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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 승인 2015-06-02 1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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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괜찮은 이별 얘기
박정윤 수의사

박정윤 수의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노견 뽀삐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뽀삐가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에게 들은 마지막 말은 ‘너도 좋았고, 나도 참 좋았다. 우리 참 좋았지?’였다고. 감동적이란 표현만으로는 아쉬운, 가슴 한 구석을 뜨끈하게 데우는 한 마디. 반려견이 떠나갈 때, 가지말라는 절규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까지 그들의 ‘보호자’로서, 마지막 기억마저 행복하게 지켜 주고픈 이들에게 전하는 바람.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박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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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간하신 에세이 ‘바보 똥개 뽀삐’에도 뽀삐 사연이 가장 먼저 나오더군요. 다른 노견들의 이야기도 많이 있고요.
제가 키웠던 반려견들이 열일곱 살, 열여덟 살로 장수했던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노령견들한테 애틋한 마음이 드는 듯합니다. 저희 병원에도 노견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 보는 것 같아요. 자기 주장도 강하고 꼬장꼬장한 면도 있고(웃음). 노령견들은 장기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 정이 들어요.

아무래도 진료하시기 더 어렵지 않나요?
나이가 있는 개들은 의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야 해요. 입원해야 하는 상태라도 집에 다녀오면 좋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일 입원, 당일 퇴원하는 경우도 있지요. 노견을 보살핀다는 게 힘든 일이긴 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잘 키우시는 모습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스무 살, 스물 두 살 강아지들을 만나면 우리 강아지도 저만큼 살았으면 좋겠다 싶고. 비결이 궁금하죠.

장수의 비밀이 정말 알고 싶어지는데요.
7~8살까지는 ‘무던함’이 도움되는 것 같아요. 설사 한 번 했다고 병원에 뛰어가진 않아도 되거든요. 과민한 치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나이가 들면 검진과 예방으로 건강관리를 해야 해요. 10살이 넘으면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도 떨어지니 그때는 보호자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죠. 그리고 노령견이 아프면 많이 불안해지시겠지만, 그 순간도 즐기려고 노력하셨으면 해요. 수명은 정해져 있고 극복할 수 없는 질병도 많잖아요. 살 수 있는 날이 일 년이라고 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슬퍼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더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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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해야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진료하던 개들이 떠나면 저도 많이 흔들려요. 병원 개원한 지 십년이 되다 보니, 어릴 때 봤던 강아지들이 지금은 노령견이 됐거든요. 이미 떠난 개들도 있고. 의연해지려고 노력하는데 맨날 울죠. 애들 보낼 때마다 항상 미안해요. 뭐가 부족했던 건가 싶고.

마음이 무거우실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언젠가부터 ‘내가 강아지들을 예뻐하는 만큼,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부터 조금 즐거워졌어요. 가족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계속 기억하고, 다음에 비슷한 환자를 보면 더 열심히 진료하려고 노력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개들이 떠나면 ‘하늘나라에서 우리 잘 지켜줘’라고 인사합니다. 유치하지만 그러고 나면 왠지 든든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노견들 보면 마음이 따듯해지나 봐요.

선생님이 키우시는 개들도 나이가 있는 편인가요?
한 녀석 빼곤 전부 노령견이에요. 다들 몸도 안 좋고요. 시츄 투투는 올해 열 다섯 살 정도인데 많이 아파요. 매년 동물자유연대가 주최하는 입양 동물의 날 운동회에 강아지들을 데리고 가는데, 투투는 아무래도 올해 운동회가 마지막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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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는 모습 보면 마음이 많이 쓰이시겠어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어요. 고마운 건 아이들이 시간을 주고 있다는 거예요. 작년에 무지개다리 건넌 나나같은 경우는 예상치 못하게 떠나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약해지는 걸 알았다면 남들 다 가는 애견 펜션도 가고 바닷가도 갔을텐데…. 못해 준 게 많다고 생각하니까 놓아 줄 수가 없더라고요. 모든 게 다 한스러웠어요. 그래서 보호자분들께 노령견 시기에 접어들면 그동안 안 해 본 일들 다 적어서 꼭 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갑작스럽게 떠나면 정말 당황스러울 것 같아요.
열두 살까지 건강했는데 갑자기 아프다며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열 살 정도 되면 건강 검진을 해서 현재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 보는 게 좋습니다. 눈에 띄는 증상이 없어도 나이 들어가는 건 검사를 통해 알 수 있거든요. 충격이 조금씩 쌓여야 하는데 갑자기 한꺼번에 오고, 그러다 며칠 후에 반려견이 떠나버리면 온 집안이 패닉상태에 빠지기도 해요.

보호자분들이 힘들어하는 걸 많이 보시겠어요

가족 중 누군가가 원망의 대상이 되더군요. 엄마일 수도 있고, 남편이나 딸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랬지’라는 말로 상처를 준답니다. 그럴 때 꼭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떠난 반려견이 원하는 게 무엇일지. 분명 가족들이 자기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고, ‘참 예쁜 애였어’라고 말해 주길 바랄 거예요.

그럴 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해 주는 게 좋을까요?

이별은 슬픈 일이고 힘들 수밖에 없어요. 저도 삼년 전에 떠난 ‘야토’ 생각이 나서 갑자기 울기도 하거든요. 슬퍼하지 말라는 말보단 추억을 되살려 주는 이야기가 진정한 위로인 것 같아요. ‘야토는 뚱뚱했지만 정말 웃기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그만하라’는 말은 절대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점점 외로워지거든요.

이별의 슬픔만큼이나 치료비도 참 고민스러워요. 비용 때문에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하면 정말 괴로울 것 같거든요

사람도 암이라고 전부 다 치료하진 않잖아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개들은 정말 고마워해요. 다만 나이가 많으니까 원래 아픈거고, 무조건 못고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증상을 개선하는 치료까지는 꼭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장 기침 때문에 잠을 못자는 상황이라면, 사는 동안 기침 약은 안끊기게 먹여 주는 게 반려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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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이야기지만, 너무 아프면 안락사를 고민하는 시점도 오지요.

안 하면 제일 좋겠지만, 남은 게 발작이나 쇼크뿐이라면 놓아 주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누군가의 심장을 인위적으로 멎게 하는 건 평생 트라우마로 남거든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됩니다.

이른 시점에 안락사 해달라는 경우가 많은가 봐요.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요?

우선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이 의식이 회복될 수 있는지 여부예요. 만약 병원에서 단 1퍼센트라도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기다리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어쨌든 안락사 결정은 가족이 하는 거고, 그 중에서도 누구 한 사람이 하는 거예요. 안락사를 선택하셨다가 몇 개월 지나서 전화하시는 보호자분들도 계세요. 그때 안 보냈더라면 혹시라도 조금 더 같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시면서요.

만약 정말 보내줘야 하는 시점에도 망설이게 되면 어쩌죠?
그게 제일 힘든 부분이에요. 아파서 물도 못삼키고 있는데 붙잡고 있는 건 욕심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는 또 이기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땐 나 자신을 생각해야 해요. 내가 이 아이를 보내고 살 수 있는지요.

혹시 선생님도 안락사로 반려견을 보내신 적이 있나요?
나나는 그랬어요. 종양이 폐까지 전이돼서 숨도 제대로 못쉬었는데…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 본 것 같아요. 오늘은 다르겠지, 내일은 좀 다르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점점 나빠지기만 했죠. 조금씩 먹던 물마저 어느 순간엔 아예 못삼키게 되고, 결국 의식이 몽롱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차마 안락사를 못하겠더라고요. 오늘 보내기로 하고 못하고, 내일 보내기로 하고 못하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악화되는 게 보였어요. 그렇게 되니 작별인사를 하고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나를 아시는 분들께 전부 연락했습니다. 병원 식구들부터 손님들까지 모두 모였죠. 그분들 있는 데서라면 그나마 덜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나나도 그때 우리를 알아보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더 끌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에 보내줬습니다.

이별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죠. 우리 야토가 열여덟 살에 갔는데요, 열 살 때부터 ‘언젠가 떠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순간엔 저도 병원에 막 전화해서 당장 수술 잡으라고 했어요. 하지만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라는 걸 끝까지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개들은 죽음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지만, 남은 가족들 걱정에 그들 역시 이별을 힘들어할 거예요. 그럴 때 떼쓰듯이 안된다고, 가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헤어진다고 생각하기보다, 언젠가 내 옆에서 떠난다는 걸 인지하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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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이 어렸을 때 미리 준비할 만한 일이 있을까요?
원 없이 놀아 주세요. 어릴 땐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크게 아플 일이 없거든요. 노령견이 됐을 때를 대비해 적금 드시면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사진을 많이 찍어 주세요. 추억이 남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게 보이거든요. 내 눈에는 항상 일곱 살이지만 일 년 단위로 찍은 사진 보면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래도 요즘 반려견들 수명이 많이 길어졌지요?
사람처럼 평균 수명이 늘었어요. 강아지 열 살이 지금 사람들의 60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시기에 반려견이 아프면 겁내는 보호자분들이 많은데요, 치명적인 질병이 있으면 이해하지만 ‘노령견이니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반대예요. 마취 부담 때문에 스케일링을 망설이시는 경우가 있어요. 앞으로 3~4년을 더 살 수 있는데, 치료해서 많이 놀아 주고 뽀뽀도 더 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노령견을 돌보시는 보호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나이 든 강아지들은 배려심이 많다고 생각해요. 가족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서 기다려 주거든요.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지낸다면 그래도 좀 괜찮은 이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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