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고양이는 봄이고, 봄은 고양이이니
?
기다리는 일이란 지루하고 힘든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의연하게 기다리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밥 달라고 한 번 운 적도 없다. 그저 고요히 나를 응시할 뿐. 밖에서 돌아올 땐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왔어’ 라고 할 뿐이다.
봄까지만 같이 있자
이 말은 삼색 고양이 왈츠의 입양이 불발되자 내가 녀석에게 한 말이다. 3년 전, 겨울이 오려 할 때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구조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다 만지고 있었고 창고에 아기를 낳은 어미는 며칠째 안 보인다고 했다. 난 그 자리에서 2시간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만져보기만 하면서 상자 줍는 아저씨에게 ‘햄주면 안 돼요!’ ‘우유 주지 마세요!’라며 핀잔만 했다. 왜인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4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전부 데려왔다. 어디까지나 데려온 새끼 고양이 4마리 모두 입양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마리는 입양 가고 두 마리는 남았다. 원래 키우던 고양이 라라 까지. 현재 3마리 고양이들의 집사가 되어있다. 덕분에 허덕이면서도 이 아이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는 중이다.
데려온 아이들을 모두 입양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에 나는 녀석들과 정들까 걱정하여 예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명랑하게 장난쳤다. 으깬 사료를 먹고 앙앙대면서 눈물을 흘렸고 가까이 있는 모래에 알아서 용변을 가렸다. 내가 엄마라고 생각했는지 화장실까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난 사생활을 잃었다. 그중 노랑 고양이 한 마리는 나를 더욱 애틋하게 쫓았다. 내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가슴, 어깨 위 로 올라왔다. 그 녀석은 내 어깨에서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애교에 살살 녹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생각했다. 추운 겨울이 코앞에 와 있었다. 은근히 그 노랑 고양이는 아무도 택하지 않길 바랐다.
한 마리를 입양 보내고, 뒤이어 다른 한 마리도 입양을 보냈다. 두 마리를 입양 보내던 그 날, 입양자를 기다리면서 내 후드 티 안에서 잠든 500g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느껴지는 그 빈자리가 컸다. 집에 오자 나머지 두 아기 고양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껴안고 새근새근 잠을 잤다. 저 둘에겐 서로의 체온을 느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시렸다.
이틀 후, 두 번째로 입양 간 아기 고양이가 하루아침에 차갑게 식어버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입양자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곧 그 원망은 나 자신에게도 번져왔다. 왜 예방주사를 2차까지 맞히지 않았을까. 나는 왜 범백검사라는 것을 몰랐으며, 왜 그 중요한 검사를 못 했을까. 하루종일 자책했다. 자책과 슬픔이 가시기 전에 삼색냥이 왈츠의 입양자가 결정되었다. ‘한진한’ 이라는 이름의 입양자였다. 그 사람은 거리가 너무 멀고 시간이 맞지 않는다며 만남을 주말로 미뤘다. 그러나 주말이 되어도 연락이 없없다. 한 편으로 연락이 오지 않길 바랐다. 잠시후, 페이스북을 통해 입양자를 알아보던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한진한이라는 그 입양자는 ‘악용사례’가 있는 사용자였다. 삼색이 왈츠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내 손을 떠나 그 입양자에게 갔을 수도 있었다. 왈츠는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섬뜩했다.
날도 추운데 겨울을 같이 나자
남은 두 녀석의 이름을 삼바와 왈츠로 지었다. 녀석들에겐 예방접종을 3차까지 맞혔다. 나의 첫 고양이 라라 그리고 아기 고양이 삼바와 왈츠를 위해 극세사 이불을 꺼내고 난방텐트를 구매했다. 이렇게 겨울을 날 준비를 하며 나는 어느새 고양이 세 마리의 집사가 되었다. 처음부터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부터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단계를 건너 뛰고 자연스럽게 ‘어쩌다보니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둘은 아직 아기 고양이라 자연스럽게 서로 레슬링을 하고 쥐돌이로 축구도 했 다. 곧 추격전도 하며 ‘노는 맛’을 알았다. 하지만 라라는 어렸을 때 놀이 학습이 잘 되지 않았는지 노는 법을 잘 몰랐고 사회성도 없었다. 그런 라라도 아기 고양이들이랑 친해지고 나서는 빼앗긴 어린 시절을 보상받은 듯 축구하는 법도 배우고 오뎅 꼬치 놀이에도 더 매진했다. 조용히 있던 라라의 명랑한 모습을 보곤 내 마음이 더 설렜다. 아기 고양이의 애교와 귀여움도 큰 기쁨이었지만 라라가 아기 고양이들의 축구를 따라해보는 모습은 왈츠와 삼바가 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라라는 무릎 냥이 삼바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삼바는 성격도 순하고 품에도 잘 안기고 내 껌딱지였다.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옆에 서 잠을 자던 라라와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나도 막내의 애교에 현혹되어 라라의 질투를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사이에도 겨울이 온 거다. 그 때가 왈츠의 대활약시기였다. 왈츠는 삼바한테 가서도 열심히 토닥이며 그루밍을 해주고 라라에게도 배를 보여주면서 애교를 부렸다. 의기소침한 삼바에게 위로를 전달하다가도 도도하게 삐친 라라에게 달려가 애교를 부리며 장 난을 걸었다. 나에게도 와서 뭐라고 앵앵 말을 하면서 왈츠가 참 바빴다. 왈츠는 삼색냥이가 그렇듯 똑똑했다. 하도 앵앵 말이 많아 나도 모르게 ‘너 입양 보낸다’고 하면 내게 와서 안기며 애틋하게 굴었다. 내 말을 알아 들은 건가 싶어 미안했다.
추운 겨울도 좋은 건, 같이 체온을 나눠서이기 때문이지
겨울이 깊어질수록 우린 작은 슈퍼 싱글 사이즈 침대에서 하나가 되어 갔다. 나는 칼바람에도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울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초인적인 힘으로 과외를 많이도 했다. 예전이라면 피할 만 한 일도 기꺼이 맡았다. 자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며 용기를 냈다. 집에 들어오면 차가운 몸을 고양이들이 데워 놓은 이불에서 녹였다. 밖에서의 속상한 일은 고양이들의 얼굴을 보면 잊혀졌다.
이제 벌써 세 고양이들과의 겨울이 네 번째이다. 그사이 이사도 두 번 했다. 처음 이사를 겪는 둘째, 셋째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울어서 택시 기사님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주었고 나는 창피해서 계속 ‘좀만 참아, 조용히 좀 해!’라고 속삭이며 애원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집은 창문 밖을 잘 볼 수 없는 구조다. 예전 집은 창문도 남쪽과 북쪽으로 나 있었고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도 있는 편이라 아침이면 새소리를 듣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너는 봄으로 가는 중이야
유독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면서 나를 위로해줬던 친구가 한 말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계절이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따뜻한 봄이고 그 계절이 계속해서 오래가는 사람들도 있고, 여름에 태어나 계속 열매가 풍성히 열리는 계절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근데 넌 겨울에 태어나 혹독하고 춥고 힘들지만 그걸 견뎌낸 나무가 값진 꽃을 피우듯 곧 봄 으로 가고 있는 거 아니겠냐고 했다. 그 말과 마음이 위로가 되어 세상에 냉담해진 내 마음이 녹아 눈물이 났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세 고양이들이 주는 온기와 위로는 날 봄으로 향하게 한다.
우린 긴 겨울밤에 서로에게 기대어 잔다. 긴 밤이 점점 짧아져 긴 햇살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올 때를 기다린다. 집 밖의 고양이들에게도, 낮은 곳에도, 구석진 곳에도 햇살이 닿기를 기다린다. 그럼 우린 같이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켜며 햇볕 샤워를 할 거다. 고양이는 봄이고 봄은 고양이이니.
CREDIT
글 사진 최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