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살 나이 드는 보호소의 개들
400마리 강아지들의 행복한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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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유기견은 아니었다. 한때는 이들도 작고 귀여웠던 강아지였다. 탄생을 축복받은 새 생명이었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반려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부드러웠던 털을 거칠어졌고 반짝거리던 눈망울은 탁해졌다. 그래서였을까. 하루아침에 버림받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는 가족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나이가 많은 개들에게도 기회를
경기도 안성에 있는 400마리 강아지들의 행복한 보금자리(이하 보금자리)에 머무는 유기견들은 거의 다 노견이다. 일곱 살 이상이 많고 어려야 다섯 살. 세 네 살 먹은 강아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령견 중에서도 아프고 약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보금자리의 김계영 소장은 나이 많은 개들이 입양되는 일은 말 그대로 하늘에 별 따기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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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에서 유기견 입양하시려는 분들은 대개 어린 강아지들을 찾으세요. 새끼 때부터 키워야 훈련도 시키고 정도 든다고요. 네 살만 돼도 나이가 많다고 놀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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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그렇다보니 보금자리에서 입양 가는 개들은 3개월에 서너 마리 정도, 한 달에 한 마리 꼴이다. 물론 시 위탁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한 나이 어린 유기견들을 구조해 오면 더 많은 개들을 입양 보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 소장은 그런 강아지들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입양해가니 대여섯살된 개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내년이 되면 또 한 살 먹는 보금자리 아이들. 김계영 소장은 앞으로는 개들 나이를 만으로 따져야겠다며 웃다가도 떠나보내는 노령견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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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죽는 것에 대해서는 담담해요. 그런데 이별에 익숙해져도 눈물은 마르지가 않더라고요. 특히 오랜 세월 함께하며 힘들게 키운 아이들이 떠나면 더 많이 가슴 아픕니다. 밤에 자려고 누워선 무지개다리 건넌 강아지들의 옛날 사진 보면서 혼자 많이 울어요.”
버릴 거면 차라리
이곳의 수백 마리 개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누군가와 몇 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을 텐데 어째서 거리를 떠돌게 된 걸까. 잃어버린 후 찾지 못한 거라 믿고 싶지만 그런 개들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아프니 병원비가 많이 들어 버려지는 거라고. 보금자리에도 키우던 노견을 받아달라는 전화가 끊임없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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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맡아 달라’고 표현하지만 결국은 여기에 버리겠다는 거지요. 어떻게든 키우라고 설득하는데 도저히 안 된다고 하면…… 차라리 안락사하라고 얘기합니다. 편히 보내주고 좋은데서 화장하라고요. 집 밖으로 내보내면 누군가 데려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도 십년동안 예뻐하다가 버리는 개를 누가 키우겠어요. 시보호소로 들어가 안락사 되거나 길거리에서 학대받다가 고통 속에 죽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강아지를 키우다 포기할거면 아예 시작하질 말아야 한다. 사실 다들 처음에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살다보면 정말 개를 기를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지 않는가. 그렇지만 나이든 반려견들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달라고 김 소장은 간곡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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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돈이 없으면 병을 못 고쳐 죽잖아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픈 강아지를 치료해주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병원에는 못 데려가더라도 강아지가 힘들어할 때 한번 안아주고, 고통스러워할 때 옆에 있어주세요.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개는 행복해하니까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
김계영 소장 역시 보호소에 있는 노령견들을 돌보기가 녹록치 않다. 강아지들 밥은 굶기지 않지만 노환에 들어가는 치료비까지 대기는 어려운 게 현실. 먹일 약이 있다 해도 하루에 몇 번씩 수많은 개들의 약을 챙기는 일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김 소장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 많은 아이들 치료하고 싶다고 하면 유기견에겐 사치 아니냐고 합니다. 고치는데 큰 돈 들이느니 밥만 먹이고 명대로 살다 죽게 하자고요. 그렇지만 약이라도 먹서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러다 잠결에 편히 가주면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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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모두가 보호소에서 눈을 감는 건 아니다. 보금자리를 찾는 봉사자들이 나이 많은 개들을 안타까워해 입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그저 하루만이라도 편안한 집에서 쉬다 떠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김 소장이 일찌감치 보호소 청소를 마쳐놓고 봉사자들에게는 산책 같은 아이들과의 교감을 부탁하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한 마리라도 더 입양갈 수 있기를, 입양은 못 되더라도 한번이라도 더 따듯한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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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노령견을 입양하는 일이 곧 이별을 준비하는 일만은 아니다. 관리만 잘해준다면 몇 년은 더 행복하게 함께하는 게 가능하다고. 지금 여덟 살 아홉 살 먹은 보호소 강아지들, 나이가 많다고 느껴지는 아이들도 그동안 살아온 만큼 앞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옆에서 보살펴 주고 사랑해 줄 가족이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