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 이 이 야 기
황홀한 눈빛의 봄과 동생들 그리고 집사
황홀한 첫 만남
아이들이 한바탕 우다다를 끝내고 꿈나라로 여행 떠난 시간, 이 시간이 집사에게 하루에 주어지는 유일한 자유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조금씩 봄 햇살이 유리창 넘어 베란다로 스며들고 따스한 재스민 향의 차 한잔을 마시며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들을 기억해본다. 러시안 블루 첫째 봄이는 3개월 때 어미젖을 떼고 나에게로 왔다. 모자에 쌓인 한 주먹도 안되는 크기의 조그만
생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나 사람에게 놀라움을 주는 생명체가 있었나! 집사는 그때 암 환자였다. 1년 남짓, 수술·항암 방사선치료를 하고 암 환자의 전형적인 부작용인 우울증이 슬금거리며 어깨너머 올라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떤 동물도 키워본 적 없었던 집사는 어린 아깽이를 어찌 키울까 하는 걱정도 잠시 어린아이를 대하듯 아깽이를 키우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계절의 기록
동생 집사와 함께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서 냥이 밴드도 가입했다. 동물권 단체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봄이에 이어 길냥이인 둘째 여름이는 2년 후에 오게 됐는데 어미 길고양이에게 버려진 코숏이라고 했다. 여름이가 오고 1년 뒤 집사가 가입한 밴드에는 페르시안 고양이의 안락사 공고가 붙었는데 그 페르시안 고양이가 바로 셋째 가을이다. 나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가을이를
입양했다. 좁은 집은 생각지도 않고, 어떻게든 잘 돌보리라 자신감에 차서는 말이다. 그해 10월 겨울이도 어미 길고양이에게 버려져 내게로 왔다. 지난 추운 겨울 아파트에서 엄마 고양이에게 버림 받고 간신히 숨을 쉬는 아깽이 두 마리를 동네 할머니가 발견했고 나에게 연락이 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분홍
정말 이제 어떡해야 하나 우리 집은 사계절이 완성되었는데 안 그래도 좁은 집에 고양이를 또 들인다는 게 집 아이들에게도 미안해서 그냥 눈 감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눈으로 봐버린 이상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동생과 상의 후 일단 구조를 했는데 아깽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결국 그 날 새벽 고양이별로 떠났고 남은 한 마리 고양이가 바로 막내 분홍이다. 묘연이란 누가 하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막는다고 막아지지도 않는다. 나의 우울증은 다섯 아이들을 만남으로써 말끔히 사라졌다. 몸이 하루 빨리 좋아져서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 하나 더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달콤한 고기 간식과 함께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깃털 날개를 부지런히 흔들 것이며 집사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맞출 것이다. 차가운 거리와 낯선 구조 통에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집사는 기꺼이 피리를 불어주는 연주자가 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분홍아! 내 눈 감는 날까지 집사로서의 따스함을 잊지 않을게. 사랑한다.
CREDIT
글·사진 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