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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마주하다

  • 승인 2014-11-25 15: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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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마주하다
안성 평강공주 보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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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에 굴곡이 있는 것처럼 개들의 삶에도 희망과 절망이 존재한다. 하지만 절망을 극복하는 유일한 힘이 희망이듯이 시련의 뒤편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은 유기견이지만 내일은 반려견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기적이 찾아오기도 하니까.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평강공주 보호소

평. 강. 공. 주.
평강공주 보호소가 경기도 안성에 터를 잡은 지도 9년째다. 몇 해 전 가수 이효리가 순심이를 입양하면서 세간에 알려졌지만 개소한 건 그보다 훨씬 오래된 2006년. ‘평’화로운 ‘강’아지 고양이들의 ‘공’동 ‘주’거 공간을 의미하는 이곳에는 개 320여 마리와 고양이 90여 마리, 총 420마리 정도의 동물들이 보호되고 있다. 작고 어린 강아지들은 비교적 입양이 잘 되는 편이라 다 큰 믹스견들이 많이 남아 있고, 3분의 2 이상은 여덟아홉 살을 넘긴 노령견이다. 김자영 소장은 개소 때부터 지금까지 평강공주 보호소를 지켜 왔다.


“원래는 용인에 있던 ‘생명의 집’이라는 보호소로 봉사를 다니며 아픈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그런데 그곳 소장님께서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150마리가 넘는 개들이 남겨졌어요. 그 당시 봉사자들끼리 이 아이들까지는 책임지자는 마음으로 힘을 모았고 안성에서 보호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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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개들이 모여 있는 만큼 이곳으로 오게 된 사정도 가지가지다. 반려인 남자친구의 폭력으로 인해 보호소에 맡겨진 모카부터 다리가 부러져 동물병원에 왔지만 치료비 때문에 주인이 포기해 버린 키키까지, 아이들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있다. 보호소 입구 근처의 견사에 있는 피레니즈들처럼, 한 가족이 한꺼번에 이곳으로 오게 된 경우도 있다. 피레니즈 수컷 북극이와 암컷 여우는 원래 한집에 살고 있었는데, 새끼 세 마리를 낳은 지 며칠 안됐을 때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새끼까지 다섯 마리가 모두 보호소로 오게 됐고 그중 두 마리는 입양되어 현재는 북극이, 여우 그리고 새끼 뽀또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사람들이 키우던 동물을 포기하는 수만 가지 이유들이 보호소 구석구석을 채워놓은 듯한 모습이다.

마지막 소풍
천신만고 끝에 평강공주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개들에게 시련은 또 닥쳤다. 임대 중이던 보호소 부지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미 두 번의 이전을 겪었고 그때마다 400여 마리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마어마한 이전 비용도 문제였다. 농성이나 다른 보호소로의 분산부터 최악의 경우 일부 개들을 안락사하는 방안까지……. 여러 대책을 모색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던 와중에 김 소장은 ‘소풍’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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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보호소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강아지 운동장에 가서 뛰놀게 해주는 ‘소풍’을 진행했습니다. 올해도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생겨서 못했지요. 그런데 어차피 불안하게 지내도 해결되는 건 없고 작은 곳으로 이사를 가게 돼도 소풍은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고민 끝에 단 하루만이라도 걱정을 잊고 아이들을 신나게 뛰어놀게 해 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소풍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끝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전해진 걸까. 소소하게 시작한 마지막 소풍 이야기는 SNS를 타고 퍼져나갔고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됐다. 지난 6월 22일에 진행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소풍’에는 18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해 150마리가 보호소 밖으로 소풍을 떠날 수 있었다. 후원도 이어져 현재 보호소 자리를 사들이는 데 필요한 계약금까지 마련됐다. 작은 힘들이 모여 이뤄낸 커다란 기적이었다. 아직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남아 있지만 다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 김 소장은 그저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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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시작으로
고맙다는 말 대신 정말 좋은 보호소를 만들어 행동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는 김 소장. 얼마 전에는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마쳤으며 앞으로 치료실을 넓히고 기력이 떨어지는 노견들이 따로 모여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보호소 환경 개선에 힘쓰려 한다. 이곳에서 평생을 보낼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쾌적한 공간을 만드는 동시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기동물 보호소 견학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동물보호를 위해선 어린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힘들고 지쳐도 미래를 꿈꾸며 웃는 그녀의 긍정적인 성격 덕분인지 평강공주 보호소에는 희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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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쯤엔 노령견을 위한 작은 소풍을 추진해 볼까 합니다. 나이가 많아 체력이 떨어지니 품에 안고 한 시간 정도 바람 쐬게 해 주고 그늘에서 낮잠도 재우는 형식으로요. 노견을 어떻게 보살피고 떠날 때 무엇을 해 줘야 하는지 알린다면 노령견 입양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계획은 많습니다. 이곳을 알지도 못하고 아이들 얼굴도 못 봤는데 기꺼이 도움 주신 분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평강공주를 꾸려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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