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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B형에 사자자리니까

  • 승인 2015-04-03 09: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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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B형에 사자자리니까
코카 스파니엘 지오와의 행복한 동거

난생처음 키운 개가 하필이면 코카 스파니엘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 그중에서도 유난히 활발했다. 덕분에 매일 사건·사고의 연속이었지만 ‘역시 악마견’이라며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람 중에서도 활발하고 다혈질인 이가 있듯이 개 중에도 유난히 밝은 아이가 있고 그게 바로 코카 스파니엘, 지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오와 8년째 함께하고 있는 고영리 작가는 자신의 벗 지오를 이렇게 묘사했다. ‘넌, B형에 사자자리야!’

이수빈 사진 박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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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니까 봐준다
코카 스파니엘 지오와의 반려생활을 다룬 <지오, 어쩌면 내게 거는 주문일 거야>의 저자 고영리 작가. 그녀의 직업은 스토리 프로듀서다. 조금 생소한데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고영리 작가는 기획과 실행을 총괄해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를 만드는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즐거운 ‘무엇’을 기획하고 고민하며 그것을 글로, 때로는 다른 것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지오, 어쩌면 내게 거는 주문일 거야>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고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나간 에세이다.

“지오를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책을 내겠다고 결심했어요. 제목도 그때 지어놓은 거예요. 좌우명이자 제가 호처럼 붙이는 ‘지오’를 이름으로 지어 주고 매일 사진을 찍어 준비했죠.”

알 지(知) 깨달을 오(悟). 알고 깨달으라는 뜻의 근사한 이름을 가진 개, 지오. 고영리 작가는 책 속 지오의 사진을 보여 주며 어린 지오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스티로폼 상자를 여는 순간 금빛 강아지 얼굴이 튀어나오는데…… 첫눈에 반했죠. 지나치게 예쁜 나머지 아, 얘 때문에 많은 재산을 잃겠구나 싶었는데 진짜 많은 재산을 잃게 됐어요(웃음). 얘가 친 사고요? 정말 종일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많아요.”

이후 고영리 작가의 입에선 지오가 벌인 ‘사고 퍼레이드’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책에서 다 소개하기엔 지면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느껴질 정도로 종류도 규모도 다양했다. 하지만 고 작가의 인내심을 시험했던 사고는 따로 있었다.

“어느 날 외출하고 문을 열어 보니 온 집안에 휴지며 오리털이 눈처럼 휘날리고 있는 거예요. 욕조 물은 콸콸 틀어진 채로 문턱을 넘기 일보 직전이지, 벽지는 찢겨서 꼭 공사한 지 3일째인 집처럼……. 그달에 수도세만 한 40만 원 나온 것 같아요.”
지오가 물건을 물어뜯어도 그게 그 물건의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고영리 작가. 그날 있었던 일은 그런 고 작가조차 이성을 잃을 뻔했던 대형 사고였다. 하지만 당시 고영리 작가가 택한 방법은 ‘꾸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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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개’로 보지 않는 것
“혼내지 않았어요. 얘도 사고 친 걸 알고 마음속으로 볶이고 있거든요. 그 대신 굉장히 슬픈 얼굴로 ‘왜 그랬어!’만 반복하면서 묵묵히 청소했죠. 그 날 이후로 신기하게도 벽지, 옷 그리고 휴지는 절대 안 건드리더라고요. 때리거나 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건 사고치는 개를 강한 훈육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통념에 일침을 놓는 시각이었다.

“사람들은 ‘개’의 한계를 정해놓고 거기서 벗어나면 악마견이라는 단어를 붙여요. 주인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배변판에 배변 잘해야 하고, 오면 반겨 줘야 하고……. 하지만 그런 게 전부 가능한 상대는 아마 기계뿐일 거예요. 얘도 화가 나는 날이 있고, 그래서 누가 오든 말든 신경을 끌 때도, 쿠션에 화풀이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잖아요. 내가 개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마음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하물며 사람도 부모님께 완벽히 통제받으며 살진 않으니까요.”

‘주인’이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고 작가는 본인과 지오와의 관계를 서로에게 필요한 벗이라고 정의했다. “지오는 사람으로 치면 B형에 사자자리인 것 같아요.” 관찰력이 뛰어난 고 작가의 절묘한 비유. 하지만 이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지나치게 활발한 지오의 행동을 ‘문제점’이 아닌 ‘성격의 차이’로 판단한 점이 그렇다. 그를 바꾸려고 애쓰는 것보다 왜 그와 사랑에 빠졌는지 떠올려보는 것이 연애의 온도를 올려 주는 지름길. 반려견의 성격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들은 적어도 권태기 따위 없는, 변함없는 벗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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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반려생활을 위해
세간에선 나쁜 점이 두드러져 있지만, 사실은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코카기에 가능한 장점들이 훨씬 많다. 고영리 작가는 근심 걱정 없이 지내는 지오의 모습에 배우는 것이 많다고 했다.

“얘는 늘 평온하거든요. 전 되게 예민한데, 밤샘 작업 때 지오가 옆에 앉아 있어 주면 그 자체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책임감도 느끼게 하고…….”

인터뷰 중에도 지오를 향해 눈 맞추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 주던 고영리 작가. 그건 단순한 혼잣말이 아닌 교감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었다. 어느덧 노령기에 접어든 지오에게 그녀가 이르지만 매일 밤 건네는 것은 바로 작별인사다.

“지오는 제 인생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생명 중 하나예요. 그만큼 이 아이가 없는 생활이 무서운 거죠.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연습하고 있어요. 지오가 원하면 오늘 저녁에 조용히 가도 돼. 대신 평화로운 모습으로 엄마가 너무 슬프지만 않게 해 줬으면 좋겠어……. 지오가 선택할 수 있게끔요.”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진지하게 경청할 수 있었던 코카 스파니엘 지오 이야기. 고영리 작가에게 지오(知悟)와의 삶은 그 이름처럼 하루하루 부족한 자신에 대한 앎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고 작가는 마지막으로 예비 반려인들에게 행복한 동거를 위한 조언을 전하며 더 많은 이들이 반려견과 동반자처럼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을 얻길 바랐다.

“입양은 어떻게 보면 결혼과도 비슷하죠. 삶이 좀 안정됐고 적어도 20년간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강아지를 맞이할 적기 아닌가 싶어요. 외로움을 덜기 위해 데려오는 것이 아닌, 나를 필요로 하는 생명에게 내 생활의 일부를 내준다는 생각으로 함께한다면 분명 당신과 강아지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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