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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고양이, 레오

  • 승인 2019-09-30 1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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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만난 후 알게 된 사소한 것들

나의 첫 고양이, 레오

대학교 1학년, 어느 찌는 듯한 여름날 오후.

웽웽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지친 선풍기 바람을 가로막으며 누나가 다가왔다. 안 그래도 더운데 선풍기 바람 앞에서 머 뭇거리는 모습을 보니 귀찮은 뭔가 시킬 것 같은 느낌이 들 었으나 그냥 가만히 모른 척했다. 평소에도 필요한 것이 있 으면 이것저것 잘 시키면서 오늘은 뭘 말하려는 건지 사실 조금 걱정이 앞섰다.


“사실, 말하려고 하던 게 있어.”

“고양이 키워도 돼?”

‘음? 고양이? 돈 필요한 거 아니었어?’라는 속마음이 다소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응 고양이.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니가 싫어할 것 같았어.”

“아니 난 괜찮아.”

“진짜?” “응. 나도 좋아.”


이 말의 대답이 평범한 인간에서 고양이 집사로서의 출발점이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렇게 ‘레오’라 불리는 네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니코틴, 알코올 그리고 고양이 중독


대학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었다며 그동안 못해왔던 모든 것들을 하나둘씩 손대기 시작했다. 그 퀴퀴하고 맛없는 구름과자를 뻐끔대다 보니 어느새 주머니에서 빠지지 않는 기호품이 되었고 하나둘 맛보며 신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나돌아 다니며 알싸하고 맛있는 술들을 흥청망청 마셔댔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다음날엔 안 좋은 속을 부여잡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다시금 알코올이 나를 불러댔다. 이런 것들에 빠져있을 즈음에 ‘레오’가 어느새 내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다.

“야, 나 오늘 늦으니까 레오 밥 니가 줘야 해.”

“아 왜!! 좀 많이 주고 가지!!”

“니가 가깝잖아 - 그럼 내가 가리? 몰라 나 바쁘니까 끊는다.”

세상에, 이런 귀찮은 일이 따로 없었다. 당시 다니던 학교가 자취방까지 15분 거리였다. 정말이지 그때 나도 좋다는 말을 왜 해서 이런 일을 자초한 걸까 하는 후회가 들 즈음에야 집에 도착한다. 덜컥 문소리에 달려 나오며 반기는 ‘레오’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오구오구, 형아 오길 기다렸어?”

야옹 하며 우는 레오를 쓰다듬고 사료가 들어있는 선반으로 다가간다. 밥을 주는 그 짧은 사이에 레오는 내 종아릴 빙글빙글 돌며 나에게 새하얀 털 뭉치를 안겨준다. 에고 테이프로 아침부터 열심히 뜯어냈는데 이게 뭐람. 늘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뭐 여하튼 이렇게 밥을 주기도 하고 감자도 캐면서 낚싯대로 놀아주기를 한 지 2년가량 되자 초보 집사는 겨우 탈출하게 된 것 같다.

이제 레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군대에 가야 할 때가 되었다. 평소와 같이 집에서 레오에게 손 인사하고 훈련소로 향했다. 정말 훈련소에 입소한 순간부터 잠자리 이불을 펴기까지의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웃기지만 훈련소 첫날의 유일한 기억은 잠자리 준비를 하던 중 침낭에 살짝 붙어있는 레오의 털이었다. 떼어도 떼어도 튀어나오는 털을 보고 레오가 생각났고 나도 모르게 그리워졌었다. 힘든 하루였는데도 술, 담배 생각보다 슬며시 다가와 팔베개 를 베는 그 따뜻한 온기가 살짝 고파졌다.


그런데 내 고양이 중독증세는 생각보다 심한 상태였다.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면 괜히 레오가 밥 달라며 바라보는 눈망울이 내 눈에 아른거렸고 바지춤에 겨울 칼바람이 스칠 때면 슬며시 다가와 비벼대는 그 작은 관심이 없어 괜스레 외로웠다. 게다가 선반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큰 소리가 날 때면 도망치고 숨어서 눈치 보는 레오의 아이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밤이 되면 팔을 베고 누워 새근새근 코를 골다 조심스레 반대쪽 손으로 쓰다듬으면 그르렁거리던 그 소리마저도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 외에도 앙증맞은 분홍색 젤리, 껌벅껌벅 이며 바라보든 파랗고도 노란 눈망울, 까끌까끌한 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들 알 것 같으니 이쯤 해두어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생각나니까. 괜히 또 그립다. 자꾸 잊으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는 나쁜X처럼 레오가 그런 것 같다.


어차피 넌 늦었어

분명 후회할 걸 뒤돌아 선 순간 부터

넌 날 그리워 하게 될거야.

넌 날 그리워 하게 될거야.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수 없어 태생인 걸.


- 선우정아 [고양이]


PS. 그런데 막상 첫 휴가 때 집에 가니 레오는 날 못 알아보더라.

너무해 ㅜㅜ

파블로프의 인간. 그리고 고양이


어느덧 레오는 지금 12살이 되었고 나도 그만큼 늙었다. 레오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철저한 제한 급식 주의자로 울고 떼쓰고 보채도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한번은 어머니가 계시는 집에서 급히 해야 할 것이 있어 잠깐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더니 ‘레오’는 키보드로 올라와 나의 손길을 보챘다. 여전히 나를 그리워하나보다 하고 쓰다듬어주었더니 자연스레 내 손을 빠져나가 봉지를 핥으며 살살 내 눈치를 본다.

“엄마, 얘 밥 안 줬어요?”

“얘 두 시간 전에 먹었다.”

“배고픈가?”

“정 주고 싶으면 간식 주든가.”

그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움직이니 졸졸 따라온다. 내가 간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는 건 어찌 아는지 먼저 앞서간다. 왠지 내 생각을 읽고 움직인 것 같은 괘씸한 느낌이 들어 방향을 휙 하고 바꿔 냉장고로 향해 물만 마시고 다시 책상머리에 앉았다.

다시 키보드 앞에 앉으니 어김없이 다가와 애꿎은 키보드를 꾹꾹 눌러대다 봉지로 다가가 핥는다. 자세히 보니 씹는 것도 아니고 먹는 시늉을 하며 내 눈치를 살살 본다. 그래도 그 조그만 두 눈망울에 되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간식 주려다가 불현듯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때는 바야흐로 레오를 데려온 지 두 달이 지났을 때였는데, 초보 집사들에게는 레오가 하는 모든 것들은 관찰의 대상이었다. 밥은 모자라서 배고파하지는 않는지, 너무 좁은 집에서 답답해하진 않는지, 놀 거리가 부족해서 외롭진 않은지, 우리가 싫어서 피하며 도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렇다. 나의 손이 레오에게 잘못 닿으면 까마득한 어둠이 될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투명한 비닐을 씹고 있는 레오를 보았다.

“누나!!! 얘 봉지 먹어!!!”

‘레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던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초비상사태로 선포하고 누나랑 나는 봉지와 레오의 사이를 갈라내고 대책회의를 했다. 이러다 집에 있는 모든 봉지를 다 뜯어먹는 거 아닌가? 그러다 아프면 어떡하지? 우린 걱정에 휩싸였다.


“쟤가 지금 7.8킬로야… 제한 급식해야 하는데.”

“그래도 누나, 이상한 거 먹어서 몸 상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그렇다고 자꾸 먹이면 안 된다고! 우선은 최대한 우리 제한 급식 해보자. 얘 더 살찌면 안 돼!”

“난 봉지 먹어도 몰라.”


다음날, 레오는 어김없이 봉지를 신나게 가지고 놀다 이내 깨물고 물어뜯어 버렸다. 우리는 먹는 양이 모자란 것으로 생각해서 조금 더 먹을 수 있도록 사료를 챙겨줬다. 그러나 씹고 뜯고 맛보는 행동이 이전보다 자주 보였고, 이런 사달이 나면 누나랑 나는 고민하다가 레오의 봉지 사랑을 어떻게든 떨쳐내고자 사료를 조금씩 더 챙겨줬다.

결국, 누나는 제한 급식을 포기했고, 레오는 당당하게 자율급식을 쟁취했다. 사실 제한 급식보다 자율급식을 하면 사료를 더욱 적게 먹을 것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실린 글에 희망을 걸어보았다. 이리하여 레오와 봉지의 애증 관계는 자연스럽게 없어졌고 사료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통에 몸무게는 8키로를 넘겨버렸다. 아직 한 살 조금 지날 때라 언제든 나는 젊은 레오가 살을 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장기하와 얼굴 들이 부릅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레오는 현재 6.8kg으로 다소 양호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배고프니 밥을 주세요’라는 신호가 아니라 먹을게 먹고 싶어 봉지를 핥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날 대상으로 시험을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 앞에서 ‘봉지를 씹으면 조건반사처럼 먹을게 뙇’하고 나와주는 매직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다음에도 그리고 또 다음에도 날 타겟으로 잡았고, 언제나 먹을 걸 쟁취했다. 그렇게 레오에게 나는 호구 집사였다.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고양이의 종족특성을 따져볼 때 12살 레오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글을 쓰면서 무릎에 한기가 돌아 무릎담요를 찾아 덮었다. 레오가 슬며시 무릎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또아리를 튼다. 쓰다듬다가 이내 컴퓨터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한기는 온데간데없다. 그르렁그르렁 모터소리를 내는 다소 가벼워진 6.8kg의 작은 코타츠가 제 몫을 하기 때문이다. 잠깐 움직여 잠을 깨운 게 되면 미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고양이 간식으로 손이 간다. 그래 맛있는 것 많이 먹고 겨울 동안은 뜨뜻하게 형의 무릎담요 해주다 여름엔 빼는 거다~ 레오야!

글 사진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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