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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반려인의 일기

  • 승인 2015-12-14 10: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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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반려인의 일기
하룻강아지 이기는 주인 없다더니

이수빈 일러스트레이션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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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처음 데려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조언을 구하는 곳이 바로 인터넷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처음 아이를 가지게 된 초보 엄마처럼, 이 갓 태어난 생명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온갖 검색어를 쳐 보고 각종 게시판 글을 정독하며 벌건 눈으로 밤을 새웠다. 하지만 새벽을 전부 검색으로 불태웠음에도 개운치 않게 잠에 든 건, 망망대해 같은 인터넷 안에 내 강아지에게 딱 맞는 명쾌한 해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막 초보 반려인이 된 사람들은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머릿속에 저마다 다른 선 하나씩을 그어놓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바로 ‘내 강아지에게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애매하고 물렁물렁한 선 말이다. 동물에게 퍽 너그러웠던 나조차도 ‘강아지의 분리불안을 예방하려면 침대에서 함께 자면 안 된다’는 생각에 꽉 붙들려 있었으니. 그래서 푹신한 담요로 거처를 마련해 줬음에도 침대를 노리며 낑낑대는 강아지가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려놓으면 다시 올라오고, 살포시 들어 집에 넣으면 다시 낑낑 침대 위로 앞발을 뻗는 강아지 때문에 첫날밤을 설렘이 아닌 초조함으로 지새웠다.


그렇게 밤을 샌 다음날. 외로운 초보 반려인을 구원해줄 바이블과도 같은 공간, ‘반려견 커뮤니티’에 들어가 낑낑대는 강아지에 대한 해법을 구했다. 어린 강아지 때 한번 침대에 올리면 끝이 없으니 단호해져야 한다며 이름 모를 네티즌이 내게 자신의 훈육방법을 전수했다. 적정량의 물과 약간의 레몬즙만으로 강아지 훈육용 스프레이가 쉽게 만들어졌다. 나는 침대 맡에 레몬물이 든 분무기를 두고선 강아지가 침대에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그 어리고 예민한 코에 뿌렸다. 물론 괴로워하는 강아지의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이게 강아지와 나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 여겼다. 나는 둘째 밤이 다 새도록 강아지와 화생방 전쟁(?)을 벌였다. 그럼에도 깜빡 잠에 든 내가 정신을 차려보면 참새가 짹짹 울고, 새어나오는 아침 햇살은 침대 위 강아지를 비추고 있었다. 이대론 안 돼. 우리 강아지가 문제견이 되고 말 거야!


셋째 날, 집 근처 천원 마트에서 그물 네트를 샀다. 침대 옆에 꽂아 강아지가 못 올라오게 담장을 칠 생각이었다. 마침 그날은 강아지 경력 5년에 빛나는 베테랑 애견인 친구가 집에 놀러온 날이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어설프게 끼워 놓은 그물 네트를 본 친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나의 기막힌 아이디어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주었고, 설명을 들은 친구의 얼굴이 기묘한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마치 웃음을 참는 것처럼.


“진짜 부질없다. 너, 결국 저거 뽑아버리고 강아지랑 같이 자게 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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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저렇게 단정 짓는 말투로 이야기 하는 걸까. 호언장담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셋째 날 밤은 그물 네트로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했다. 그러나 발전하는 내 수법만큼 강아지도 요령을 익히는 걸까. 네트의 그물망을 발받침 삼아 올라오는 강아지를 보며 공성전 방어에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백기를 든 내 머리맡에 당당하게 승리를 거머쥔 강아지가 하품을 하며 또아리를 틀었다. 에라이. 이제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매일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낑낑 소리가 사라져 내 방엔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그물망을 치워버리고 강아지를 실컷 껴안은 채 코까지 골며 잤다. 방치된 훈육용 레몬즙엔 곰팡이가 피어버렸다. 천원 마트 네트망엔 담요를 둘러 강아지를 위한 스텝을 만들었다. 강아지의 출입을 막기 위한 아이템이 도리어 침대 입성을 돕는 계단이 되다니! 그 말을 들은 친구가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역시 5년 선배의 경험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라 성견이 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걱정했던 분리불안은 전혀 오지 않았다. 매일 밤을 샌 과거가 무색해질 정도로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강아지와의 전쟁에서 내가 깨달은 건, 반려견을 위한 진짜 해답은 인터넷도 지인도 아닌 바로 내 곁에 있는 강아지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 하룻강아지 이기는 주인도 없더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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