픽공원의 네 곳 공원 중 가장 아름다운 억새를 볼 수 있는 명소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의 입구를 지나니 곧바로 사람 키만 한 억새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 초입에 다다른 하늘공원에선 억새의 하얀 솜털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민영 씨는 목줄을 꼭 잡은 채 달봉이와 함께 조그맣게 난 오솔길로 향했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물결치는 초지의 모습이 왠지 골든 리트리버, 달봉이의 털과도 비슷한 것도 같아 슬쩍 웃음이 나는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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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축제 때 만나요

오솔길로 들어서는 순간 북적이던 소음은 잦아들고 오롯이 나와 반려견 둘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가끔 반대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이좋은 표정으로 프레임 속에 추억을 담아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햇살 같은 미소를 보여주는 순둥이 리트리버, 달봉이는 하이파이브와 ‘빵!’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은 연인과 가족,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민영 씨와 달봉이도 억새 사이에 파묻혀, 사람들에게 멋진 피사체가 되어주기도 하고 바닥에 앉아 장난을 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천천히 공원을 거닐다 동그란 접시 모양의 전망대를 발견한 민영 씨. 달봉이에게 조금 더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커다란 그릇 형태의 건축물 ‘하늘을 담는 그릇’은 이곳 하늘공원의 상징물이다. 전망대 위에 서면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억새밭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출사지로도 인기가 높다.


하늘공원 전망대에 관한 또 하나의 정보. 매년 10월 말엔 하늘공원에서 ‘억새 축제’가 펼쳐지는데,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이라 평소 야간 이용이 제한된 하늘공원이 축제 기간 때는 특별히 늦은 시간까지 개방된다고. 밤 무렵의 운치 있는 억새밭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하늘을 담는 그릇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 장식을 설치해 그 풍경이 퍽 장관이라고 하니 민영 씨와 달봉이가 놓치지 말아야 할 내년 이벤트가 하나 더 추가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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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불어오는 곳

하늘공원엔 억새 말고도 빼어난 볼거리가 또 있다. 바로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다. 하늘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공원 정상이 보여주는 탁 트인 풍경은 답답했던 도시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민영 씨와 달봉이도 나무 난간에 나란히 섰다. 북한산과 남산, 한강 등 서울의 멋진 풍경을 만끽하며 저 멀리 불어오는 바람을 가만히 느껴본다. 한강에서 풍기는 물비린내에 얼핏 쇠 냄새가 섞여있는 듯도 하다. 아마도 바람에 겨울의 내음이 스며든 것이겠지. 뒤쪽 억새밭엔 몇 무리의 참새 떼가 낮게 날갯짓하며 갈대 속으로 우수수 숨어버렸다. 곧 하늘에서 차가운 무엇인가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니 아까의 비릿함과 참새들의 부산함은 아마 겨울비가 오고 있다는 신호였나 보다.


추운 계절을 재촉하는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이윽고 초원을 세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간만의 하늘공원 산책도 여기까지인 듯싶다. 개구쟁이 달봉이는 여전히 혀를 빼물며 산책을 요구하지만, 차디찬 겨울비에 달봉이가 혹여라도 감기에 들면 안 되니까 말이다.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느끼며 하늘공원을 나서는 민영 씨와 달봉이. 그 뒷모습을 뱅글뱅글 돌아가는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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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이수빈

사진 박민성

일러스트레이션 박혜미

본 기사는 <매거진P>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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