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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에서 일상으로

  • 승인 2015-04-03 09: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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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에서 일상으로
실험 비글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봄을 느껴 보지 못한 개들이 있다. 관심과 사랑 대신 실험과 관찰을 받아야 했고, 보드라운 흙 대신 차가운 쇠창살을 밟아야 했다. 네모난 케이지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실험 비글 열 마리.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실험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cafe.daum.net/happyanimalcompa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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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바람, 비… 봄이 뭔가요?

비영리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이하 동행)’의 대표이사이자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외부 위원인 이정현 씨가 실험 비글 열 마리에 대해 알게 된 건 작년 11월이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동물 실험을 하는 기관에서 적당한 개체 수를 꼭 필요한 데만 사용하는지 평가하는 곳인데, 작년 겨울을 끝으로 정현 씨가 활동하던 실험실 비글들의 안락사 일정이 잡힌 것이다. 실험이 종료되면 실험 비글들의 삶도 종료되는 게 현실. 안락사 대신 입양을 추진할 수 있도록 실험실에 요청했고 허가가 났다.

하지만 고민은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10kg이 넘는 덩치 큰 개들이 열 마리나 되다 보니 임시보호를 해 줄 봉사자나 입양처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고민과 궁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그때, ‘나비야-이리온 희망이 프로젝트’가 손을 내밀었다. 희망이 프로젝트란 사단법인 나비야 사랑해(이하 나비야)와 이리온 동물의료원(이하 이리온)의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로, 희망이로 선정된 동물을 위해 나비야가 후원금을 모으고 이와 동일한 금액을 이리온이 더해 치료비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실험 비글들이 이 프로젝트의 열일곱째 희망이로 선정된 것이다. 2015년 2월 2일, 실험 비글 열 마리는 마침내 실험실을 벗어날 수 있었고 현재 이리온 청담점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희망이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면 당장 임시보호나 입양이 가능한 몇 마리만 구조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다행이었어요. 원래는 사설 보호소에 위탁을 맡길 생각이었지만 1월에 실외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계속 케이지 안에서만 있던 애들이라 날씨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비 내리는 것도 한번 본 적이 없으니까요. 나비야, 이리온과 협력하면서 편히 지낼 곳도 생기고 심히 염려했던 건강 부분까지 해결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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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낯선, 네 발로 걷기
실험 비글들은 다들 빈혈이 있고 말라 있긴 했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건강 상태가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소화제나 피로 회복제 등이 몸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실험했었기에, 약물의 독성보다는 5년 동안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생활한 부작용이 더 컸다. 실험을 위해 케이지 밖으로 나올 때도 늘 품에 안겨 이동했으니 제대로 걸을 기회조차 없었다. 휘청휘청 어색하고 힘없는 걸음걸이. 비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비글이 실험동물로 쓰이는 이유는 일단 인내심이 많아서예요. 기다림이나 갇혀 있는 스트레스를 더 잘 견디는 것 같습니다. 예민한 견종은 그렇게 작은 곳에서 몇 년씩이나 지낼 수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견종마다 실험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 비글이 공식적인 실험견으로 정해져 있고요.”

중국 실험견 농장에서 생후 6개월에 팔려 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실험실에서 지낸 비글들. 여태까지 있는 기억이라곤 약을 먹고 피를 뽑은 게 전부이다. 사람을 싫어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공격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케이지 근처에 사람이 오면 꼬리를 흔들고 좋아하기까지. 비록 문이 열리면 얼음이 되고 벌벌 떨며 안겨 나오지만 말이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고 그 안이 익숙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입원장 문을 열어 놓으면 높이가 15cm밖에 안되는데 아무도 혼자 못 나오거든요. 그래 본 적도, 그렇게 둔 적도 없으니까요.”

비글들은 지금도 밖에 나오면 겁을 내며 숨을 곳을 찾는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진다는데, 아마도 자신들의 삶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비글들은 요즘 입양 신청자와 직접 만나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열 마리 비글 중 현재까지 세 마리가 입양을 갔다. 예상보다 적응이 빨라 배변훈련도 어느 정도 됐고 차를 타고 놀러 다니며 잘 지내고 있다고. 비글답게 말썽도 조금 부렸다는데, 세상 어떤 개가 인형처럼 앉아만 있겠는가. 비글 특유의 해맑음을 되찾고 있다는 신호이니 가족들은 오히려 기뻐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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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비글들을 위해
현재 병원에서 머물고 있는 비글은 일곱 마리. 이번 달부터는 날씨가 따듯해지니 개들이 바깥에서 뛰어놀며 외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임시 보호처를 마련할 계획이다. 물론 하루빨리 입양을 보내면 좋겠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여태 스무 명이 넘게 입양 신청을 했지만 입양이 성사된 건 그중 세 건뿐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보고 감정적으로 입양 신청을 했다가, 덩치 큰 비글이라는 점에 현실감을 느끼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동정은 잠깐이지만 책임은 평생이기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입양 상담할 때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말씀드려요. 사람이랑 교감해 본 적도 없고 훈련 같은 것도 안 해 봤으니 처음부터 시작하셔야 한다고요. 교육 지식도 있어야 하고 그런 걸 가르칠 시간적 여유도 있어야 하죠. 그동안 억눌린 환경에서 살았으니 어떤 성격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인내심과 이해심이 필요한 일이라 마음가짐이 어떤지 특히 신경 쓰게 돼요.”

정현 씨는 비글 열 마리를 입양 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을 1년으로 잡았다. 미국의 실험 비글 입양 전문단체 ‘비글 프리덤 프로젝트’와도 연결을 추진 중이다. 가능한 한 국내 입양을 진행하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국제 입양도 시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 시작하면서 심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게 ‘입양처가 얼마나 있을까?’였어요. 구조는 정말 쉬워요. 돈은 빚을 내서라도 만들 수 있고요. 가장 어려운 건 입양이거든요. 특히 우리나라는 비글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잘못돼 있잖아요. 비글처럼 활동적인 견종도 충분히 운동시켜 주면 실내에서는 쉬는 시간이 더 많아요. 다들 바쁘다고 못 놀아 주니 그런 건데 조금만 말썽 부리면 모든 죄를 개한테 묻고…… 가장 많이 배워야 하는 시기에 망가뜨려 놓고 버리죠.”

2013년 한 해 동안 안락사된 실험동물은 팔천 마리 이상. 동물 실험을 향한 비난 을 의식해 실험 기관들은 입양처럼 좋은 일에도 노출을 꺼린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실험이 끝난 비글이 있어도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사람을 위해 긴 시간을 희생한 동물들에게 그동안의 삶을 보상할 길이 있다면 방법을 찾아 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비글들에게 이제는 ‘악마견’이란 꼬리표를 떼어 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 더 많은 비글들이 임상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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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비글들의 가족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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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 비글 / 중성화 수컷 / 6살 / 13kg
살짝 소심한 성격입니다. 처음 보는 모든 것들이 낯설어서 겁이 나는 듯합니다. 아직은 꼬리를 내리고 살살 흔드는 정도이지만 머지않아 힘차게 꼬리 흔드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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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 비글 / 수컷 / 6살 / 11.5kg
비글들 중 가장 마른 상태입니다. 위염과 십이지장염이 있어서 약물치료 중입니다. 혈압도 살짝 높아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고 호기심도 많습니다. 안정된 곳에서 점잖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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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 비글 / 수컷 / 6살 / 15.9kg
설악이는 사람을 잘 따르고 참을성이 많습니다. 아래로 늘어뜨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수줍음을 타지만, 사람 손길을 조용히 받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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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 / 비글 / 수컷 / 6살 / 12.3kg
굉장히 활달합니다. 밖으로 나오면 주변을 냄새 맡고 바삐 다닙니다. 오른쪽 뺨에는 털 빠진 굳은살이 있습니다. 실험실 케이지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물리적인 자극이 생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등에는 아기 주먹 정도 크기로 곱슬 털이 자란 곳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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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 / 비글 / 수컷 / 6살 / 13.2kg
케이지 안에서는 봐달라고 부르는데 막상 문을 열면 벽 뒤로 몸을 살짝 숨깁니다. 그렇지만 사람에 관심이 많습니다. 늘 꼬리를 흔들거리며 반겨 줍니다. 빈혈이 조금 있지만 곧 좋아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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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 / 비글 / 수컷 / 6살 / 12.9kg
커다란 눈이 매력적입니다. 아직은 수줍음을 타지만 사람과 바깥세상에 관심이 많아서 목을 쭉 뻗어 내다봅니다. 손바닥 냄새를 맡으면서 호기심을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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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 / 비글 / 수컷 / 6살 / 13.6kg
여자아이처럼 예쁜 얼굴입니다.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 하고 호기심도 많습니다. 활발한 편이고 깔끔해서인지 입원장 밖으로 오줌을 누기도 합니다.

한순간의 호기심과 동정으로 입양하지는 말아 주세요. 소중한 생명이 또 다시 아픔을 겪지 않도록 신중한 결정 부탁드립니다.
입양문의: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 <cafe.daum.net/happyanimalcompa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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