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H E L T E R
세상의 중심
-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 -
한참을 걷고 또 걸어야 나오는 한산한 주택가의 이층집.
그곳의 한 층에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린 한 쉼터가 있다.
대전에도 고양이 쉼터가 있어요
대한민국 중심을 자처하는 대전에는 매니저인 미연 씨와 부매니저인 선화 씨가 단단히 받치고 있는 ‘가온누리’라는 이름의 유기묘 쉼터가 있다. 유기묘 쉼터를 운영한다고 하면, 태생적으로 대단한 애묘인일 것이라 추측하지만, 사실 미연 씨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꺼리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밥을 챙긴 것은 쓰레기봉지를 뜯어 연명하는 삶이 딱했고, 밥을 주면 그런 행동이 덜하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실제 해보니 꽤 효과가 있어 그 일이 길어졌고, 시간이 정을 만들어냈다.
평소와 같았던 2013년 늦가을의 어느 날, 돌보던 고양이 둘이 보이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것들이라 더 애타게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동물보호소에 닿았다. 유기견 임시보호와 릴레이 이동봉사를 오래 해왔던 미연 씨에게 보호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문 안쪽, 고양이 장이 겹겹이 쌓인 곳에 발을 내딛으면서 그 모든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충격과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노견 넷을 부양하는 고양이무식자 캣맘. 찾던 아이 둘만 안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둘을 치료 후 안정시킨 뒤 제자리 방사하는 것으로 그 기억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둘은 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순화되어버린 뒤였다. 답이 나와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답을 선택해도 모두 틀릴 것 같기도 모두 옳을 것 같기도 했다. 안 해도 된다면 안 하고 싶었던 일, 그러나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면
시작하는 것으로 지독히 고민했지만, 결심 후 실행하고부터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쉼터가 문을 열고 6개월 만에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손을 들고 떠났지만, 보호소에서 두 고양이를 안고 나왔던 미연 씨의 발걸음은 지금까지 대전?세종?아산?천안을 비롯해 인근 군 단위의 동물보호소로 이어지고 있다.
단체나 쉼터를 크게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구조 역시 많이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럼에도 2마리로 시작한 쉼터는 1년 만에 17마리가 되었고, 방이 하나 더 있는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수는 2배로 불어 30마리가 되었고, 다시 방 4개가 있는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했다. 이 기간 동안 미연 씨와 쉼터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구조활동가나 봉사자, 애호가 사이의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후원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몸과 마음, 지갑까지 모두 바짝 마를 정도로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라고 미연 씨는 인터뷰 중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래도 알음알음 찾아와서 손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는 1년 이상 된 정기 봉사자들과 부매니저인 선화 씨가 있다.
호기심과 흥미는 사양합니다
뱀과 싸우던 어린 고양이를 발견해 치료해준 것을 계기로 고양이 돌봄의 세계에 들어선 선화 씨는 현재 쉼터에 꼭 필요한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시작은 봉사자였다.
가온누리 쉼터의 봉사자가 되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정해진 시간과 요일에 쉼터로 와서 서너 시간 정도 걸리는 청소와 정리, 투약 등의 일을 해야만 한다. 일주일에 하루, 30일 중에 많아야 5일이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실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라, 지원자는 많아야 1년에 3명 정도.
일주일을 봉사자로만 채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미연 씨와 선화 씨가 최소 하루씩을 맡는데, 두 사람이 이틀씩 맡을 때도 있다. 그래도 호기심 섞인 방문이나 일회성 봉사, 캣카페로 착각한 방문 요청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쉼터 아이들이 구경거리도 아닐뿐더러, 사람과 고양이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기 봉사자로 확정된 후에도 운영진과 함께 2차에 걸친 OT를 하며 고양이의 성격이나 특징, 시설물 등 여러 가지를 알려준다.
세상의 중심에서 너와 함께
미연 씨는 청주 거주민이다. 쉼터를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모두 대전 거주민이라 스스로 원거리 이동을 자처한 것이 올해로 4년째 대전 출퇴근을 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부매니저 선화 씨는 주말 대부분을 쉼터에서 보낸다. 이렇게 일상의 큰 부분을 내놓고 있지만, 상근운영자가 있는 곳에 비하면 쉼터 관리나 고양이 돌봄이 부족하다.
쉼터 관리와 상근 운영자 이야기를 하던 중 미연 씨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숨을 고르고는 “저도 제 삶이 있어야죠.”라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쉼터 운영과 같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에 전심전력하기를 기대한다. 아니, 기대가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 역시 사람이고, 그들 역시 지치거나 소진될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처럼 일상과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유기동물이나 길 위의 생명들에 쉬이 측은지심을 가지면서도 구조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개개인은 모두 답을 가지고 있다. 집이 좁아서, 알러지가 있어서, 벌이가 적어서, 가족이 싫어해서, 고양이를 몰라서, 집의 반려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지금은 상황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쉼터 운영자와 활동가 역시 같은 상황에 있고,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나간다.
우리 모두가 직접 구조를 하거나 쉼터를 운영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버리지 않는 것, 동물을 구매하지 않는 것, 번식시키기 전에 그 자녀 세대와 그다음, 그 다음다음까지 유기되거나 도축되거나 학대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지 숙고해보는 것, 활동가나 쉼터를 후원하거나 그들의 물품을 구매하는 것, 동물권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임시보호자가 되어주는 것,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것, 입양글이나 후원글을 공유하거나 홍보해주는 것, 쉼터나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 등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영향력은 클 수 있다.
2019년 현재, 가온누리 쉼터가 관리하는 아이들은 총 40여 마리. 15마리는 장기 임보처에 나가 있고, 30여 마리가 쉼터에 머물고 있다. 구조되는 것과 입양 가는 것의 비율은 5대 1정도다.
소수의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은 물론 쉼터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만, 직접 재료를 사서 가공하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것으로도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마련한다. 구조나 입양 활동은 물론이고 각종 회계 관련 자료도 게시판에 공지하여 회원들과 나눈다. 그리고 구조와 병원 이동, 쉼터 관리, 고양이 케어라는 커다란 부분이 또 있다. 이 모든 일들 사이에 두 사람의 생업과 삶이 있다. 그들이 생업과 삶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정기 봉사자와 후원자, 서포터즈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이곳,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중심에 쉼터와 구조를 놓고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 삶의 작은 부분을 나눠주어도 좋지 않을까?
가온누리 유기묘 쉼터
https://cafe.naver.com/lovedogncat
CREDIT
글 김바다
사진 가온누리 고양이 강선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