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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강아지에게 배운 위대한 사랑

  • 승인 2015-02-02 17: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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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강아지에게 배운 위대한 사랑
김병종 화백

우리는 왜 반려견을 좋아할까? 만약 우리의 삶이 성공과 명예로 가득하다면 강아지 한 마리가 주는 기쁨이 그렇게 클까? 단란한 가정을 일구고 훌륭한 제자들을 키운다면 강아지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연작 <바보예수>, <생명의 노래>로 유명한 화가이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인 김병종 화백. 그는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에세이 <자스민, 어디로 가니?>를 통해 그리고 써냈다.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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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화첩기행>처럼 그림에 관련된 책을 주로 내셨는데요, <자스민, 어디로 가니?>를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스민은 우리 가족과 16년 동안 함께하다 떠난 강아지입니다. 긴 세월을 같이 지내다 보니 정말 한식구처럼 됐고, 그렇게 살다 간 생명체에 대한 애도의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스민의 삶을 되짚으면서 우리 가족사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집필을 살짝 망설이셨다고 들었어요
2년 정도의 전시 일정이 먼저 잡혀있다 보니 이런 글을 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반려견에 대해 약간의 편견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도 했어요. 지나치게 강아지를 감싸고 ‘우리 아기’라고 하는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지요.

이해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역시 체험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평할 수 없구나 싶었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과, 이렇게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반려견과 함께 애환을 나눈 경험이 너무나도 달랐어요. 자스민을 키우면서, 직접 겪지 않은 어떤 종류의 삶에 대해서 함부로 논할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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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책이 나올 수 있었으니 다행이네요. 글을 쓰시며 긴 시간을 돌아보셨을 텐데 기분이 어떠셨는지요
연세 든 분들이 흔히 하는 얘기인데 십년이라는 세월이 굉장히 장고한 것 같지만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이더군요. 이 길지 않은 삶에서 무엇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그림이나 책을 작업하실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요
강아지에 관한 글을 쓸 때는 정말 진솔해진 것 같아요. 자스민 이야기를 쓰면서 제 유년 시절과 현재의 삶을 돌아봤고 나아가서 ‘우리는 자꾸 강아지에 대해서 말하는데 강아지는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뒤집어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자스민의 시선에서 사람들을 바라본 ‘자스민 일기’라는 꼭지를 쓰게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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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선생님 흉을 보는 내용이 많던데요(웃음)
자스민 눈에 비춰진 우리의 삶을 생각하니 가장 먼저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말과 행실이 일치되지 않는 모습,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강아지가 보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주변 사람들도 자스민 일기가 재미있었다고 조금 더 있으면 좋았겠다고 하더군요.

자스민 일기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이별의 슬픔보다는 좋았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은 게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게 더 기억에 남으셨나요?
제가 책에 시 하나를 인용했지요.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이십 대에는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는 등의 내용인데요. 강아지를 떠나보내면서 회상해 보니 교수 아파트에 살면서 그 너른 학교 초원에 먹을거리를 싸가지고 가서 놀던 시절이 그렇게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떠오르는 거예요. 근데 그때는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도 그게 기쁨인 줄도 몰랐지요.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면서도 내일에 관해서만 생각했지 오늘 이 순간의 행복에 관해서는 자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강아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할 때, 강아지가 건강하게 뛰어놀던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한 건데 왜 우리는 뭔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며 그때의 그 순수한 행복과 아름다움에 대해 간과해 버리는 걸까. 이렇게 생명은 유한하고 얘는 이렇게 내 곁을 떠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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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이 죽고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 뭐 강아지 한 마리 간 것 가지고 그래’ 이렇게 약간 가식적인 제스처를 취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큰 공백을 느꼈지요. 제가 밤늦게 들어올 때 자스민이 항상 발치에 감기면서 걸음을 못 걸을 만큼 핥고 앙앙댔는데…… 막 짖으면서 달려와야 할 녀석이 없을 때 특히 그랬습니다. 서재에서 음악을 들을 때나 와인을 마실 때도 항상 제 발 밑에 있는 자스민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런 시간이 사라져 버려서 생명의 부재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오래 갔어요.

자스민이 떠나기 전에도 어머님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의 죽음을 경험하셨을 텐데, 자스민의 죽음도 슬프게 느껴지셨는지요
물론 상실의 크기는 친족이 돌아간 것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슬펐습니다. 처음엔 강아지 한 마리 죽는다고 뭐, 다음 날이면 잊히겠지 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어요. 자스민과 이별한 아픔이 상당히 길게 간 게 무척 뜻밖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16년 동안 정을 나눈 세월의 무게이겠지요.

자스민이 당시 군대에 있었던 둘째 아드님의 방을 쳐다보면서 떠났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게 저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는 걸 자스민을 보면서 알았고 깜짝 놀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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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이 있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가족 간의 연결고리가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스민을 주제로 대화가 풀리고 계속 웃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소중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선생님처럼 여러 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분께 강아지를 신경 쓸 여유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사랑의 대상 하나가 새로 생겨나는 것이에요. 30년 동안 제자를 숱하게 길러냈지만 그 친구들을 향한 사랑이 있는 거고 강아지에게 가는 사랑은 또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주변에 가족이나 친구가 많아도 강아지를 위한 사랑의 양은 또 따로 있는 걸 보니 사랑은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것 같아요. 마치 샘물처럼.

그렇다면 자스민에게 받으신 사랑은 어땠나요?
자스민을 보면서 사랑은 반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새벽에 일어나서 걸어 나오면 자스민이 곯아떨어져 있다가도 얼른 조용히 와서 제 손가락을 핥아요. 불이 꺼진 깜깜한 밤에도 마찬가지였고요. 사람들은 피곤하고 힘들 때는 상대방에게 반응을 하지 않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내기 일쑤지요. 그런데 강아지는 자기의 상태와 관계없이, 몸이 힘들 때도 끙 하고 일어나서는 반기고 핥고 합니다. 이건 굉장히 큰 사랑을 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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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과 사랑 이야기는 뗄레야 뗄 수가 없네요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사랑이라는 걸 자스민을 통해 깨달았어요. 서로 생명을 확인하면서 주고받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간과되고 축소되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생명 없는 기계들과 관계를 맺지요.

따듯한 생명체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데 강아지와 함께하면서 그런 훈훈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게 참 소중합니다. 무엇보다 저를 무지무지 좋아하고 한결 같이 반기는 거예요. 아주 감동적인 거죠. 사람이 어떤 생명체에게 이런 환대를 받으면서 집에 들어간다, 이게 참 기분 좋은 일이거든요.

사람과 나누는 우정이나 사랑과는 또 다른 걸까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실망이 계속되면 결국 믿음을 잃고 마음에서 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근데 강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제가 막 야단을 치고 화를 내고 이러면 얘도 토라져서 자기 집으로 가는데, 그랬다가도 제가 커피 한 잔 하고 다시 거실로 나오면 얼른 와서 저한테 안기는 거예요. 제가 가진 편협한 사랑보다 훨씬 더 넓은 마음을 강아지가 가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굉장히 위하고 좋아했던 사람도 자꾸 실수를 거듭하면 짜증이 나고 섭섭해져서 앙금이 오래 남는데요, 자스민은 10분을 못 갔습니다. 마치 사랑을 주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처럼 얼른 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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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강아지들에게 받는 사랑이 참 소중한 것 같네요
사람은 항상 주고받는 게 자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도 그 친구는 지금 힘든 시간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같이 공감하거나 동조해 주기가 참 어려워요. 몇 계단 내려와서 감정을 맞춰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이 강아지는 상황에 관계없이 사랑에 변함이 없어요. 이건 사람이 참 본받아야 할 점이지요.

자스민에게 가장 많이 배운 건 무엇인가요?
사랑. 기다림. 인내. 사람은 기다리지를 못해서, 조바심 때문에 대인관계에서도 그렇고 부모 자식 간에도 상처를 주고받는 건데요. 강아지는 저렇게 항상 기다린다는 걸, 사랑은 기다림이고 함께 있는 거라는 사실을 자스민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스민을 귀찮아하거나 미워하기도 하고 혼도 많이 냈는데,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와는 언젠가 헤어지게 되는 것이더군요. 우리는 가족구성원을 비롯해 뭐든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요. 살아있는 동안 서로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평범한 진리를 자스민과 이별하며 깨우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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