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의 고양이
작품도 고양이도 꽃처럼 피어나길
도도유리공예 이정렬 이승아 작가
‘망리단길’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망원동 일대에는 개성 있는 가게들이 많다. 골목을 누비다 보면 맛집뿐 아니라 크고 작은 공방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애묘인이라면 망원 동의 여러 공방 중에서도 도도유리공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곳에는 특별한 고양이 부부가 살기 때문이다. 길고양이였다 공방 식구가 된 까미와 뚱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도도유리공예는 남매 작가 이정렬, 이승아 씨가 공동운영하고 있다. 유리조형을 전공한 동생 이정렬 씨가 2013년 초 공방을 열었고, 그의 권유로 누나인 이승아 씨가 2015년 6월 합류하며 지금의 2인 공방 체제를 갖추었다. 이승아 씨는 공예와는 거리가 먼 안전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유리 자르는 법부터 배워가며 빠르게 기초를 습득했다.
공방이 제집인 양 여유로운 표정의 뚱이와 까미는 원래 공방 근처에 살던 길고양이였다. 붙임성이 좋아 망원시장 일대를 오가며 여러 가게에서 밥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두 고양이가 가게에 오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여름 장마철 무렵. 사람을 제법 따랐지만 경계심은 놓지 않던 고양이들은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씩 공방에 머물기 시작했다.
여러 가게 중에서도 도도유리공예가 유독 마음에 들었는지, 겨울이 되면서부터 아예 출근 시간에 맞춰 공방에 왔다가 퇴근 때가 돼서야 나가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밥만 챙겨주면 되겠거니 생각했던두 사람이 입양을 고민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까미의 임신과 출산이었다. 유기견이었던 도도를 이미 키우던 터였고, 집주 인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 입양까진 생각지 않던 터였다. 그러나 추운 겨울날 배가 불러오는 까미를 차마 내칠 수는 없었다.
“출산이 임박한 어느 날이었는데, 퇴근 시간이 되어도 까미가 너무 나가기 싫어하는 거예요. 곧 새끼를 낳겠구나 느낌이 왔는데, 다음 날 아침 이웃 미싱 집에 다섯 마리나 낳았어요. 근데 미싱 집에서는 더 보살필 수 없는 처지였고 우리까지 거부하면 보호소로 가야 되는데, 입양이 안 되면 죽을 텐데 생 각하니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일곱 마리를.”
엄마 까미와 다섯 새끼고양이, 아빠 뚱이까지 공방은 순식간에 고양이로 가득 찼다. 새끼들이 걷기 시작하자 수업에 차질이 올 정도로 돌보는 게 힘들어져 새끼들부터 한 마리씩 입양을 보냈다. 다행히 수강생들이 고양이를 좋아해 입양은 일사 천리로 진행됐다. 가장 몸이 약한 새끼까지 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까미와 뚱이였다. 처음에는 중성화수술만 해주고 방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너무나 따르는 모습에 결국 식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길고양이를 챙겨주는 이웃도 많았지만, 까미와 뚱이가 길고 양이였던 시절엔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 상인들이나 집주인 에게 당당하지 못했어요. 저희가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니까 당당히 보호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죠. 하지만 입양하기로 결심하면서 ‘이제 저희가 길러요’하고 밝혔어요.
중성화수술도 해주고, 목줄과 인식표를 채워주고, 몸도 깨끗이 닦아주어 깔끔해지니 점점 인식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집주인과의 문제도 시간이 해결해주더라고요. 까미와 뚱이가 계속 눈에 띄고 익숙해지니까 그분이 고양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더워서 나왔어? 밥 먹으러 어서 들어가’ 하시고, 누가 물어보면 ‘이 거리의 명물이야’ 그러시고.”
입양을 결정하기 전에 중성화수술을 했기 때문에 까미와 뚱이에겐 둘 다 귀 커팅이 되어 있다. 자칫 길고양이로 오해받을 수도 있어서, 보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목줄과 인식표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입양 선물로 공방에 캣타워도 갖다 놓고, 까미와 뚱이가 자연스럽게 공방의 일원임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를 가족으로 보듬은 뒤로 고양이를 주제로 한 작품의 가짓수도 늘어났다. 인기 있는 작품은 투명한 몸통에 이목구비를 화려한 금칠로 장식한 미니 유리컵이다. 유리를 불어 만들고 귀도 따로 만들어야 되는 데다 금칠도 해야 해서 공정이 복잡하지만, 꾸준히 찾는 분들이 많다.
“까미와 뚱이 때문에 고양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사실 그전부터 고양이 모양 접시는 있었 어요. 다만 원래는 꽃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기는 했죠. 고양이 제품은 소량만 만들고, 이 작품의 판매 대금은 까미와 뚱이를 위해서만 써요. 덕분에 캣타워도 장만해주고 2차 접종도 할 수 있었어요.”
키우고 나서부터 까미에겐 ‘엘리자베스 까미’, 뚱이에겐 ‘로 버트 뚱이’라는 풀 네임을 지어주었다. 언뜻 듣기엔 장난스 러운 이름 같지만, 두 고양이가 그만큼 귀한 존재라는 뜻을 담아 전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다. 도도유리공예의 스테인드글라스 공예 작품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도안이 만들어지면 밑그림을 따라 색깔별로 유리에 옮겨 그리고 유리칼로 조심스레 커팅한다.
색깔과 모양별로 커팅이 끝나면, 날카로운 테두리를 연마해 부드럽게 하고 서로 이어 붙인다. 테두리는 동 테이프로 마감처리하고 각각의 조각을 납땜으로 연결하는데, 납땜 보조제를 바르고 인두로 납을 가열해 붙이는 과정까지 끝나야 비로소 한 작품이 완성된다. 소품의 경우 원데이클래스로 체험해볼 수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작가정신에 입각해 대작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원데이클래스는 시간에 제약 을 받는 수업이다 보니 소형 선 캐처를 주로 만든다고.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수작업 공정이 많아서 완제품 가격이 높은 편이에요, 다들 예쁘다고 하시면서도 선뜻 구매하기는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었을 때 특히 효과적인 작품이 선 캐처인데, 조명이 비췄을 때 색이 예쁘 거든요. 대작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용성 있고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니까 그걸 알아봐 주시 더라고요.”
도도유리공예만의 독특한 디자인 중 하나는 유리에 말린 꽃을 넣은 고양이 선 캐처다. 고양이 선 캐처가 인기를 얻으면서 유사한 작품도 늘어나는 걸 보고 ‘우리만의 특별한 디자 인이 있어야 하겠구나’ 싶었다. 마침 다른 작품에서 유리에 꽃을 넣어 만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도도유리공예만의 꽃 고양이 선 캐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졌다. 꽃을 사랑하는 두 작가는 “인생은 꽃보다 아름다워야 하고, 사람은 꽃처럼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공방의 모토로 삼고 있다.
“꽃도 수많은 시련을 거쳐 피어나잖아요. 어떻게 보면 스테 인글라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꽃이 피어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유리공예 역시 다른 분들이 봤을 때는 예쁘지만, 저희가 ‘예술 막노동’이라고 지칭할 만큼 고단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거든요.”
차가운 유리에 뜨거운 열정으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그 기운으로 고양이들을 보듬는 이정렬, 이승아 작가. 인터뷰 후에 더 넓고 쾌적한 장소로 공방을 이전했다는 두 사람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으로 꽃피울지 기대된다.
CREDIT
글 사진 고경원
자료협조 이정렬, 이승아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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