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들 자 매 와 숙 녀 네 집
해들이의 첫 발정
‘어라? 이 녀석, 이제 노래 부르네?’
하고 해들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녀석이 발라당 드러누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해들이에게 발정이 왔을 거라곤 의심하지 않았다. 보통 암컷 고양이의 발정은 생후 6개월, 늦으면 8개월에 찾아오기 때문에 몇 달 후에야 중성화 수술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들이가 밤낮없이 울기 시작한 지 3일째가 되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해들이의 첫 번째 수다
강아지 숙녀 그리고 고양이 자매 해들이와 산들이가 가족이 된지도 어느덧 3개월 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산들이는 내게 다가와 슬그머니 안기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해들이는 툭하면 말대꾸하는 수다쟁이 고양이었다. 딱 그뿐이었으면 좋았으련만, 해들이의 수다는 점점 심해지더니 벽을 향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라? 이 녀석, 이제 노래 부르네?’ 하고 해들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녀석이 발라당 드러누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해들이에게 발정이 왔을 거라곤 의심하지 않았다. 보통 암컷 고양이의 발정은 생후 6개월, 늦으면 8개월에 찾아오기 때문에 몇 달 후에야 중성화 수술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들이가 밤낮없이 울기 시작한 지 3일째가 되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암컷의 중성화 수술은 배를 열어야 해서 혹시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생후 4개월밖에 안된 아기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한참 동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마취와 수술을 이겨내려면 고양이의 몸무게가 최소 2kg은 넘어야 하지만, 더욱 안전을 기하기 위해 대개 2.5kg일 때 수술을 받는단다. 생후 4개월의 해들이의 무게는 2kg을 가까스로 넘기고 있었다. 과연 지금의 해들이가 무사히 견뎌낼 수 있을까?
해들이를 걱정하며 검색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발정 중엔 중성화 수술을 하면 안 된다’는 글을 발견했다. 그래. 지금은 발정 난 상태니까 이번만 참고 넘어가 보자. 녀석이 밤새 울어서 내가 잠이 들지 못하더라도 이번만 참아 보자. 그 다음에 생각해보자. 곧 내 마음 한켠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해들이의 두 번째 수다
드디어 해들이의 첫 발정이 끝났다. 해들이의 첫 발정이 끝나면 다음 발정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아직 목 요일인데 해들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2주째 잠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 이 턱밑까지 내려온 나는 초조해졌다.
결국, 난 과거 천호동에 살 적에 자주 방문했던 동물병원의 주치의 선생님께 전화해 사정을 설명드렸다. 선생님은 발정 중이어도 괜찮으니 해들이를 얼른 데리고 오라고 하셨고, 토요일 오전으로 예약을 잡았다. 수 원으로 이사 온 나는 해들이를 데리고 예전에 살던 천호동까지 다시 찾아갔다. 선생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바로 검진에 들어갔다. 선생님 은 해들이의 외관을 천천히 관찰한 후 몸무게와 혈액 검사를 진행하고는 초조해 하는 내게 한 시간도 안 걸릴 테니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덜컥 겁부터 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들이 보호자님. 지금 교통사고를 당한 고양이가 급하게 입원해서요. 해들이 중성화 수술을 오후로 미뤄도 될까요?” 나는 순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아, 네. 일단 급한 생명부터 살려야죠. 천천히 기다릴 테니 해들이 수술만 잘 부 탁합니다.”
큰 산을 넘다
사실, 병원에는 해들이와 함께 산들이도 데려갔었다. 산들이는 발정 징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들이를 데려온 김에 같이 검진을 받은 것인데, 산들이도 발정 직전이었다고 한다. 오후에 시작된 해들이와 산들이의 수술은 20분이 채 안 걸렸으며 수술 절개 부위의 크기는 고작 0.5cm로, 수술 자리가 아니라 배꼽으로 착각했을 정도로 작았다. 곧 마취에서 깨어난 산들이와 해들이는 가냘픈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해들이와 산들이의 씩씩한 울음소리를 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 두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마취 기운에 몸을 비틀거리긴 했지만, 물그릇 앞으로 똑바로 걸어가서 촵촵 물도 잘 먹고 쉬야도 시원하게 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더니 뛰어다니며 장난치기 시작했다. 아이구 애들아 니들 안 아프니? 몇 시간 전 중성화 수술을 한 아이들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지경이다. 어쨌든 이렇게 큰 산을 넘었다. “해들아, 산들아. 조금 늦었지만 어른 된거 축하해. 앞으로 20년 넘게 즐겁게 아빠랑 같이 사는 거다.”
중성화 수술,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
수술 전에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꼭 중성화를 시켜야 할까?’ ‘내가 이 아이들을 집에서 키운다고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산들이와 해들이는 길에서 태어나 어미를 잃은 아기 길고양이였다. 얼마 전에 읽은 책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의 제목처럼 해들이와 산들이가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녀석들과의 특별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중성화 수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녀석들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가족과 같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길고양이의 발정으로 인한 울음 소리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가진 경우가 많다. 내가 겪어보니 해들이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나도 녀석의 울음소리를 한평생 견디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충분히 안다.
그래서 인간과 길고양이의 공존에 대한 한 방법으로 지자체에서 제시한 것이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이다. 이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다. 집 주변의 고양이 울음소리로 힘들다면, 거주 지역의 시청이나 구청에 전화해 고양이 TNR 담당자에게 문의하면 된다. 고양이 중성화 수술은 우리와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글·사진 보들이아빠 에디터 이제원
글쓴이·보들이아빠 (instagram / @yebodle)
유튜브 ‘댕냥티비’ 채널에 생을 함께하는 강아지 숙녀와 고양이 보들, 산들, 해들 자매의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