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절망 속에서 놓지 않는 희망

  • 승인 2015-02-02 17:26:22
  •  
  • 댓글 0

절망 속에서 놓지 않는 희망
파주 삼송보호소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따스한 햇살은 아침을 빛낸다. ‘반려견과 산책하기 좋은 날’이라 생각되는 훈훈한 겨울……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살을 에는 혹독한 날씨다. 새벽의 추위를 증명이나 하듯 그릇 모양대로 꽝꽝 얼어버린 물들이 보호소 한편에 수북이 쌓여있다. 아직도 겨울이다. 여전히 춥고 힘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기견들은 울타리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지희 사진 박민성

6fe4b6672f59dd45e0ada0538e5fb4b0_1422865

6fe4b6672f59dd45e0ada0538e5fb4b0_1422865

한 마리로 시작한 일이
삼송보호소가 파주에 자리잡게 된 건 오년 전쯤이지만 김미순 소장이 유기견들을 보살피게 된 건 그보다 훨씬 전인 2000년도께다. 지금이야 290여 마리 강아지들을 책임지고 있지만 처음에는 불쌍한 강아지 한 마리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유기견 하나 둘 돌보다가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어느 사설 보호소든 다 그럴 겁니다. 가정집에서 조금 데리고 있다가 이래저래 숫자가 늘어나면 단독주택으로 이사가고, 거기서 또 늘어나면 땅 빌려서 이런 곳으로 오고. 나이 드신 보호소 소장님이 다치시거나 돌아가시면 다른 보호소에서 아이들을 맡게 돼 숫자가 늘어나는 경우도 많고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호소에서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 성치 않다. 일 년 365일 연중무휴인 건 물론이고 봉사자가 없는 날엔 혼자서 300마리 가까운 개들이 지내는 자리를 청소하고, 밥을 주고, 또 다음 날이면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사료라도 떨어져 가면 불안해지고 병원비가 없어 아픈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해야 할 때면 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다.

“어느 누가 하루 종일 개들 밥 주고 청소하며 살고 싶겠어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책임감 때문에 하는 일이지요. 살아있는 동물이니까. 버리고 떠날 수는 없잖아요. 저 대신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끝까지 제가 지켜야죠.”

6fe4b6672f59dd45e0ada0538e5fb4b0_1422865

6fe4b6672f59dd45e0ada0538e5fb4b0_1422865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절망감
고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야 이제 익숙해졌지만 김 소장이 가장 힘든 건 유기동물의 현실이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보호법이 개정되어서 버려지는 동물이 줄어들면 기운이라도 나겠는데 계속 답보 상태예요. 동물법이 통과됐다 해도 제대로 시행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유기동물 문제의 가장 큰 발단은 애견 번식장인데요, 처음부터 법으로 규제했더라면 싼값에 사고 팔리고 결국 버려지는 강아지들이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상황이 나빠지고 나서야 제재하려고 하니 반발이 일어나고 법이 있어도 제대로 적용이 안 되는 거죠.”

키우던 강아지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보호소로 개를 받아 달라는 전화도 변함없이 걸려온다.
“과연 본인이 강아지를 ‘반려견’으로서 끝까지 키울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입양해야 하는데 그냥 예뻐서 기르니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좋아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좋아하지만 평생을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그 섣부른 결정의 결과물들이 삼송보호소 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고 전국의 사설보호소에 퍼져 있다. 버리는 사람 따로, 보호하는 사람 따로. 이런 현실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걸까.

6fe4b6672f59dd45e0ada0538e5fb4b0_1422865

6fe4b6672f59dd45e0ada0538e5fb4b0_1422865

젊은 세대에 거는 희망
보호소의 기쁨은 개들이 입양을 가는 것이지만 삼송보호소 개들은 대부분 열 살 가까이 됐고 90퍼센트가 믹스견이라 가족을 만날 가능성은 더욱 낮다. 그저 지금 있는 숫자에서 더 이상 늘리지 않고 개들이 명을 다할 때까지 보살피는 게 김미순 소장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유기견들이 불쌍해서 받아 주고는 싶지만 자리도 없고, 제 건강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있는 아이들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데리고 있는 게 최선 같아요. 앞으로 오년에서 길게는 십년 정도 흐르면 다들 제 곁을 떠났을 테니 그때는 저도 이곳을 떠날 수 있겠지요…….”

처음 보호소를 시작했을 때에 비해 유기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많아졌지만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현실적인 운영은 차이가 있다는 김 소장. 그렇지만 김미순 소장의 유일한 희망 역시 유기견에 대한 인식 변화다.

“사람들이 강아지를 사지 않고 입양한다면 번식장이 줄어들고 유기견도 자연스럽게 감소할 겁니다. 요즘 매스컴을 통해 유기동물 문제가 자주 거론되기는 하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잠깐 반짝하지 않고 지속적인 캠페인이 실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일매일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요? 그렇겠지요?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가져 봅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