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
도토리를 닮은 다랑이
경기도 모란시장은 지날 때마다 늘 가슴이 아픈 곳이다. 한쪽에 줄지어 동물을 내다 파는 보기 싫은 시장. 가슴이 아파 차마 볼 수 없어서 늘 고개를 돌리고 다니던 곳이다. 몇 해 전 어느 여름, 나는 모란시장을 지나 집으로 가던 길에 녹슨 철장 앞에서 발이 멈춰 버렸다. 작고 뼈만 앙상한 아기 고양이였다. 나는 애써 못 본 체 외면하고 집으로 왔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내내 그 작은 생명의 눈망울이 잊히질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난 왜 그 작은 생명을 외면하고 왔지?’
제발 살아만 있어 줘
나는 결국 저녁 식사 준비를 중단하고 모란시장으로 뛰어갔다. 무조건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시장에 도착하니 작디작은 아이는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듯했고, 곧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아기 고양이 옆의 작은 철장엔 성묘 8마리가 좁은 공간에 껴서 웅크리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성묘들은 관절에 좋다며 5천 원씩에 팔리고 있었다. 다 구할 수 없는 내 처지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10명만 모여도 저 아이들 모두를 구할 수 있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양손을 꼭 쥔 채로 고양이를 파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작은 아기 고양이를 데려가게 해달라고 할머니께 빌기도 하다가 화도 내보고 별짓을 다 했다. 아기 고양이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단호했다. 할머니는 인심 쓰듯 원래 15만 원인데 싸게 해줄 테니 10만 원에 데려가라고 했다. 결국,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할머니에게 쥐여 주고 나서야 아기 고양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아기 고양이를 수건에 감싸 안고 도망치듯 시장을 빠져나왔다. 아이의 상태가 많이 위급해 보여서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결과는 처참했다. 귀 안엔 진드기가 꽉 차 있었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결과는 더 참혹했다.
이 작은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란다. 오늘 밤을 과연 넘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심지어 뼈만 남아있어서 혈관을 잡기 힘들어서 수액마저도 놓아주지를 못했다. 병원에서는 더는 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아기 고양이에게 일단 뭐든 먹여야 할 것 같아서 고열량 사료와 캔 그리고 간식을 사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제발 한입만 먹자. 그래야 살지. 안타까움이 섞인 혼잣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캔을 따서 따뜻하게 데운 후, 불린 사료에 섞어서 주었더니 잘 먹어주었다. 그래. 이제 잘 먹고 엄마랑 우리랑 같이 잘 살자.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쭌군과 이제 막 유치원에 입학한 5살 딸 사랑이가 꼬마 집사가 되길 자청했다. 먹을 것은 사랑이가 담당하고 화장실은 쭌군이 챙기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엔 고양이 막냇동생이 생겼다. 아기 고양이의 이름은 막내딸 사랑이의 돌림자를 써서 다랑이로 지어주었다. 아들과 딸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다랑이는 빠르게 회복하면서 잘 커 나갔다. 집 근처에 아들과 딸은 다랑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예쁜 추억을 쌓아나갔다.
행복도 잠시
다랑이가 우리 집 막내가 된 지 한 달가량 되었을 때 다랑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일이 있어 부산에 일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다랑이의 배가 뚱뚱해 보였다. 바로 다랑이를 안고 병원을 향했다. 병원에선 복막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복막염이라면 잘 먹지도 못할 건데 우리 다랑이는 너무너무 잘 먹었다. 토한 적도 없다. 응가도 예쁘게 잘 누었다.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 없 었다. 복막염이라니. 수의사 선생님이 실수한 거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충격적인 말을 이어나갔다. 다랑이가 많이 고통스러워하면 안락사까지도 생각해야 한단다. 다랑이의 뚱뚱한 배를 보며 다랑이에게 말을 걸었다. ‘복막염은 무슨. 다랑아. 집에 가서 응가 하자. 배가 쏙 들어가게 응가 하자’. 그 후에도 다랑이는 여전히 잘 먹었다. 아기 때부터 굶었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배가 불러도 잘 먹었다. 문제는 숨을 자꾸 헐떡거린다는 것이다. 복막염 복수로 인해 숨을 쉬기 힘든 상태라고 한다. 혹시나 싶어 좀 더 큰 고양이 전문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다랑이는 병원이 신기한지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느라 바쁘다. 보는 사람마다 ‘강아지야? 고양이야?’라며 해맑은 우리 다랑이 예뻐해 주었다. 그런 예쁜 다랑이의 진단명은 결국 복막염란다. 입원치료로 복수를 반복해서 빼주는 거 말고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다랑이는 점점 힘들어했다. 병원에서는 다랑이의 수명이 길어야 3일에서 4일이라고 했다. 다랑이는 우리 가족이 눈에 보여야 안정을 찾는다. 그런 다랑이를 낯선 병원에 입원을 시킬 수는 없어서 녀석을 집에 데리고 왔다. 집에 오고 나서야 감정이 몰려왔다. 나는 다랑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신이 있다면 한 번만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다랑이를 살려 달라고 애타게 울었다. 처음 데려올 때 했던 평생 같이 살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다랑이와의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그렇게 8일이 지났다. 하루하루 별 이상 없이 잘 버텨주는 다랑이가 기특했다.
마지막은 조용히 찾아왔다
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아빠 집사가 연락이 왔다. 다랑이가 위급하다는 소식이었다. 급하게 집에 돌아오니 다랑이가 움직이기 힘든 몸을 질질 끌고 화장실에 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다랑이가 안쓰러워 다랑이를 품에 안았다. “다랑아. 괜찮아 괜찮아. 엄마 품에 응가 해도 괜찮아. 닦으면 되지. 힘들게 왔다 갔다 하지 마. 가는 길 편하게 엄마가 안아 줄게. 우리 다랑이 사랑해. 다음 생엔 꼭 좋은 집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배고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다시 엄마 만나러 와줘. 다랑아 우리 가족 품에 와줘서 너무 고마워. 사랑해.” 다랑이는 내 품에 안긴 지 10분 만에 크게 한 번 울고는 고개를 떨궜다. 별이 된 다랑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랑이가 ‘다랑이가 갑자기 왜 안 움직이는지’ 물었다. 나는 사랑이에게 ‘다랑이가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으려고 하늘나라의 예쁜 별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딸이 순수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랑이는 간식을 좋아해서 내가 간식 줘야 하는데 이제 간식 못 먹어? 우리 다랑이 간식 못 먹어서 어떡해?”
다음 날 아침 다랑이와 산책하고 놀던 작은 공원에 도토리와 밤나무가 많은 그곳… 공원 고양이와 놀던 도토리나무 햇살이 잘 스며드는 그 아래에 다랑이를 보내주었다.
‘공원에 있는 냥이들아. 그리고 도토리나무야. 우리 다랑이 잘 지켜줘. 사랑해 다랑아.’
CREDIT
글 사진 Lee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