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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의 하루

  • 승인 2015-06-02 1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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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박스버거

아가의 하루

자동차다! 주인님일 거예요. 여기 함께 왔던 것처럼, 자동차를 타고 절 데리러 오신 모양이에요. 문 닫히기 전에 빨리 올라타야지.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아, 화난 건 아니에요. 많이 기다렸지만. 그래서봄이랑 여름, 가을 겨울까지 다 지나 버렸지만요. 괜찮아요, 이렇게 오셨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글 이수빈 사진 박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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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니에요
한숨 돌리고 차 안을 둘러봤어요. 그런데 낯선 냄새네요. 앉아 있는 사람들의 황당한 표정. 아… 내려야겠다, 이번에도 아니었나 봐요.
제 이름은 아가, 시츄예요. 여기 버거집에서 살게 된 지는 1년이 넘었어요. 하루 종일 가게 앞에서 헤어진 주인님을 기다리는 게 제 일과예요. 뒤에서 맛있는 고기 냄새가 폴폴 나지만 절대 뒤돌아보지 않아요. 그 사이에 주인님이 지나가 버리실 수도 있잖아요. 그런 제가 신기했는지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들은 저를 ‘망부석’이라 불러요.
저는 눈이 안 좋아서요. 꼭 냄새를 맡아 봐야 해요.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고 킁킁, 주인님인지 확인해요. 자동차가 보이면 주인님인가 싶어 들어가 보지요. 어떤 날은 집을 찾으러 멀리까지 나가 봐요. 거대한 철문 앞에 서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제가 살던 집이랑 모습도 냄새도 닮았거든요. 정신없이 철문을 두들기다 문득, 앞집 뒷집 모두 똑같은 대문 투성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주인님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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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어디 갔었어”
앞치마를 두른 저분이요, 버거집 사장님이에요. 저를 발견해 돌봐 주셨지요. 키우던 강아지가 하늘나라로 간 게 너무 슬프셨대요. 그래서 새로 강아지를 맞이할 생각이 없으셨다는데, 지금 전 여기 있어요. 아무리 찾아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제 병도 심해지니 결심하신 거래요.
물론 저도 처음엔 마음을 열기 힘들었어요. 가게를 등지고 앉아 온종일 주인님만 기다렸어요. 제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던지 사장님은 틈날 때마다 밖으로 나오셨어요. 절 꼭 안아 주시려고. 처음엔 발버둥 쳤지요. 품이 너무 따뜻했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근데 사장님은 포기하지 않고 더 꽉 껴안아 줬어요. 한숨도 못 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 주고, 다정하게 말 걸어 주셨어요. 편하게 있어도 된다고, 여기가 새집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기다리라고….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요?
주인님과 헤어진 기억 때문일까요? 사장님이 가게를 비우면 불안해져요. 사장님 발이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뜁니다. 그럴 때마다 가지 말라고, 날 버리지 말아 달라고 엉엉 매달렸어요. 그런 저를 보며 사장님은 말씀하셨어요. 잠깐 장 보러 가는 거래요. 날 버리는 게 아니고요. 그 후부턴 싫어도 기다려요. 음… 다시 돌아오실 거란 걸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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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행복해져도 되죠?
저 말이에요, 지금은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정을 키우고 있답니다. 동생 ‘복순이’도 생겼어요. 사장님이 광주까지 내려가서 구조해 왔대요. 이젠 산책도 사람 구경도 복순이와 함께해요. 장난꾸러기 복순이가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생겨서 좋아요.
절 예뻐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생겼어요. 매일 오가며 제가 잘 지내는지 물어봐 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근처 약국과 가방가게는 마실 나갈 때마다 들리는데요, 이제는 제가 안 오면 허전하대요. 절 신경 써주시는 분이 이렇게 많다며 사장님도 고마워하세요.
모두 응원해 주니 조금 용기가 나요. 예전엔 버림받을까 봐 짖지도 못했는데, 이젠 가게에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막 짖어요. 우리 집이니까 지켜야죠.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안 만져주고 가면 서운해서 왕왕 짖어요. 전 반가운데 왜 아는 척 안 해요? 만져줘요, 하고요. 그리고요, 저 원래 기침도 심했고 털도 많이 빠졌는데 이제 괜찮아졌어요. 조금 살이 찌긴 했는데 그래도 못 먹는 것보다 낫다고 사장님이 말했어요.
음… 그런데 고백할 게 있어요. 아직 주인님을 찾는 건 그만두지 못했어요. 여전히 자동차가 오면 뛰어들고 싶어 발바닥이 근질거리고, 가게 앞에 사람이 오면 킁킁 확인해 봐요. 주인이랑 산책 가는 강아지를 보면 예전 생각이 나서 조금 쓸쓸해지기도 해요. 하지만 이제 참아야죠. 제가 그러면 사장님 얼굴이 일그러지거든요. 가슴 안쪽이 따끔따끔하고 아프신가 봐요. 사장님… 아니 주인님이 아픈 건 싫으니까 노력해볼게요.
‘짝짝!’ 시끄러운 경적 사이로 박수 소리가 들려요. 주인님이 부르시는 소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예요. 박수 소리가 나면 산책 중이어도 뛰어가야 해요. 주인님이 기다리시잖아요. “아가. 뭐 하고 놀다 왔어?” 활짝 웃는 주인님의 앞치마가 팔락거려요. 고기 냄새도 간식 냄새도 아니에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주인님의 냄새. 지금까진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했는데요, 이제 알았어요. 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에요. 저… 이제 행복해져도 되죠?

* 신촌 박스버거 사장님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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