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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반려인의 일기

  • 승인 2015-10-15 15: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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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반려인의 일기
너로 인해 달라진 것들

너는 내 인생에 갑자기, 느닷없이 왔다. 짧은 세월을 어영부영 살아온 철없는 내게, 너는 마치 자신을 책임져 달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달랑달랑 따라 붙고 있었다. 새삼 곱씹어보니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고작 나 하나 믿고 쇼핑백에 담겨 엄마 품을 떠난 핏덩이 강아지가. 그리고 무엇보다 한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유예시켜 뒀던 나이를 한꺼번에 먹어야 하는 나 자신이 아장대는 네 걸음만큼이나 위태롭게 느껴졌다. 널 보는 순간 내 인생이 여태껏 보지 못한 형태로 변하리란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명절날 조카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강아지를 데려오다니. 새끼가 새끼를 돌보다니!

이수빈 일러스트레이션 양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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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오후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강아지를 입양하러 찾아간 낯선 집. 거실 한가운데 낯선 이와 뻘쭘하게 앉아있던 시간이 어색했다. 그래서였을까, 저 멀리 아장대며 다가온 강아지 한 마리가 유독 반갑게 느껴진 건. 까매서 눈코입조차 안보이던 너는 마치 나를 선택이라도 하듯, 따끈한 몸을 내 다리에 밀착시킨 채 떡처럼 쭉 뻗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가 생각난다. 난 감동한 나머지 외쳤다. 이 아이로 할게요! 물론 그 집에 그 애 외에 다른 아이는 없었다.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이 너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 이가 겨우 난, 제법 어렸던 새끼 강아지에겐 하룻강아지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슉슉 지나가는 길거리의 건물들을 까만 바둑알 두 개가 응시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 내가 너 납치하는 거야. 이제 이 거리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야.’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룻강아지는 정신없이 바깥풍경을 구경하면서도 절대 뒤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겨드랑이에 사료와 배변판을 낀 채 힘겹게 현관문을 열었다. 나는 데리고 온 강아지를 살포시 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처음 본 낯선 공간이 흥미로웠는지 강아지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곧 퇴근한 아버지가 강아지를 발견했다. 반갑다며 아버지 다리에 낑낑 매달리는 이 하룻강아지를 어찌하면 좋을까. 도대체 언제 봤다고 이러니. 역시 하룻강아지라 범 무서운 줄 몰라 이렇게 대책 없이 앵겨드는 걸까. 내심 초조하게 지켜보는데 고된 일과에 지쳐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강아지가 안기는 순간 파하고 흩어졌다. 분명 첫눈에 반한 얼굴이었다. 좋아. 호랑이가 넘어왔으니 네 앞길은 분명 창창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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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아지와 우리 가족의 동고동락이 시작되었고, 나의 평화로운 일상은 강아지라는 생명체 하나가 끼어들면서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여느 거한 부럽지 않을 정도로 우렁차던 내 발소리가 작아졌다. 이 강아지는 자다가도 내가 움직이면 재빠르게 깨서 따라 나왔는데, 어두운 차에 하필이면 털색까지 까매서 평소처럼 퍽퍽 거닐었다간 밟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둠과 강아지를 ‘구별’하기 위해 강아지의 목에 딸기 무늬 스카프를 둘러주었다.

조용하고 밀폐된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 같던 내가 이젠 항상 방문을 열어놓는다. 나를 스토커처럼 졸졸 쫓아오는 강아지를 위해. 자유분방하게 대자로 뻗어 자던 내가 이젠 요조숙녀처럼 다소곳이 잔다. 잠결에 휘두른 팔이 혹시나 강아지를 다치게 할까봐. 방청소는 커녕 데스크탑 휴지통도 비우지 않던 내가 주말 대청소를 주도한다. 아무거나 핥아 먹어 잔병치례가 잦았던 네가 걱정되어서. 책이라곤 만화책밖에 보지 않았던 내가 온갖 반려견 서적을 수집한다. 이 모든 변화는 작은 한 마리 강아지로 인해서.

나와 함께 강아지도 변했다. 다리와 허리가 누군가 잡아 늘린 것처럼 길어지고 순진무구하던 눈동자엔 어느새 눈치라는 게 생겼다. 사람에게 냅다 앵기던 강아지가 어느 날 부턴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짖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걷던 게 이젠 산책 나가면 썰매 끌듯이 날 끌고 다닌다. 그러는 사이 나는 건강한 개똥을 보며 하루 운세를 점치는 진정한 개엄마가 되었다.

비록 퇴근 후 약속은 저 멀리 별이 되어 사라졌지만, 그래도 내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아지는 어느새 내 삶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소소한 일상 외에 바뀐 건 또 있다. 더 커진 책임감과 사랑,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게 동글동글 여유로워진 내 모습까지. 몸이 자라는 너와 마음이 자라는 나. 어느 쪽이 더 몰라보게 변한 걸까? 나는 내가 널 키운다고 착각했는데, 사실은 네가 날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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