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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상적인 마지막

  • 승인 2015-04-03 09: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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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 LOSS

가장 이상적인 마지막
만성신부전으로 떠난 미미

말티즈 미미는 전 주인에게 받은 학대 탓에 나이에 비해 체구가 훨씬 왜소했다. 다행히 지금의 주인을 만났고 진료를 위해 몇 마디 나누는 동안에도 미미와 보호자 간의 유대감이 매우 두터운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미미는 일곱 살이었지만 불행히도 만성신부전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4단계 상태였다. 지속적으로 관리해도 6개월을 채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미미의 보호자는 많이 슬퍼했지만 남은 기간 동안 미미가 힘들어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치료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치료 과정 동안 보호자는 미미 입장에서 주치의인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전 호에 언급했던 삶의 질 척도 항목과 미미의 상태 변화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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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완화 치료


맨 처음 미미는 신장수치가 너무 높고 물이나 밥을 스스로 먹지 않는 상태였다. 만성신부전 관리에 있어 식이와 음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우선 비강에서 위로 이어지는 튜브를 장착해 보호자가 액상사료와 물을 주사기로 직접 넣어 주었다. 여러 신장 보조제와 조제약도 일부 튜브로 먹여서 약을 거부하는 미미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미는 1~2주 간격으로 내원해 기본검사를 받았는데, 다른 만성신부전 4단계 환자에 비해 신장수치가 많이 감소해 좋은 컨디션이 유지되기 시작했다. 기력이 생기자 미미는 비강튜브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튜브를 제거하고 보호자가 직접 식사량 및 음수량을 유지하며 하루에 한 번 피하로 수액을 투여했다. 또한 만성신부전에 필요한 치료제는 시간 간격을 두고 먹여야 하는데, 가능한 투약 횟수를 줄여 미미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했다.

만성신부전은 현대 수의학으론 근본적인 해결이 아직 어렵다. 때문에 완화 치료를 통해 증상 악화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치료 목표이다. 미미 역시 가능한 통원 치료로 상태가 잘 유지될 수 있게 세심히 관리했다.

남은 시간은 모두 지나가고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치료를 시작할 때 선고 받았던 기간이 지나자 미미의 신장수치는 마지막을 향해 높아져 갔다. 다른 신부전 환자와 같은 구토·설사 등의 위장 증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미미는 식욕과 기력이 점차 없어져 갔다. 그동안 치료에 최선을 다했던 보호자도 이제 미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했다.

상담을 통해 나는 미미가 고통 없이 보호자 품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혹여 발작이나 호흡곤란 등 너무 괴로운증상을 보인다면 안락사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다시금 말씀드렸다. 더 이상은 여러 보조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미미가 힘들 수 있는 보조제 치료는 중단하고 피하수액 등 일부 처치만 실시하기로 했다.

며칠 뒤 피하수액을 해도 소변 양이 많지 않아 몸이 붓는 듯하고 호흡이 힘들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신장기능이 다해 소변을 잘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피하수액도 거의 중단해야 했다. 미미는 그동안 받았던 치료를 모두 줄이고 보호자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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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미


그러고 며칠 뒤 미미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호자는 전화로 미미의 마지막을 말해 주었다. 미미는 죽기 전 2~3일 동안은 산책을 나가도 될 만큼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고 한다. 보호자는 미미와의 마지막을 꼭 함께하고자 외출도 피하고 지냈는데, 그날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 잠시만 다녀오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비틀거리며 잘 걷지도 못했던 미미가 갑자기 보호자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자리를 잡고 눕더란다. 보호자는 “미미야, 엄마는 미미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사랑해”라고 미미의 귀에 속삭여 주었는데, 이후 갑자기 미미가 거친 숨을 한번 몰아쉬었고, 그대로 심박과 호흡이 멎었다고…….

준비는 했지만 황망했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하며 보호자와 나는 함께 울었다. 그러나 미미가 참 배려심이 깊은 강아지고, 가장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했다는 점에 안도했다. 보호자가 외출한 사이 혼자 떠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겨 큰 고통 없이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니 말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웃으며 추억할 수 있도록


?한 달 뒤 보호자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병원에 왔다. 미미가 치료받으러 다녔던 병원에 올 수 있을 만큼 보호자는 펫로스를 극복한 상태였다. 미미가 얼마나 예쁘고 특별한 아이였는지 같이 회상하며, 구토나 발작 등 힘든 증상 없이 떠났다는 점에 함께 감사했다. 의학적으로는 몇 가지 사망 이유를 들 수도 있겠지만, 여러 경우의 수 중에서 미미와 보호자는 가장 이상적인 마지막 몇 개월을 보냈고 주치의로서 이를 도왔다는 것이 보람됐다. 보호자는 내 손을 꼭 붙잡고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갔다.

노령 반려동물을 치료하다 보면 환자, 보호자, 수의사 모두 힘든 상황을 겪게 된다. 그러나 미미의 경우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길을 찾고 환자와의 마지막 기억을 좋게 마무리 짓는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와 사별하더라도 보호자가 덜 힘들어할 수 있고, 나중에는 웃으며 옛일을 추억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겪으며 한 단계 성숙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할 용기도 얻게 된다.

CREDIT
해마루 동물병원 김진경 수의사

그림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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