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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 싫어진 당신에게

  • 승인 2015-04-03 09: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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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 싫어진 당신에게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저자 최혁준

동물원. 어린 시절 참 좋아했던 곳.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안 가게 된 곳. 동물과 함께 살면서부터 동물원 동물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안 가고 안 보는 것뿐……. 그런데 과연 외면만이 정답일까? 또 다른 선택지를 갖고 싶다면, 조금 더 행동하고 싶다면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의 저자 최혁준 군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스스로를 진짜 전문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동물에 대한 그의 생각과 애정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이지희 자료협조 최혁준(blog.naver.com/96spore), 책공장더불어(blog.naver.com/animal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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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평가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원에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네덜란드의 한 동물원에 가게 됐는데, 국내 동물원과 사뭇 달랐어요. 동물들을 배려하고 각각 특성에 맞게 환경을 꾸며 준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동물원에 잘 안 가다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몇 년 만에 가보니 뭔가 달라졌더라고요. 동물에 초점을 맞춘 변화들이 보였습니다. 동물원과 동물원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커졌고요. 이런 시기에 국내 주요 동물원을 평가한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실행으로 옮긴 거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책을 낼 계획이었나요?
원래는 블로그에서 자료를 공개하려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했거든요. 2012년에 시작한 프로젝트였는데 출판 제안을 받은 건 2014년이었어요. 2년이 흘러 평가 결과가 나올 때쯤이었죠.

블로그엔 못 올려서 아쉽지만 책으로 나온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동물원 관람객 중 가장 많이 배웠으면 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이랑 학부모들인데 둘 다 블로그보다는 책을 쉽게 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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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책 제목에 ‘고등학생의’라는 말이 쓰여 있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더라고요.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동물은 제 탄생과 함께 시작된 관심사였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기본 소양은 돼 있었나 봅니다(웃음). 원래도 야생동물을 좋아했고 집에서 키우는 동물도 야생동물에 가깝고요. 물론 책 쓰면서 공부를 더 많이 했죠. 특히 동물행동학이요. 행동을 보면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요.

동물원에는 얼마나 자주 갔나요?
평가 기간에는 엄청 많이 다녔고요. 그전엔 일 년에 네다섯 번 정도였어요. 고등학교 진학한 후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기분 전환하러 갔습니다. 꼭 프로젝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냥 가서 보면 재밌는 것도 배울 것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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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혁준 군처럼 동물에 대해 많이 알면 심적으로 힘들지 않나요? 뭐가 부족하고 불편한지 알잖아요
책 내고 나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도 의문이 들었어요. ‘난 어떻게 가는 거지?’ 싶었죠. 일단은 너무 심한 게 아니면 불쌍하긴 하지만 아예 못 보겠진 않더라고요. 저는 여러 가지 시선으로 동물을 관찰하거든요.

외형 자체가 흥미로울 때도 있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때까지 기다려서 포착하는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참 의미 없이 관람한 것 같아요. ‘와~ 호랑이다’ 이런 식으로만 보고 지나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동물원이 오락과 휴식을 목적으로 지어졌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봐요. 현대 동물원의 기능은 위락뿐만 아니라 기르는 동물의 야생개체군 존속에 이바지하는 '보전', 동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연구', 관람객에게 생태지식과 생명존중 정신을 가르치는 '교육'의 역할까지 하고 있거든요.

동물원의 역할이 바뀌었으면 관람객도 그런 걸 보려고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국내 동물원들이 변화를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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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동물을 좋아하는 분들은 동물원에 안 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면서 악순환이 되고 있어요. 사람들이 외면하면 동물원은 피드백이 없으니까 나아지지 않거든요. 수익성도 떨어지면서 가난해지고, 그럼 지자체에서는 예산을 깎고. 결국 동물들은 점점 나쁜 삶을 살게 됩니다.

막연히 불쌍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는 거군요
동물원 동물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데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관람객이에요. 제가 책을 관람객 대상으로 쓴 것도 그래서입니다. 동물들이 불쌍하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면 변화로 이어지기 어려우니까요.

혁준 군은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네. 동물원 역사를 공부해 봤는데 동물원 같은 형태의 시설이 나타난 건 인류 고대 문명 때예요. 야생동물을 가두고 구경하는 행위가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돼 왔던 거죠. 인류의 필연적인 욕망 같기 때문에 당장 없앤다고 해도 분명 비슷한 종류의 시설이 곧 생길 겁니다.

없애는 게 의미가 없겠네요
거기에 더해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어요. 동물원 관계자들이 ‘동물원 동물들은 야생동물의 외교 사절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항상 말하는데요. 저는 그런 역할이 아주 미약할지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알면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그 반대로도 되는 것 같아요. 모르면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동물 만나기가 정말 쉽습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물을 접하고 부정적으로 소개받지 않는데도 동물 문제가 생기죠. 특히나 야생동물은 곁에 있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생명이고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주변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동물 서식지를 보전한다고 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게 아닌 데도요. 야생동물이 어떤 동물이고 어떻게 사는지 안다면 무조건 무시하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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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 존재하되 동물 복지를 지켰으면 하는 거군요
그리고 외교 사절 같은 역할과 함께 앞서 말한 보전, 교육, 연구의 기능을 제대로 한다면 동물원이 꼭 사회악적인 시설이 아닐 수도 있죠. 느리지만 계속 발전도 하고 있고요.

동물원뿐만 아니라 관람 예절에도 아쉬움을 느낀다고 들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갑질이라고 해야 하나요. 우리가 동물들의 집에 방문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돈 내고 놀러온 유원지지만 동물들은 거기서 평생 동안 살잖아요. 남의 집에 가면서 그렇게 무례할 수 있나 싶어요. 반응을 보려고 유리를 두드린다거나 소리를 지르고, 어떤 분들은 욕을 하기도 해요. 동물이 알아듣지는 못한다 해도 동물원이 동물을 조롱하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 집에 갔다고 생각하고 관람 예절을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혁준 군도 반려동물이 있다고 했죠? 책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요
왕관앵무 ‘띵똥’, 아프리카민며느리발톱거북 ‘사하라’, 녹색이구아나 ‘정치’를 키우고 있는데요. 야생동물에 가까운 동물이다 보니 야생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잖아요. 결국 동물원 환경을 평가한다는 건 동물에게 환경이 적절한가를 보는 거니까 야생에서의 모습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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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요즘 희귀한 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사실 야생동물을 집에서 기른다는 건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에요. 이구아나도 대중성에 비해 굉장히 키우기 힘든 동물이거든요. 초식 파충류는 먹이를 계산해서 먹여야 하는데, 어떤 동물의 신진대사까지 조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기를 거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람이야 좀 안 좋은 경험하고 돈이 날아가는 정도겠지만 동물들은 생명을 잃게 되니까요. 개처럼 생각해서 잘 놀아 주면 문제없을 거라 여기는 경우도 많은데 그건 개라는 특이한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거예요.

개는 어떤 면에서 특이한가요?
야생동물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할 걸 개는 당연히 저렇게 해요. 그리고 야생동물은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사람이나 그렇죠. 인간도 아닌 것이 동물도 아닌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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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도 키워본 적이 있나요?
집에서는 없고 친구 강아지로 간접 경험을 했어요. 라온이라는 말라뮤트였는데 친구가 키웠지만 제가 개에 대해 배워서 참견도 하고 도와주기도 했죠. 개를 겪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많은 걸 느꼈어요. 매번 만날 때마다 신기했고 개에 대한 생각이 삼천 번은 바뀐 것 같아요. 라온이는 정말 선생님이었어요.

라온이가 혁준 군에게 준 영향이 상당한 것 같아요
사육은 공부와 연구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미건조한 동물을 기르면서도 매번 새로움을 느끼는데 하물며 개는 어떻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 기회를 버리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 더 잘해주게 되잖아요. 굉장히 사람 같은 동물이지만 사람과 전혀 다른 동물이니까 오해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 하죠.

지금도 라온이에게 배우고 있나요?
안타깝게도 라온이는 다른 집으로 보내졌어요. 수능 끝나면 제일 먼저 라온이와 산책하려 했는데……. 다행히 제 친구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났지만 그래도 씁쓸해요. 개한테는 환경보단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라온이가 좁은 집에서 산책도 자주 못하는데 밝은 성격을 유지한 것도 그래서겠죠. 늑대라면 그렇지 못했을 거예요.

그동안은 개에 대해 혼자 생각하면서 공부했는데 올해 특수동물학과로 진학하게 되어서 이제는 대학교에서 배울 예정이에요. 그간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차기작을 낼 계획도 있는지요?
아마도 동물원에 관한 그림책이 될 듯해요. 동물원에 많이 다니다 보니 애착이 생긴 동물들이 있는데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그런 사연들을 그림으로 그려 볼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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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 출간하면서 독자와 동물원 걷기 행사를 했는데 또 예정되어 있나요?
5월 이후로 소식을 많이 들려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책 덕분에 동물원 쪽에서 연락이 와서 만나기도 하고 프로젝트 논의도 하고 있거든요. 행사도 있고 강연도 있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워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동물과 사람의 매개자가 되는 거예요. 서로에게 서로를 소개해 주는 거죠. 외교관도 될 수 있고 분쟁해결사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동물의 편에 조금 더 가깝게 서 있겠죠? 동물은 말도 못하고 사람과 생각이나 행동이 달라서 오해와 불이익을 받기도 쉬우니까요. 사람과 동물이 모두 잘 살 수 있도록 원만하게 풀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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