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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과 살아가기

  • 승인 2015-12-14 10: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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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과 살아가기
몇 번이 남았는지 모를 겨울

지유 일러스트레이션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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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차가운 계절이 오고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서늘한 공기를 핑계로 사치 같은 우울감에 일단 빠져들기 시작하면 영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어쩌면 그저 다른 풍경 안에 놓이는 것이다. 찜해 놓은 여행지도 없었고, 적당한 숙소를 찾는 것도 귀찮아서 내가 가봤던 곳들 중 제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세 시간이 걸리는 강릉, 카페거리나 경포대도 좋겠지만 이번에는 쉴 수 있는 펜션 자체를 목적지로 잡고 과감하게 출발했다.

사실 이곳이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또 있었다. 펜션이 다소 높은 지대에 있어 정원이 무척 넓었는데, 그 정원에는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늘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개의 곁으로 꽃과 나무, 빨간 전화 부스, 그리고 하늘에 걸려 있는 바다까지, 늘 완벽한 배경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겨울에 태어나서, 이름은 ‘겨울이’라고 했다.


겨울이는 다리가 세 개밖에 없었다. 몇 년 전에, 다른 형제 펜션에 오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만 했다고 한다. 틀림없이 불편할 테지만, 겨울이는 세 다리로도 황금색 털을 날리며 잘 뛰어다녔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도 지금 막 도착한 손님을 귀신 같이 알아보고 로비에서 주는 웰컴 와플을 얻어먹기 위해 달려오곤 했다. 두 다리로 중심을 잡고 앉아서, 한 개뿐인 앞발 하나를 팔에 턱 걸쳐놓고 바라보면 뭐라도 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유혹해놓고는, 볼일이 끝나면 쿨하게 돌아서는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저녁 바비큐 시간을 기약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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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견은 소형견보다 수명이 짧은 편인데… 당시에도 10살이 넘어 있던 겨울이가 여전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몇 년 만에 다시 도착한 강릉 바다는 변함없이 새파랬고, 펜션의 입구에도 변함없이 그때 그 황금색 리트리버가 누워 있었다. 겨울아…! 반가운 마음에 성큼 달려가 쓰다듬으니 발라당 배를 뒤집는다. 털이 푸석푸석했다. 짤뚱한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세월만큼 배겨 있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터라 겨울이도 한창 자는 중이었나 싶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도 그 자세 그대로 엎드린 채였다. 스탭에게 물어보니, 이제 겨울이는 나이가 많아져서 거의 누워있기만 한다고 한다. 씩씩하게 견뎌내긴 했어도 짧은 다리 하나가, 나이를 먹을수록 거동에 불편함을 줬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내 개는 아니지만 내 개와 동갑인 겨울이에게 또 몇 번의 겨울이 남아 있을까? 겨울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곁에 있었다는 서글서글한 웃음의 실장님은, 마음 아파하기보다는 겨울이의 삶과 시간을 곁에서 함께하고 받아들여야 할 거라고 했다. 이 역시 세월이 덧칠하고 다독여준 마음일 것이었다.


나의 짧은 여행은 바다를 보는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훨씬 더 길었지만, 그래도 오길 잘 했다. 겨울이를 쓰다듬고 지나간 시간의 두께를 눈으로 확인하는 건 여행의 낭만과 거리가 먼 현실감이었지만, 다만 그 곁에서 한 장의 추억을 더 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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