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사는 고양이
나의 스위스 고양이 입양기
프랑스인 남편과 나는 남편의 직장 문제로 작년 8월 스위스에 정착했다. 스위스는 참으로 조용하고 그림 같은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스위스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총 4개의 공식 언어를 쓰는 곳이다. 독일어를 쓰는 지역이 가장 넓으며 프랑스어권, 이탈리아어권, 로망슈어권 순으로 보면 된다. 또한 연방국가로서 미국의 주(state) 개념에 해당하는 칸톤마다 법, 세등 시스템이 각각 다르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칸톤 내 세 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겨우 17,000명에 불과하다.
정착 후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들을 여럿 봤다. 한국에서 온 나는 당연히 길에 사는 고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외양도 집에서 관리를 잘 받은 모습이었다. 남편 말로는 주인이 있는 고양이들인데 낮에는 바깥에 풀어놓는 일명 ‘외출 고양이’라고 했다. 사람은 적고 자연환경은 좋으니 고양이들을 마음껏 풀어놓는 곳, 바로 스위스다.
스위스에 정착한 지 11개월, 우리도 생후 두 달 반의 아기 고양이 남매를 입양하게 되었다. 스위스에서 고양이를 입양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 등등 지인을 통한 직접 입양, 고양이 입양과 관련된 공고, 동물 보호센터에서의 입양이 있다. 스위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공고 알림판은 마트 입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스위스의 대형 마트 브랜드인 미그로(Migro)나 쿱(Coop) 입구에는 지역주민들이 고양이 입양 공고부터 부동산 매물까지 자유롭게 공고를 붙인다.
인터넷을 통한 입양도 매우 활발하다. 우리는 anibis.ch라는 사이트에서 갓 어미의 젖을 뗀 아기 고양이 남매 입양 공고를 발견했다. 집에서 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위치여서 바로 고양이를 보러 갔다. 남매 고양이 중 수컷은 검은색 고양이, 암컷은 노란색 고양이였다. 우리보다 먼저 연락을 취한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모두 노란빛의 암컷만 입양을 원했다고 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몇몇 국가에는 검은색 고양이가 불운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있어서 검은색 고양이 입양이 어려운 편이다. 남편의 부모님도 키우던 검은색 암컷 고양이가 똑같은 검은색 새끼 고양이를 낳아 입양 보내려고 했지만 미신 때문에 아무도 원하지 않아 결국 새끼까지 집에서 키우게 되었던 적이 있다.
고양이 색깔이 뭐라고 이런 황당한 미신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검은색 아기 고양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원래 한 마리만 입양할 생각이었지만 신나게뛰어노는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보니 억지로 생이별시키는것도 옳지 않아 보였다. 결국 우리는 두 마리를 함께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주인은 우리의 입양 결정에 너무나 기뻐하며 먼저 문의한 사람들을 다 제치고 우리에게 입양시키기로 했다.
남매 고양이를 입양하면서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이름을 고민했다. 검은색 아기 고양이에게는 프랑스어로 검은색을 뜻하는 노아흐(noir)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노아(Noah)’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노란색 아기고양이도 색깔에서 힌트를 얻어 ‘낑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인 남편에게 한국의 된소리가 연속으로 들어가는‘낑깡’이란 이름을 발음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무리 가르쳐도 ‘킹캉’이라고 발음해서 포기했다. 대신 남편이 ‘폼폼(pompom)’이라는 깜찍한 이름을 생각해내어 노란색 아기 고양이의 이름은 ‘폼폼’이 되었다.
어미 곁을 떠나 처음 우리 집에 도착한 노아와 폼폼은 처음엔 둘 다 낯선 환경에 어색해했다.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인 노아는 조심스럽게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해보더니 금방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적응했다. 폼폼은 낯을 가리는 성격이어서 이틀간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자서 우리의 마음을 꽤나 애태웠다. 다행히 3일째부터 조금씩 밥을 먹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본인만의 영역도 만들
고 남매인 노아와 신나게 놀며 잘 지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스위스에서 프랑스인 남편과 한국인인 나, 스위스산 고양이 노아와 폼폼으로 구성된 새로운 ‘다문화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CREDIT
글 사진 이지혜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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